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 Sep 10. 2021

로마, 그리스 문명의 계승자

서양미술사의 계보 #3

그리스의 문화적 유산을 이어받아 본격적으로 응용, 변형시킨 것은 로마 제국이었다. 기원전 700년경 작은 시에서 시작된 로마는 거대한 제국을 형성해 세계의 중심으로 번영하며 그리스 문명의 영광스러운 계승자로 부상한다. 헬레니즘 미술이 각 지역에 전파된 것은 그리스 시대보다도 오히려 대제국을 구축하며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한 로마 제국기에 한층 더 활발하게 이뤄졌다. 로마 제국의 영토는 위로는 알프스와 영국 섬 일부, 아래로는 아프리카 북부, 옆으로는 근동 지역에 이르기까지 매우 넓은 대륙에 걸쳐 있었다. 그 결과, 이집트의 파이윰 미라 초상화 이것은 로마인가 이집트인가부터 인도의 간다라 양식 불상 물론 이건 알렉산더 대왕 덕분 이것은 아폴론인가 붓다인가에 이르기까지 일명 그리스·로마의 예술 양식은 상상을 초월하는 지역에서 그 흔적과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어디 그것뿐일까. 로마 제국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들은 유럽 곳곳에 널려있었다.


로마 제국을 이탈리아 반도에만 국한시켜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편협한 시각이다.


로마, 그리스의 정신적 후예

고대 로마는 일찍이 그리스 문명에 매료됐다. 제2차 포에니 전쟁을 거치며 로마는 기원전 212년 시칠리아 섬의 유서 깊은 도시이자 마그나 그라에키아(Magna Graecia, 이탈리아 남부에 설립됐던 그리스 식민도시를 지칭함)의 구성원로서 일찍이 그리스 문화가 발전했던 시라쿠사를 장악하게 된다. 로마 역사가 리비우스는 이 사건을 “그리스 예술에 대한 최초의 경탄”이라고 규정했다. 우수한 그리스 문화를 접한 로마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부유한 귀족들은 그리스 예술품을 귀중한 소장품으로 수집했고 예술가의 공방에는 그리스 조각을 모사한 대리석 조상의 주문이 밀려들었다. 이런 로마인들 덕분에 소실된 그리스 조각의 로마 모사본을 오늘날의 우리가 접할 수 있게 된 셈. 개이득


또한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Metamorphoses』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Aeneis』 등은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를 통합하여 로마의 기원과 연결시켰고,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 같은 당대 로마의 권력자를 신화 속 영웅에 빗대거나 신격화한다. 로마의 황제 숭배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렇듯, 고대 로마 제국은 지중해의 패권자로서 맹위를 떨쳤으나 문화적으로는 그리스의 열렬한 수용자이자 온순한 후예였다. 이를 두고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는 “정복당한 그리스가 로마를 다시 정복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역관광? 그러나 이와 동시에 로마인들은 아치 구조를 활용한 수로나 목욕탕(일반 사우나를 떠올리면 안 된다. 국정 논의가 이뤄지기던 정치적 공간이었다) 같은 공공 건축물, 실내 장식으로서의 모자이크나 내세를 준비하는 석관의 부조와 같이 실용성과 장식성이 강조된 작품들을 제작하며 조형 예술에 있어 독자적인 진화를 이뤄내기도 했다.


실용적인 로마 건축
18세기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파올로 파니니의 〈콜로세움이 있는 풍경〉. 볼티모어 월터스미술관 소장.


다시 한번 강조한다. 로마 미술은 그리스 미술보다 더 실용적이고 실제적인 성격으로 진화했다. 시험 출제 빈도 높음 그리스의 건축물이 도리아식과 이오니아식 기둥을 주로 이용한 포스트와 린텔 구조의 신전 중심이었다면, 로마 건축물은 그리스의 코린트 양식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목욕탕, 공화당 등 공공 시설물을 더 많이 만들었다. 이와 함께 로마인들은 기둥에 비해 무게의 하층 분산이 용이한 아치를 전격 활용하여 콜로세움 등 거대한 건축물을 축조한다. 아치의 사용은 축조술의 혁명이라 불릴만한 사건이다. 오늘날까지 로마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콜로세움은 후세까지 로마 제국의 영광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조반니 파올로 파니니의 회회 작품처럼 오랜 세기에 걸쳐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됐다. (https://art.thewalters.org/detail/24100/view-of-the-colosseum/)


참고. 그리스 건축의 기둥 양식. (외워두면 여러 분야에서 유용함)


로마의 조각과 회화

로마 시대의 조각상은 그리스 조각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로마 시민들은 그리스 조각상을 모방, 복제하며 당시 유행한 헬레니즘 취미를 충족시켰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처럼 관념적인 차원에서 조각을 제작하기보다 장식, 권력, 부, 교양의 과시를 위해 조각을 소유하는 경향이 더 많이 보인다. 또한 그리스의 많은 조각들이 청동으로 주조된 것과 달리 로마인들은 이를 주로 대리석으로 복제했다. 이탈리아는 아직도 질 좋은 대리석 산지이며, 드넓은 제국에서 훌륭한 대리석을 찾아 들여오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게 다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 실제로 아우구스투스는 "나는 벽돌의 로마를 대리석의 도시로 만들었다"고 자화자찬한 바 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대리석 입상. 바티칸시국 바티칸 박물관.


