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은 알코올이다

by 윌리를 찾아서


하나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국정원 조사를 마치고 이곳에 오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위한 교육들을 받는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세계에 입문하기 위한 준비 과정 같은 곳이다.

먹을 것도 주고 잠자리도 주고 교육도 해준다.

근데 딱 하나, 술이 없다.


북한 남자들에게 술이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다.

고된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것도 술이고, 오랜 친구를 만나는 자리에도 술이 있었다. 슬플 때도 기쁠 때도 술이 함께했다. 가난할수록, 힘들수록 술과 담배를 더 찾는다. 잠깐이라도 현실을 잊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 현실이라는 것이… 결코 가볍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고향을 두고 왔고, 가족을 두고 왔고, 평생 살아온 땅을 두고 온 사람들.

낯선 나라에서 낯선 미래를 준비하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술 한 잔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음료 하나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하나원에는 술이 없었지만, 술이 필요한 사람들은 있었다.


어느 날 나이 지긋한 아저씨 한 명이 복도 벽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손 소독제였다.

아저씨는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주변 사람들을 슬쩍 둘러보며 말했다.

“야, 이거 알코올 아니가?”

누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에 적당히 희석하면… 소주랑 비슷하지 않겠나?”


말이 씨가 됐다.

잠시 후 몇몇 아저씨들이 조용히 모여들었고, 누군가 컵에 물을 받아왔다. 손 소독제를 몇 번 펌핑해서 탁, 탁, 탁 넣었다. 투명한 액체가 물에 섞이며 살짝 뿌옇게 변했다.

다들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봤다.

“어, 나쁘지 않은데?”

그렇게 하나원 벽에서 소주 한 잔이 탄생했다.


이 사람들이 멍청한 게 아니다.

수십 년을 없는 것을 있게 만들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없으면 만들고, 막히면 돌아가고, 안 되면 될 때까지 궁리하는 것. 그게 그냥 몸에 밴 삶의 방식이었다. 어쩌면 그 생존의 감각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문득 그 아저씨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거칠고 투박하게 굳은 손이었다. 그 손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버텨왔을까. 컵을 들고 한 모금 넘기던 그 순간, 그 얼굴에 번지던 표정은 취기가 아니었다. 잠깐의 숨 고르기 같은 것이었다.


대한민국에서 10년 넘게 살다 보니 이제는 편의점에서 아무 술이나 골라 살 수 있다는 게 당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가끔 소주 한 잔을 앞에 놓고 그 아저씨를 떠올린다.

지금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제는 편의점에서 당당하게 소주를 골라 마시고 있을까.

그 당연함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하나원 복도 벽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그 눈빛을 생각할 때마다 다시 실감하게 된다.

알코올은 알코올이었지만, 그 한 모금은 단순한 술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