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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by 사온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전시를 하나 꼽자면, 2017년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테이트 누드전'을 맨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 곳에서 나는 루이즈 부르조아를 처음 만났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본 최고의 큐레이션이였다.


태어나 처음 사귄 사람은 프랑스인이다. 평균이라 말하기엔 조금 다를 수 있는, 묘한 배경을 지닌 사람이었다. 어쩌면 내 피아노는 지금쯤 도빌 어딘가의 오래된 호텔방에 머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독특한만큼 쉽사리 꺼내놓기 어렵다.


우리는 때때로 바다에 갔고, 어느날 나는 그와 더이상 만나고싶지 않아졌다. 그렇게 그를 떠나기로 결심할 때, 내게 호텔방의 열쇠 하나를 건네주면서 그 곳에서 살지 않겠냐 제안했다. 내가 프랑스에 온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니였다. 그 무렵 나는 독일에서 방도 아직 정리하지 못한 상태였다.


도빌은 아름웠지만 썩 즐거웠던 기억 없다. 돌아오는 길 파리 동역에서 매번 울었다. 유럽에서 처음 사귄 친구, 첫 남자친구, 의미있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그렇게 유럽의 북서쪽 끝으로 향했다, 아시아 중에서도 동쪽의 끝자락, 한국의 정반대편으로. 그리고 글로스터를 거쳐 캠브리지 근방으로 옮겨갔고, 그러다 런던에 들렀다. 그리고 그렇게, 테이트 모던을 찾았다. 서울에서 처음 미술을 체험하게 했던 바로 그 전시의 원래 무대.


얼굴이 산산조각나서 울고있는 여인의 초상앞에서 멈춰섰다. <우는 여인>.

그렇게 피카소를 만났다.


아방가르드.


수치심과 연민, 원망과 그리움, 모멸감과 애착, 안도와 집착, 두려움과 환상, 실망과 미련, 혐오와 기대... 충돌하면서 공존 가능한 여인의 마음을 그렇게 치열하게 이해한 사람이 기어코 사람을 극단으로 내몬 뒤 고스란히 화면에 새겨 넣었다는 사실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누군가는 내게 지나친 해석이고 그림을 볼 줄도 모르면서 무언가를 느꼈다고 착각한다 할지도 모른다- 아, 차라리 그렇게 생각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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