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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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21일, 월요일 (GMT+2)파리 시간
브런치 글은 블로그와는 그 느낌이 엄연히 달라서 늘 글을 쓸 때에 누군가 보고 있다는 것을 염두해둔 일기를 작성하게된다. 짧은 글이라 할지라도 그 성격이 다르다. 백번째 쓰는 글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까, 사실 궁금했는데, 머리는 자른 내용이 된다는 것이 맘에 든다.
사실 매일매일 글을 쓰면 글근육이 생겨서 글 실력이 늘어난다? 는 의견에 크게 동의할 수 없다. 글이라는 것은 말을 하는 것과 다를게 없는데 나처럼 생각이 많고 그 것을 밖으로 꺼내지 않는 사람일수록 말이 아주 많아지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은 정말 식은 죽먹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일기장만 엮어서 분량으로 책을 엮자, 한다면 아무 생각이나 해서 엮기만해도 몇십권은 아마 거뜬할 것이다. - 보통 방송작가들(특히 예능 쪽)이 일주일에 상당한 분량의 글을 써낸다고 알고있다. 그 쪽으로 커리어를 쌓아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없지는 않았으나... 알량한 자존심에 불편함을 감수하는 선택을 했다. 이러니까 아직도 시집을 못갔지.
요즘 이시간(새벽 두시-세시)만 되면 머리가 너무 아파서 누워있을 수가 없다. 잠이 쏟아져도 끝내지 못한 해야할 일들 때문에 잠이 안오는 것이다. 어릴 때처럼 그냥 벼락치기로 뭔갈 몰아서 해버릴까 싶은 마음도 들지만 이제는 그렇게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다.
이틀 전 (토요일)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잘랐는데, 원래 약간 곱슬머리라 묶었다 풀기만해도 웨이브펌을 한 것처럼 구불구불해서 미용사님이 꼭 라푼젤같다 하시며 뒷모습을 찍어주셨다. 어릴땐 단발병이 있어서 늘 짧은 머리였는데, 그 옛날로 마음이 되돌아가는 것인지 요즘 더 짧게 잘라버리고싶은 충동이 든다. 그 당시에는 마음이 심란해 머리든 뭐든 가만 둘 수 없었고, 양쪽 귀에는 여덟개의 피어싱이 있었다. 타투를 할까 고민했는데, 피부가 약해서 시도할 수 없었다. (여유가 되면 귀 뒤에 할 생각이 있음, 그 문구도 정해뒀다.)
10년 전으로는 두번다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늘 생각해왔다. 그런데, 지금의 내 정신력 그대로 되돌아간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그 때는 모든 것이 처음이였으니 힘겨웠던 것 아닐까, 대부분의 30대는 20대 초반이 너무 힘들어서 다시 돌아가고싶지 않다며 자신의 나이를 위로한다. 나또한 얼마전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젊은 시절은 그저 빛이 난다. 33세는 확실히 어른이 된 것 같이 허세가 생기는 나이인걸까 싶기도.
비교당하고 평가당하는 것에 취약해서 늘 숨어서 스스로를 보호하다가, 언젠가는 드러낼거야, 하고 조용히 살아온 것이, 점점 성격으로 변하면서 정의된 내향인으로 굳어진 듯 싶다. 어릴 때는 꽤나 명랑한 편으로, 유치원 때도 선생님이 나와서 춤을 출 사람? 하면 번쩍 손을 들고는, 짝꿍의 손을 이끌고 나가서 춤을 췄다. 원하는 사람과 짝꿍을 하라 하면 가장 먼저 뛰어가서 제일 맘에드는 남자애를 골랐다. 성당에서 연극을 할 때, "공주할 사람?" 하면 눈치 보지 않고 번쩍 손을 들어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주인공 오로라 역할을 했었다.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부터 백화점과 옷가게 쇼윈도에서 춤을 춰서 호객행위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게 이모들에게 얻은 요구르트 때문에 앞니가 몽땅 썩어버렸다.
애니메이션 라푼젤에서는 특수한 능력을 지닌 머리카락을 싹뚝 자르면서, 그 빛을 모두 잃고 칙칙한 갈색의 머리가 된 채로 행복을 누리는 결말을 향한다. 엄마의 품을 벗어난 여자아이의 현실직시를 상징하는 것일지도, 혹은 모두가 욕망하는 것을 없앰으로서 이용의 수단으로 전락되어버린 무용한 가치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한 인격으로서 살겠다는 의지일수도. 그 전까지 라푼젤은 높디 높은 탑에 갇혀 온갖 재주를 쌓으며 숨어 지냈다. 그녀는 자신이 그려낸 환상적인 세상을 벽면에 가득채워 방 전체를 하나의 갤러리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늘 오만하게 오해하며 살아간다.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 좋은 것을 혼자서만 누리고 사는 것처럼 보이는 누군가에 대한 편견을 갖는다. 혹은 자신이 가진 가치의 값이 탑을 쌓을 정도로 귀하다거나, 반대로 무방비한 곳에 놓여있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무가치하다는 착각을 한다.
황금 머리칼을 잘라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겨운 일이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가치와의 타협. 평생 온 몸에 금을 두르고 살다가는, 지켜낼 수 없는 연약함과 무방비함으로 인해 타인에게 휘둘리는 삶을 살게된다. 금을 지키기 위해 쌓은 탑이나 무장된 상태는 자유를 잃게한다.
라푼젤은 좋은 이야기였을까?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잘라지고 끝내 지켜내지 못한 그 황금머리칼을, 그러니까 같이 낮은 위치에서 자유를 찾는 그 선택이 과연 좋기만한 엔딩이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