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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한번만 더 믿어주자

by 사온

02:25

2025년 7월 19일, 토요일 (GMT+2)파리 시간


말도 안 되는 시간이, 말도 안 되게 조용하고, 말도 안 되게 무겁다.
하루를 산 건지, 하루를 흘려보낸 건지 모르겠다.


아침 열시, 열한시쯤 겨우 몸을 일으켰다. 밤새 못 잔 머리는 텅 비고, 눈은 뻑뻑하고,
커피 한 잔 사서, 뜨거운 햇볕 아래서 산책을 했지만 그게 산책인지, 의미없는 배회인지도 모르겠고.


이사한 뒤 뭘 엄청 바쁘게 한 것 같은데 지금은 거의 퓨즈가 나간 상태 같달까,

지난주 폭염과 비둘기 사투, 청소 등 생각하면 하... 뭐 웹페이지도 만들고 이것저것 아카이빙하고 뭘 구축하느라 시간을 보낸 것 같기는 한데 이게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싶기도 하고.


커피마시고 집에 돌아오면 너무 피곤해서 또 잠깐 쉬었다가...
피아노 연습 하다보면 할 일들이 계속 생각나서 집중도 안되고, 피아노 치다보면 배가 고프니 급한대로 뭘 좀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처리해야할 서류 보다보면 그냥 여기저기서 억지 부리는 것들 수습하는게 말이 안돼서 이거 매달리다가 죽도밥도 안될 것 같고. 갑자기 온 몸에 힘이 확 풀린다.


그러다보면 오후 네시가 넘어가고, 세탁물도 받아와야하고 미용실가서 엉덩이까지 길어버린 머리를 얼른 잘라야하고, 전화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에... 뭐부터 해야할지 모르겠고 당장 프랑스어 과외도 학생 귀국한 사이에 멈춰있고, 해야하는 연락 다 미뤄놓고 서류 앞에서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채 멈춰있는게 벌써 몇주 째다.


몸을 쓰는 전공이니 마사지와 운동 스트레칭에는 익숙한데, 사실 공부나 작업이란게 리듬을 그렇게 규칙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기도 하고. 딱 이러다 죽겠는데? 싶을 정도에 쉬어서 아주 곤란해질 상황만 만들지 않는 중이다 - 실제로 유학 중에 갑작스럽게 뇌에 이상이 오거나 쉬지 않아서 큰 병에 걸리는 사례를 너무나 많이 들어왔고, 나는 어릴 때 큰 수술을 겪었기 때문에 몸의 반응에 아주 민감해서, 혹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여도 어느정도 선을 그어둔다. - 어쩌면 그래서 속전속결로 뭔가를 이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귀와 뒷목으로 자그락자그락 기름이 터지는 소리, 물이 흐르는 기분, 혀가 꼬이고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고 입술이 마취제를 맞은 것처럼 얼얼하고. 이거, 병이 아닌거 난 제대로 알고있다. 정신병도 신체 질환도 아니다. 이런 증상으로 병원간다고 그 누구도 잡아내지 못한다 - 아마도, 증상을 만약 뒤쫓는다면 독일에서라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미시적이고 지엽적인 증상으로 분류해서 정의내리고 처방은 매우 간단한 방식의 휴식법을 권장하겠지. 뭐, 질환에 가까운 증세를 제대로 마주할 수있다는 것 자체로 어떤 안정은 될 수 있겠으나 난 그런식으로 몸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니다. 차라리 체증 내리듯 어깨에서 팔꿈치, 손까지 두들기며 달래준 다음 엄지 손을 따거나 따뜻한 물을 마시는 것이 도움이 되기에. - 물론 완치는 안됨.


그래도 사람 마음이, 몇년간 해외에서 병원을 찾은 것은 초반에 몇번을 제외하고 없다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전염병 - 코비드 - 을 제외하고 크게 앓아봐야 몸살정도로 계속 스스로를 버티고 있는 것에 가끔은 엄살을 부리고 싶지 않겠는가? 쥐피티에 저러한 증상들을 모두 읊었고, 잠시나마 뇌질환을 의심해보라는 말은 있었으나, 머리가 번쩍번쩍 깨질듯 아프고 눈앞이 하얗게 되는 그런 증상도 전혀 없이 그저 "뻐근함"과 감각적인 불쾌함에 그친다는 것으로 보아- 인공지능 역시 나를 잘 파악했다.


마사지 후 생긴 두통, 과거부터 강한 마사지나 스트레칭 후에 귀 뒤~뒷목으로 ‘자그락자그락’, ‘기름 깨지는 느낌’ ‘물 흐르는 소리’ 같은 귀 내부나 목의 소리 감지 몸이 굳어 있다가 풀리면서 뇌 쪽까지 신경 자극이 간 상태


통증과 자극이 강해서 → 신경계 과민 상태

혀 꼬임, 눈 감김, 심한 피로감 → 자율신경계 과부하

하지만 극단적인 병적 신호(구안와사, 뇌졸중 등)는 아닌 듯

이전에 비슷한 증상 경험 있음

처음 겪는 게 아니라서 어느 정도 신체의 패턴이 반복 중

너처럼 예민하고 몸 상태를 아주 잘 감지하는 사람은 오히려 이 ‘풀리는 과정’ 자체가 고통스럽게 느껴질 수 있어.


의욕이 떨어진 사람이 아니라, 과부하로 기능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의지 없음"이 아니라 너무 오래 버텨온 ‘지친 신경계’ 상태.


"풀리는 고통"은 회복의 일부입니다.



이건 무기력이 아니라, 회복 중인 시스템의 리부팅 현상이에요.

✔ 예를 들어 고속도로를 수리 중일 때 차들이 느려지는 건 “망가져서”가 아니라 “다시 달리려고 준비하는 중”이죠.

"이딴 시간의 흐름 너무 싫다"고 하셨잖아요?

그 말은 곧, "내가 살고 싶은 시간의 감각이 따로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그 말은, "내가 원하는 흐름이 있다"는 증거예요.
무력감 안에 숨겨진 진짜 열망을 포착하는 건 그 자체로 창작의 씨앗입니다.

지금 일기 쓴다 그랬죠?

그 안에 오늘 하루 다 집어넣으세요.
시간에 쫓긴 내장 속의 고통, 흐르는 기름 소리, 지는 빛, 못한 일, 했던 일.
전부 다 적어요. 다 썼다고 느껴질 때까지.


그리고 이 미친놈이 이러네...

지랄은 지랄인데, 가치 있는 지랄이니까 계속 해.
대신 가끔은
진짜 그냥 “배고픔, 씻음, 쉬었음, 잤음”
이 네 단어로도 하루 요약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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