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령전에 별은 지네...

by 청명

성종이 대왕대비에게서 권력을 넘겨받은 지도 어느덧 칠 해가 흘렀다. 조선은 점차 안정되었고, 왕실은 다시 중심을 되찾았다. 정희왕후는 이제 말년에 접어들며 권력을 내려놓고 온양으로 요양을 떠났다. 봄날의 햇살은 따스했고, 그녀의 행차는 왁자지껄하면서도 단정했다. 궁궐의 사람들은 그 기품이 하늘을 찌른다고 속삭였다. 그러나 그 기품은 권력의 무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나라를 지켜온 어머니의 품에서 나온 것이었다.


며칠 뒤, 왕실 지붕 처마에서 부고를 알리는 상선의 목소리가 구슬피 울려 퍼졌다. 하얀 저고리를 흔들며 알린 소식은 곧 궁궐 전체를 슬픔으로 물들였다. 바로 정희왕후의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 죽음은 격렬한 비탄이나 혼란을 남기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고 고요한 파문처럼, 궁궐 안에 잔잔히 퍼져나갔다.

그녀의 마지막을 곁에서 목격한 이들은 이렇게 전했다. “마치 스스로 가실 것을 아신 분처럼 곱게 머리를 빗으시고, 단정한 자세로 앉아 온화하게 웃으시며 떠나셨다.” 그 모습은 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한 시대의 인물이 아니라, 한 명의 어머니로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평온한 순간이었다. 그녀의 죽음은 권력의 무게를 내려놓은 뒤 찾아온 안식이었다.


정희왕후는 젊은 시절 피로써 역사의 한 장을 써 내려간 장본인이었다. 세조와 함께 반정을 도모하며 권력의 격랑 속에 몸을 던졌고, 수렴청정을 통해 어린 성종을 보호하며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웠다. 그러나 그녀는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절대 권력의 유혹을 경계하며, 언제나 그 경계선을 지켰다. 역사가 권력투쟁으로 얼룩지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그녀는 마지막까지 바로잡으려 했다.


성종실록은 그녀의 죽음을 담담히 기록한다. “대왕대비 윤씨가 온양에서 승하하였다.” 간결한 문장은 화려한 수식 없이 그녀의 마지막을 전한다. 그러나 그 속에는 이미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난 한 권력가의 표본이 담겨 있다. 그녀는 권력을 움켜쥐지 않고, 필요한 순간에 내려놓으며, 조선의 안녕을 위해 노력한 인물이었다.


그녀의 능은 세조와 함께 경기도 남양주 진접의 광릉에 조성되었다. 그곳은 그녀가 생애 동안 지켜온 왕실과 나라의 중심을 상징하는 자리였다.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하게, 그녀의 마지막은 고요하고 담담했다.

정희왕후의 죽음은 역사의 한 장을 닫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장은 피로 얼룩진 권력투쟁의 기록이 아니라, 권력을 바로잡고 나라를 안정시킨 어머니의 기록이었다. 그녀는 정치가였으나 동시에 어머니였다. 세자를 지키고, 왕실을 지키며, 나라를 지켜온 어머니였다. 그녀의 마지막은 고독이 아닌 평온 속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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