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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작가가 아닌데

by 사온

“Desire is the desire of the Other.”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자크 라캉(Jacques Lacan)


체취 없이 태어난 고아는,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는 타인의 향을 소유하기 위해 살인을 시작했다. 그는 천재적인 후각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향수를 만들었고, 그 향기는 군중이 집단으로 사랑하도록 매혹하기에 이른다. 결국 연쇄살인범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에 대한 사형 집행은 실패로 돌아갔다. 살아남은 그는 마지막 남은 향수를 온몸에 적셨고, 그 순간 사람들은 그를 향해 몰려들어, 그의 육신을 탐욕스럽게 삼켜버린다.


이 이야기는,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이다.


오래전 누군가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넌 너무 시크해.”


선배의 그 말은 약간 맵고, 따가웠다. 무슨 의미냐 묻자, 그가 답했다.


“좋고 나쁠 건 없는데, 비밀이 많다는거지.”


무색무취하다는 나에게는 그의 담배 냄새조차 좀처럼 배지 않았다. 우리 과 학생들에게만 허용된 흡연구역, 그 작은 술집은 밤새 작은 등불만 켜진 채 잔잔히 빛났다. 그 밤을 지나 새벽이 찾아왔다. 그리고 조용히 셔터가 내려갔다.


실제로 그동안의 내 행보는 꽤나 독특했다. 학업을 중단하기도 했고, 갑작스레 외국으로 떠나버리기도 했으며, 낯선 곳을 여행하곤 했다. 그런 선택에 대해 조금이라도 누군가가 알게 되는 순간, 따라오는 건 언제나 뻔한 조언과 원치 않는 관심, 그리고 듣고 싶지 않은 수많은 무책임한 의견들이었다.


그렇게 나의 일상은, 가까운 사람들과 사적인 사이에서 오가는 교류 속에 드러나기보다는 이름 없는 공간에 기록되었다. 아무도 모르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나와, 나를 모르는 사람들만이 아는 곳에는 타인의 손길이 닿을 수 없었고, 그렇게 나만의 세계를 마법처럼 풍요롭게 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예술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저 살아 있다는 증거, 한 사람으로 숨 쉬고 있다는 작지만 또렷한 확신에 불과했다.


나는 그조차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노출시키는 순간, 인플루언서들을 비롯해 방송 작가, 심지어 여배우까지—마치 우연이 아닌 것처럼—내 사적인 일상을 유명세에 힘입어 그들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해 쏟아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상념에 불과했던 감성적인 문장, 독서와 여행을 통해 느낀 독특한 감상은 누군가의 손을 거치며 왜곡되고, 악용되었으며, 때로는 누군가의 입을 통해 선동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초콜릿 중에서도 유독 손이 가는 종류가 따로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스트리밍 플랫폼의 인기 시리즈보다 목소리만 들려오는 라디오가 더 깊게 스며든다. 그런 소소하지만 특별한 의미 자체가 상품화되면, ‘브랜딩‘이라는 이름 아래 ‘벤치마킹’이라는 거창한 수식이 붙는다. 지워진 감성에는 짜여진 전략이 채워지고, 그렇게 누군가의 고유한 향기는 다른 누군가의 상품으로 스며든다.


전략적인 크리에이터들은 ‘진정성’조차 또다른 전략적 수단으로 삼는다. 선한 의도를 품은 듯 한 시장 전략은, 사실상 자기 최면에 가깝다. 소비자를 향해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는 낙관은 스스로를 취하게 만들고, 서서히 실존을 마비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외부의 자극 없이는 아무것도 창조해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휘몰아치는 선전의 폭풍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복제된 인격으로서 남는 것은 오직 이름 하나뿐이다. 그마저 언제든지 잊혀질 수 있다는 불안은, 그들에게 또다시 타인의 서사를 훔쳐 끊임없이 새로운 형상으로 진화하게 한다. 타인의 껍데기를 뒤집어쓰지 않고는 온전한 스스로가 될 수 없게되는 그 지점에서, 무작위로 그들의 눈에 띈 누군가의 추억은 결국 스토킹의 대상이 된다.


끊임없이 누군가의 시선 아래 있다는 느낌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쾌했다. 그래서 더욱 철저히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사적인 일상을 숨기기 시작했다. 대신, 모든 작업에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가 행사되도록 구축했다. 그러나 오로지 저작권만으로 간신히 보호되고 있는 무명의 작업물들은, 명확한 맥락 없이 가볍게 왜곡되어 일시적 유행의 일부로 또다시 소비될 것이다.


가끔, 내 사생활을—어쩌면 강탈했다고 볼 수 있는—사람들의 sns 계정을 들여다본다. 매일같이 피드가 올라오던 한 계정은, 나라는 아이디어의 원천이 사라지자 눈에 띄게 생기를 잃어갔다. 다른 쪽에서는, 자신만의 방향을 조금씩 모색하려는 기색이 엿보이기도 했지만, 끝내 한계에 부딪혀 결국 잠정적 휴식을 선언했다. 우리는 마주한 거울처럼 서로를 감시한다. 이 사회에는 더 이상, 비밀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스템 밖의 창작자는 늘 위험하다. 이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말했는가’가 아닌, ’ 어떻게 유통되었는가‘다. 스스로 느끼고, 겪고 새겨온 것들 - 겨우 ‘향수’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그 존엄을 주체적으로 지켜내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세상과 연결되어야 한다. 지켜내지 못한 수많은 나의 조각들을 수도 없이 많이 고치고 다듬어 세상 밖으로 꺼내고 있다. 그러나 그 곁에서 흘러나온 부산물마저, 타인의 서사를 기워입는 감성 마케터들에게 무기력하게 강탈당하고 만다.


예술가들은 판옵티콘이라는 투명한 감옥에 갇힌 채,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처럼 매일같이 창조하고, 또 반역한다. 독수리에게 쪼아 먹히는 그들의 간은 밤마다 다시 자라나고, 지워지지 않는 영감은 불꽃이 되어 타오른다. 나는 그 불꽃이 사람들에게 건네는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사라지지도 꺼지지도 않는 - 예술이란 이름의 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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