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집밥과 책밥 사이
대학 입학과 동시에 독립을 하면서 나는 한껏 취했다. 해방감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춤에 취하고, 서울 구경에 취했다. 그런데 그 취기는 오래가지 못하고 고작 한 학기 만에 끝나 버렸다. 고지식한 성격 때문에 일탈에는 한계가 있었고, 너무 잘 마시는 술은 애초부터 취하지도 않았고, 나이트 불나방 생활은 시들해졌으며, 명동 대학로 신촌 압구정 강남 구경이 끝나자 서울의 풍경은 더 이상 새롭지 않았다.
하지만 취기에서 깬 제일 큰 이유는 다름 아닌 밥이었다. 파스타, 타코, 쌀국수, 돈부리 같은 세계 음식을 먹은 날에도 엄마의 된장찌개가, 나물 무침이, 생선 구이가 그리웠다. 경양식집, 포장마차, 호프집, 카페에 있다가도 집에서 저녁 먹기로 했다고 가 버리는 '서울러'들이 부러웠다. 그립고 부러운 마음이 쌓이자 생각지도 않았던 두려움이나 외로움 같은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내가 한없이 작고 초라하고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점점 마음이 쪼그라들고 몸이 움츠러들었다. 쪼그라들고 움츠러든 딱 그만큼의 눈물을 밤마다 흘렸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에 결심했다. 내가 ‘집밥’을 하기로. 나도 ‘밥’ 먹으러 ‘집’에 가 버리기로.
그런데 음식이라는 것이, 집밥이라는 것이 해 버리기로 결심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재료가 얼마만큼 들어가는지 알아야 했고, 재료를 사러 가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지금처럼 깔끔하게 구획 정리된 시장이나 안 파는 게 없는 대형 마트, 1인 가구를 위한 식재료 배달 서비스는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잔뜩 멋 부린 새침한 스무 살에게 낯선 도시의 시장에서 홀로 장을 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온갖 식재료가 한데 섞여 만들어 내는 오묘한 냄새와 걸을 때마다 신발에 튀는 오수,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는 동선과 너무 넓은 선택의 폭, 시장 상인분들의 지나친 관심까지. 장 보기 고개를 겨우 넘으면 다음 고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된장찌개 끓이려면 뭐가 필요하지?”
“국물 내야 하니까 멸치랑 다시마. 채소는 애호박, 감자, 양파 필요하고, 고기는 넣으면 좋고 없어도 되고."
“카레 할 때 고기가 꼭 들어가야 하나?”
“돼지고기가 맛있기는 한데 없으면 안 넣어도 괜찮아. 소고기나 닭고기 넣어도 되고.”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건 왜 이리 많은 건지. 집밥의 세계는 혼란스러웠다.
재료만 사면 뭘 하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은 걸. 양파 까다가 울고, 시금치 끝동 다듬다가 베고, 고등어 굽다가 기름에 데고, 감자 껍질 벗기다가 내 살갗도 벗기고. 집밥의 세계는 아팠다.
겨우 재료를 준비해 조리를 시작하려니 더 깜깜해졌다. 밥물은 얼마만큼 넣어야 좋아하는 고두밥이 되는지, 나물은 얼마만큼 데쳐야 아삭한 식감이 나는지, 생선은 언제 뒤집어야 안쪽까지 충분히 익는지, 된장찌개는 된장을 언제 풀어야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묻고 또 물었다.
“엄마, 고등어 구울 때 언제 뒤집어?”
“되는 거 봐 가면서.”
“시금치는 얼마나 데쳐?”
“적당히 풀어지면.”
“간장은 얼마나 넣어?”
“알맞게.”
알맞게는 몇 밀리리터고, 적당히는 몇 분일까? 집밥의 세계는 모호했다.
하지만 나는 더 쪼그라들고 싶지 않아서 그냥 혼란스럽고 아프고 모호한 채로 실패를 거듭했다. 그렇게 설익은 밥과 진밥 사이, 소금국과 맹탕 사이를 오가다 보니 어느 날인가부터 된장국과 김치찌개, 두부 부침과 감자볶음을 먹고 뱉지 않을 정도로는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고작 그 정도를 돌려먹기 일쑤였지만, 그때그때 만든 따뜻한 밥과 찌개, 엄마가 보내 주는 밑반찬 몇 가지가 놓인 상은 나를 다시 충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엄마가 스무 해 동안 내게 먹인 건 밥이 아니라 자신감과 충만함이었던 것이다.
스무 살에 시작한 밥 짓기는 스무 해를 훌쩍 넘겼다. 그 사이 나는 어디 가서 음식 좀 만든다고 큰소리도 치고, 누가 물으면 적당히, 알맞게, 되는 거 봐서라고 답할 수 있는 내공도 쌓았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품을 떠나 독립할 나의 어린이에게 자신감과 충만함을 먹이고 있다.
이렇게 다 자란 내게 자신감과 충만함을 먹여 주는 것이 집밥 말고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그림책이 먹여주는 책밥이다. 밥벌이가 책 만드는 일이라 그러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헛헛한 어느 날에 그림책을 펼쳐 들면 마음이 부르다. 직장 생활과 부부 생활, 육아를 하면서 생기는 혼란스러움이나 아픔, 모호함 같은 마음은 쪼그라든다. 그림책이 주는 선명하고 유쾌한 마음은 어떤 날은 부풀어서 터질 것 같았고, 또 다른 날은 둥실둥실 뜰 것만 같았다.
냉동실에 재료를 차곡차곡 쟁이듯이 책장에 그림책을 쟁였고, 냉장고가 부족해 김치냉장고를 더 들이듯, 어떤 판형의 그림책이라도 꽂을 수 있는 깊고 높은 책장을 들였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내 책장 속 수많은 그림책 가운데 마음뿐만 아니라 배도 부르게 해 준 그림책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먹음직스러운 식재료가 주인공인 그림책, 이국의 음식이 나오는 그림책, 근사한 상차림이 그려진 그림책, 조리법을 알려 주는 그림책, 요리를 만드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그림책, 다양한 맛과 그 표현을 배울 수 있는 그림책까지.
그런 이야기들을 모아 보려 한다. 마음과 배를 부르게 해 주고 입과 손을 바쁘게 해 준 음식과 그림책 이야기. 집밥과 책밥 사이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