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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거짓말

by 사온

02:19

lundi 11 août 2025 (UTC+2)Heure (Paris)


1. 편두통이 다시 시작되었다. 손으로 일기를 쓰지 않으니 일주일 내내 바삐 무엇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음. 다시 그림일기를 써야하는데 간신히 정리한 방, 그리고 연락을 주고받은 도르도뉴 디렉터... 이제는 정말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것들을 직면해야하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새벽 두시에 편두통이 다시 찾아와 누울 때마다 골치, 다시 전신 마사지를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하고 자는 습관을 들이려고 한다.


2. 가까이 가고싶어도, 어쩐지 나의 일상을 행복하게 꾸려 보여주는 것들이 그렇게까지 호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글을 쓰고, 계정을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일상을 지켜내고 기록하기 위한 것인데 교류하고 소통할수록 다를 것 없다 생각하는 사람들의 박탈감을 체감한다. 내 포스팅으로 하여금 어떠한 귀감이 되거나 재미를 느끼는 것 보다는, 드러낼 수 없는 우울감으로 내게 호감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3. 착한 사람들이라서, 속으로만 곪는다 - 그들에게 더이상 상처를 줄 수 있는 업로들을 할 수 없다. 똑같이 생활고와 미래를 걱정하며, 불안함을 안고 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가치관과 환경은 어쩌면 에일리언처럼 다를지도 모른다. 이 일상을, 너무 다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그래서, 스레드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4. 빛나는 이력과 생활 꿀팁, 일상 등을 좀 더 친근하게 업로드한다면 달랐을까. 목소리를 노출하고 더 많은 사적인 이야기를 했다면 달랐을까. 일상의 단편적인 부분을 공개하니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게는 그런 빛나는 이력이 없고, 일상을 모두 공개할 생각도 없다. 이미 해외살이 자체로 컨텐츠를 꾸려나가는 사람은 많다. 나는 그런 것 자체가 컨텐츠라기보다는 그저 내 그림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내 일상을 공개하는데 의의가 있었다.


5. 한국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싶었고, 때로는 온라인에서 소통을 하며 날 모르는 사람들과 최소한의 정보만으로 오고가는 것에 환영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때가 있다. - 악의가 없고, 친절하다면, 그 것으로 충분할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인관계라는 것은 이해관계가 전혀 없고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할지언정 상식적으로 흘러갈 수 없는 것이다. 더더욱 내 개인정보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그런 이유다. 가끔은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아니, 가끔이 아니라 많아서다. 그래서 가끔은 위악도 떨친다 - 온라인에서나 쓰이는 희한한 신조어라던가, 가학적인 표현도 서슴없이 쓸 수 있다.


6. 맹목적이고 이유없는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에는 여러 카테고리가 있는데, 나는 꽤 많이 해당될지도 모르겠다. 가면을 쓴다. 한없이 가벼운 사람으로 가면을 쓴다. 난 대중적인 사람이고, 쉬운 사람이라고-. 웃는 낯에는 침을 뱉을 수 없지만, 떄로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일으켰던, 모짜르트의 음악은 꽤 자주 아프다. 심장을 도려내는 것 처럼.


7. 상업일러스트도, 강아지 캐릭터들도, 늘 달콤하고 행복해보이는 것들로 채운다 - 난 이런 장식적이고 가벼운 것들이 좋다, 그래서 프랑스가 좋다. 장엄한 역사소설이나 어떤 이념이 담긴 그런 것들은, 당장 현실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8.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가는 사람에게 호감을 더 쉽게 느낀다. 기회가 되면 위로를 해줄 수 있는, 그러니까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사람냄새"나는 사람이라며 좋아한다. 그렇지 않으면, 쉽고 일차원적인 문장을 뇌리에 박히게 서술해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얻는 것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뉘앙스를 좋아한다. 얻을 수 있는 것이 뚜렷한 사람의 시혜적 태도에 의지한다.


9. 그렇지만 그 모든 것들에서 떨어져 때로는, 성직자보다 더 성직자같은 사람을 볼 때도 있다. 이럴 때에는 20대 초반의 개고생에 감사를 하게 된다. 한 때 일했던 대형마트의 코너에서 일하시는 여사님들이 그러했다. 나약한 공허감이 들 때마다, 그 시절 직원 휴게실에서 늘 웃고계시고, 쉬는 시덥잖은 농담을 하며 깔깔 웃으시던 분들을 떠올린다.


10. 그 때 같이 일했던 직원 중 하나는, 태어나서 나보다 근성있고 독하게 일하는 년은 처음이다, 느낄 정도의 친구였다. 비뚫어지지 않고 자란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싶었던 그 친구는 레즈비언이였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은 내리지 않는다. 나는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기에, 인간성 나쁜 것들과, 그에비해 너무 괜찮은 친구들을 모두 봤기 때문이다. 무튼, 성소수자라서 그 친구가 뭔가 특별하게 대단히 지내고 있을 거라는 뉘앙스가 아니라는 글을 쓰고싶었다. 지금쯤 무엇을 하고 지낼지 모르겠지만, 내가 한참 힘들어할 때 그녀가 내게 말했었다. 다른 코너 여사님들 늘 웃고계시는 것 보고 배워야한다고 - 늘 우울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처럼 지낼 수 없는 분들이라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누가 열시간 이상 그 중노동을 매일매일 웃으면서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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