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톡

모든 걸 내려놓은 다음날,

by 윌리를 찾아서


2년 만이다.

쓸 말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바빠서 못 쓴 것도 아니다.

그냥… 어딘가에 꽁꽁 묻어두고 싶었던 것 같다.


북한에서 힘들 때는 힘들다는 걸 티 내면 안 됐다.

약하다고 보이는 순간 더 힘들어지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힘들수록 조용해지는 버릇이 생겼다.

한국에 와서도 그 버릇은 여전하다.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면서 내 20대 후반은 완전히 멈춰있었다.

돈도 없었고, 시간도 없었고, 미래도 보이지 않았다.

하루하루 책상 앞에 앉아 법전을 들여다보는 것이 전부인 생활.

북한에서 “너 같은 새끼는 아무것도 못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막막함이었다.

그때는 나라가 나를 막은 것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나를 증명해야 하는 싸움이었으니까.


LEET 시험을 치른 날.

고사장을 나오면서 딱 하나만 생각했다.

‘끝났다.’

잘 봤는지 못 봤는지는 그 순간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오랫동안 짊어지고 있던 무언가를 내려놓은 느낌.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누웠는데,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카카오톡 보이스톡이 울렸다.

전화를 받는 순간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목소리가 낯설었다.

정확히는, 너무 차분했다.

짧은 침묵 뒤에 그녀가 말했다.

“우리 헤어지자.”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어제까지 나를 짓누르던 시험은 끝났는데,

정작 무너진 건 그다음 날이었다.

보이스톡 화면을 바라보다가 통화가 끊겼다.

방 안은 시험 전날 밤과 똑같이 조용했다.


타이밍이라는 게 참 이상하다.

버텨야 할 때는 어떻게든 버텨지는데,

다 끝났다 싶은 순간에 진짜가 무너진다.

북한에서 고등학교를 마치던 날도 그랬다.

졸업하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그날 이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끝인 줄 알았는데 끝이 아니었고,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시작이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딱히 대단한 각오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앉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북한에서 배운 게 있다면 딱 하나다.

힘들다고 세상이 멈추지는 않는다는 것.


2년 만에 돌아오면서 무언가 대단한 말을 하고 싶었는데,

막상 쓰고 나니 그냥 그때 얘기다.

그래도 이걸 꺼내놓고 나니까 이제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다.

잘 있었어요, 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