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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를 어떻게든 거치고 싶다.

by 사온

나는 가능하다면 내 원고를 반드시 정식 투고의 과정을 거치고 싶다. 단순히 책이 출판되느냐 아니냐를 넘어서, 그 절차 자체가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을 보호하는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공신력 있는 출판사에 정식으로 투고하면, 그 과정 자체가 어렵더라도


원고의 오리지널리티

저자의 신원 및 이력

내용의 표절 여부

등에 대해 최소한의 내부 검토 절차가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 누군가가 유사한 콘셉트나 문장, 표현을 사용하여 책을 내거나 사칭하는 문제가 생길 경우, 출판사에는 일정 부분의 책임 근거가 생긴다. 비록 통과되지 않더라도, 이 검토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은 내 창작물의 기원을 기록하는 하나의 증거로 남는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장 자가 출판으로 넘어가면, 비록 저작권 자체는 인정받을 수 있어도,
그 창작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왔는지에 대한 명확한 검증의 구조는 불분명해진다. 또한 출판사가 일차적으로 검토한 기록이 없기에, 도용, 사칭, 허위 이력에 대한 출판사의 도의적 책임도 애매해진다.



브런치는 그런 점에서 ‘검증 대기 중인 창작물’이 머무는 공간이기도 하다. 단순한 공개의 장을 넘어, 출판사나 미디어 관계자의 눈에 띌 수 있는 큐레이션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뉴스레터, 유료 구독 기반 콘텐츠 등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나는 이슬아 작가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인플루언서였다가 작가가 된 사람이 아니라, 꾸준히 글을 써온 사람이 유명세에 도달한 경우다. 내가 이슬아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였다. 유일하게 챙겨 보던 ‘마성의 사슴님'이 소개해준 숨은 보석같은 사람이였다.

그때 이슬아 작가는 지금처럼 많이 알려진 것도 아니었는데, 작은 인터넷 방송 비제이로부터 알려지면서, 그러니까 낮은 곳에서부터 시간을 들여 자신의 길을 만든 사람이지 타인의 방향을 과정 없이 모방하거나, 다른 결로 소비해온 사람들과는 명백히 다르다. 그녀가 발행하는 뉴스레터는 엄연한 창작물이고, 인지도가 있으며 독서를 원래 좋아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소비하고, 또한 글을 직접 쓰는 작가들과도 교류가 활발하기 떄문에 <폐쇄형 컨텐츠>가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그의 결과만을 차용한 콘텐츠들이 쏟아지는 지금의 현상에는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성의 사슴님 역시 다독가이자 애서가였다. 책을 실제로 읽고 좋은 목소리로 음악리뷰와 북리뷰를 했으며, 그녀의 세계로 초대해 좋은 취향을 갖게 하는데에 일조했다. 권위의식 없이 순전히 자신이 느낀 것들과 자신의 경험담을 그 누구보다 재미있게 풀어서, 나중에는 라디오 방송까지 했고 나는 그 분의 라디오를 모두 챙겨들었다. 이후 그녀를 표방한 수많은 유튜버들이 복제한 듯 생겨났으며, 전혀 다른 사람임에도 비슷한 출발로 사업까지 진행하는 분도 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뉴스레터라는 형식 자체는 세계적으로 유용한 소통 방식이지만, 그 안의 내용이

창작물인지,

정보 요약인지,

상업적 브랜딩인지

구분이 되어야한다.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폐쇄형 유통 구조이다.


비구독자는 그 내용조차 확인할 수 없고, 비평이나 인용도 차단되며, 콘텐츠가 세상에 실질적으로 유통되었는지조차 판단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나는 유통만 했으니 퍼블리셔다”라는 식으로, 책임 없는 발행이 늘어나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일이다.


구독자가 많지 않으면 훨씬 유용해진다. 인플루언서의 궁극적인 목적은 유명세를 바탕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데 있으며, 인지도는 쌓였지만 실제로 구매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속 없는 인기’로 작용하여 불필요한 구설에 오를 위험성도 함께 따른다.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일부는 콘텐츠를 실제로 소비할 사람과만 폐쇄적으로 소통하는 구조를 영리하게 선택할 수 있다.

이는 창작자가 직접 유통과 수익 구조를 통제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창작 윤리와 저작권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이유다.

“대세니까”, “요즘은 다 그렇게 해요” 같은 말은 아무런 윤리적 근거가 되지 않는다.
관행은 곧바로 정당성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많은 오남용이 제도적 검토의 필요성을 더 절실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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