바티칸시국의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대리석 조각상은 로마 제국을 표상하는 작품으로 자주 언급된다. 이 영악한 사내는 원로원이 엎드려 바치다시피 했던 황제의 칭호를 끝까지 수락하지 않은 척했지만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그를 로마 제국의 첫 황제로 기억하는 걸 보면 이 양반이 얼마나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능한 인물이었는지 알 수 있다. 로마의 조각은 그리스의 신상과는 달리 점차 황제, 정치인, 개선장군 등 현존 인물을 이상화(monumental) 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하며 공공의 기념비적인 조각으로서 초상 조각이 등장하게 된다. 이와 함께 사르코파구스(Sarcophagus, 그리스어로 '살을 먹는다'는 단어에 어원을 둔다. 석관 속에서 시신이 부패하는 현상을 생각해보면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 있다)로 통칭되는 대리석 석관의 표면에 신화나 역사의 특정 장면을 섬세한 부조로 장식하는 석관 조각도 고도의 발전을 이루게 된다. (https://www.museivaticani.va/content/museivaticani/en/collezioni/musei/braccio-nuovo/Augusto-di-Prima-Porta.html)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있는 이탈리아 남부 보스코레알레의 파니우스 시니스터 저택(Villa of P. Fannius Synistor) 내벽 프레스코화.


그리스를 계승한 로마가 무서운 수준으로 발전시킨 또 다른 예술 양식은 회화와 모자이크다.  대(大) 플리니우스는『박물지 Historia Naturalis』에서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트롱프뢰유(눈속임그림) 경합 에피소드를 다루며 고대 그리스의 회화 수준에 대한 전설적인 에피소드를 전하고 있지만, 현전하는 도기화와 프레스코화를 살펴보면 3D 효과를 극대화시켰던 조각과 달리 선적이고 평면적인 그림을 묘사하는데 그쳤음을 볼 수 있다. 작붕쩌네 그러나 로마의 화가들은 그리스 헬레니즘 시대의 선 중심 화화에서 벗어나, 평면의 화폭에 깊이감과 양감을 부각시키며 3D 효과를 충실히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베수비오스 화산의 분화로 매장된 폼페이나 헤라클라네움, 보스코레알레 등의 유적지에서 출토된 프레스코 벽화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입증한다. 고대 로마의 예술가들이 이미 이해하고 있었던 원근감과 명암의 표현 기법은 다소 특이했던 세계관을 지녔던 중세 시대를 거쳐 인본주의의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한번 폭발적인 발전을 보인다. 즉, 르네상스 미술을 상징하는 수학적 원근법의 정립 및 3대 거장의 화려한 등장을 위한 토대는 이미 로마 시대에 완성되어 있었던 셈.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247017)


그리스(좌)와 로마(우)의 회화 양식을 단편적으로 비교하기 좋은 두 점의 프레스코화. 바라캇 서울 소장.


국내에서 만나는 고대 로마 미술

고대 로마 미술도 국내에서 만나기를 매우 어려운 지경이다. 특별 기획 전시도 폼페이 유적, 특히 많은 이들이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화산 폭발 당시의 잔혹한 잔재에 유난히 집중되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지난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된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는 규모가 다소 작았다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다채로운 유물을 들여와 로마 문명을 다각도로 조명한 부분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은 전시였다.


이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9년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를 통해 그리스, 로마와 함께 지중해 문명의 한 축을 이뤘음에도 대중적 인지도는 낮았던 고대 에트루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 바 있다. 그리고 바라캇 서울의 특별전시 《고귀한 신화, 위대한 역사: 그리스·로마 유물 컬렉션》에서는 국내에서 정말 만나기 힘들었던(직접 전시 기획을 해보면 왜 만나기 힘들었는지 알 수 있다. 크고 무겁고 갱장히 예민함) 로마 모자이크를 중심으로 다이아나 여신의 토르소와 아우구스투스 황제 및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두상 조각 등을 최초로 공개했다. (관람자 폭발로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로마 미술을 감상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는 그리스·로마 컬렉션을 상설전시로 공개하고 있는 필자가 노예로 복역하는 서울 삼청동의 바라캇 서울 갤러리로 오실 것을 추천드린다. 로마 시대의 프레스코화부터 아름다운 나신을 드러낸 비너스 여신의 대리석 조각, 다채로운 로마 코인 컬렉션까지 만날 수 있다.


바라캇 서울 갤러리의 2019년 특별전 《고귀한 신화, 위대한 역사: 그리스·로마 유물 컬렉션》 전시전경.


참고문헌

마리아 테레사 구아이톨리. 『로마』. 김원옥 옮김. 생각의나무, 2007.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백승길, 이종숭 옮김. 예경, 2013.

존 그리피스 페들리. 『그리스 미술』. 조은정 옮김. 예경, 2004.

캐롤 스트릭랜드. 『클릭 서양미술사』. 김호경 옮김. 예경북스, 2010.

H.W. 잰슨, A.F. 잰슨. 『서양미술사』. 최기득 옮김. 미진사, 2001.



미술사 연구는 오늘날의 수많은 학자들만큼 다양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현재 진행형의 영역에 놓여 있다. 특정한 예술품이 만들어진 시기에 태어나지 않은 이상 절대적인 진실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학문이 그렇듯 미술사학 역시 부단한 연구와 사례 분석을 통해 시간의 베일에 가려진 진실에 근접하고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 가장 타당한 해석을 찾아갈 따름이니까. 그러니 의견의 방향이 다르다고 맹렬한 비난을 하시면 아마 울 겁니다.
본문의 2차 가공 및 무단 활용을 금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스, 이성과 조화의 3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