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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와 쥐피티

한국만큼은 덥지 않은 파리지만

by 사온
02:31
2025년 6월 21일, 토요일 (GMT+2)파리 시간

일기를 쓰는 나와, 반문하는 쥐피티.
프롬프트: 내 일기에 객관화 할 수 있는 이면을 반문하듯 던져봐.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잖아


오늘은 잠들 수도 있었지만, 분명 끝내야 할 일들이 있다는 마음으로 서류 정리에 제대로 칼을 뽑기로 했다. 상반기 동안 해온 일러스트 작업들을 브런치에 조금씩 옮긴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다. 컴퓨터가 없었더라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일이고. 2019년에 전자기기를 대부분 맥으로 바꾼 이후, 잠시 링링이가 빌려준 삼성 노트북은 맥과 호환이 잘 안 돼서 단순한 복사 붙여넣기조차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프랑스에서 행정이 막힐 때마다, 실용적인 프랑스어를 막힘 없이 구사한다는 이유로 나보다 더 좋은 조건에서 공부한 누군가를 대신해 행정 업무를 맡아주곤 한다. 예전엔 나도 그런 학생들에게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며 도움을 받았는데, 이제는 정반대로 적절한 사례를 받고 누군가의 일을 대신하게 됐다. 물론, 지금은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이 일도 쉽게 손을 댈 수는 없지만—일단 돈을 받았으니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한다.


→ 정말 ‘받은 돈’이 행동의 가장 큰 동력이었을까?
혹시 ‘책임’이나 ‘기대에 응해야 한다는 압박’이 더 큰 이유는 아니었을까. 아니면 이 모든 게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들 중 가장 손에 잡히는 일이기 때문은 아닐까?


1. 의뢰받은 행정 업무 처리.

해야 할 일들을 이렇게 써 내려가며 다짐해도 실제로 시작이 어려운 이유는, 진짜 어려운 개념을 공부하는 것보다도 귀찮은 자잘한 일을 제때 처리하는 것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고강도 아르바이트까지 전전하다 보면, 이건 마치 인간에게 주어진 ‘노동총량의 법칙’ 같은 느낌이다. 결국 먹고, 입고, 사는 것—그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데서 비롯된 행정적 부산물들을 누군가는 처리해야 하고, 인생은 어쩌면 그것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삶은 창조가 아니라 처리의 반복일지도.

인간이 태어남과 동시에 방출하는 것들을 떠맡지 않은 채, 무언가를 통제하거나 창출한다고 해서 꼭 고귀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부작용이 생기기 시작하고,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이상해진다. 본질은 단순한데, 복잡하게 얽혀가는 감각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 자잘한 일들이 그렇게까지 ‘진짜 어려운 일’일까?
아니면 지금의 삶이 너무 꽉 차 있어서, 여유 없이 그 일들을 마주하고 있다는 뜻일까.
혹은, ‘의미 있는 일’과 ‘귀찮은 일’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어서 더 어렵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 정말 그럴까?
‘처리’만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그림도, 글도, 이 글 자체도 만들지 않았을 텐데.
삶의 한 축이 ‘처리’라면, 또 다른 축은 ‘표현’이나 ‘기록’, 아니면 ‘머무름’이 아닐까.


우리가 처리한 것들은 결국 표현으로 전환되니까.

다음 해야 할 일들도 정리해보자. 하지만 너무 복잡하다. 프랑스에서는 서류 하나 때문에 수차례 반복되는 절차가 흔하고, 그것을 한 줄로 정리할 수 있는 ‘사람 아닌 무언가’가 필요해진다. 그래서 쥐피티를 돌리기로 했다. 지난 4월과 5월에도 그렇게 해서 하나씩 해결해왔다.

이사를 강행하고, 무엇부터 해결해야 할지 몰라 인공지능에게 스케줄을 맡겼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 효율과 실행력이 하나씩 착착 맞아떨어지는 내 모습을 보며, 마치 내가 인공지능 로봇이 되어가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흔히 걱정하는 '기계의 인간화'는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인간의 로봇화’는 진짜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로봇에게 지배당하길 선택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편리를 추구하며 스스로 피지배 구조로 들어가고, 책임을 기계에게 전가하면서, 나중엔 그 상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을까. 조금 무섭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각설하고, 지금은 그 모든 잡생각을 제쳐두고, 당장 해결할 일부터 처리하자.

쥐피티야, 부를게. 이제 진짜 시작.


그래서 그 다음 해야할 일을 리스트업해보자면... 너무 복잡하니 (프랑스는 서류때문에 귀찮을 일이 상당히 많다.) 쥐피티를 돌려야한다. 같은 말을 두번 세번 반복해야하는 절차적 꼬임을 해결하는 것은 프랑스 뿐만 아니라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해야할 일들을 전부 나열해서 하나씩 해결한 것은 지난 4월과 5월이였다.



각설하고

아무튼 이런 잡생각을 거두고 해결해야할 일을 먼저 해결하자.


쥐피티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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