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와 식빵 세조각

잉글리쉬 브렉퍼스트는 끔찍해!

by 사온

나는 원래부터 이재에 밝지 못한 사람이다. 계획적인 소비 습관이 잘 되지 않아서, 절약을 해도 다른 구멍으로 돈이 새나가는 걸 종종 뒤늦게 깨닫곤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뼈아픈 건, 영국이 유럽연합을 곧 탈퇴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일이었다. 독일폰 로밍이 안 된다는 걸 알지 못한 채, 급성 위염을 앓고, 에어비앤비 주인이 갑작스레 소리를 지르는 이틀 간의 혼란 속에서 계속 도착하는 문자를 그냥 "해외 출국 알림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그 대가는, 약 25만 원에서 30만 원 사이의 요금 폭탄이었다. 외국을 자주 오가려면, 정치적 이슈조차 개인의 리스크가 된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을 때에는 그런 지출로 밥을 굶어야할 정도로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매 순간이 불안했다.


영국행은 정신없었다. 가장 싼 비행기를 미리 예매해 놓았지만, 공항에서 단 5분을 놓쳐 다시 티켓을 사야 했고, 급하게 탑승한 제트기는 오히려 나에겐 하나의 위안이었다. 고소공포증이 없던 터라 속도감 있는 비행은 마치 롤러코스터 같아 조금 즐겁기까지 했다.



페나스, 피에


그렇게 나는 한밤중 런던에 도착했고, 다음날 새벽 버스를 타기 위해 카페에 앉아 밤을 새웠다. 비몽사몽한 채 도착한 곳은 웨일스의 수도, 카디프. 숙소는 그 근방의 페나스라는 작은 마을이였는데, 생각보다 감흥이 크지 않았다. 프랑스 바닷가처럼 푸르고 낭만적인 풍경 대신, 흙탕물 같은 바닷물과 매일같이 내리는 비, 우울한 회색빛 하늘이 전부였다.



아시아마트마저 찾기 힘들었던 웨일스 공국, 그리고 영국에 살 때에 그나마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은 잉글리쉬 브렉퍼스트였다.

중세 튜더 양식의 건물들과 노팅힐에서 본 듯한 아기자기한 집들... 물론 새롭고 예뻤지만, 어쩐지 나는 이 나라와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 낯설고 신기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붙지 않았다. 내가 상상했던 곳과는 어딘가 엇갈려 있었고, 이곳의 문화나 분위기엔 쉽게 스며들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숙소로부터 도망쳐야하는 일이 발생했다. 새벽에 갑작스럽게 비명을 지르는 숙소 호스트로 인해, 공포에 질렸다. 다행히 동네 교회 사람들이 날 구출해 주었고, 따뜻한 노부부가 무려 4일간 무료로 숙식 제공을 해주었다. 운좋게도 그 곳은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한 두명의 아들과, 피아노를 전공한 뒤 엔지니어로 직업을 전향한 막내아들, 세명의 아들이 모두 출가한 상태로 그 어머니는 언어학을 전공한, 핀란드 출신의 영국 귀화 여성이었다.


페나스에서 만난 핀란드인 친구 덕에 같이 셰익스피어 원문과 신문 사설 읽기, 그리고 에세이 첨삭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은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고 싶은 나의 목적에 흔쾌히 도와주신다고 하셨고, 묵지 않는 기간에 일주일에 2번씩 무료 영어 과외를 해주셨다. 그녀는 한 손으로 들면 팔이 휙 꺾일 정도로 크고 두꺼운 사전을 들고 와서는, 인터넷이 아닌 종이 사전으로 단어의 뜻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가르쳐주었다. 이미 영국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사람이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명확한 이해를 위해 문장 하나하나를 꼼꼼히 분석했다.


내게 익숙했던 수능식 전략 독해가 아니라, 언어 자체에 대한 이해로 나를 이끌어준 것이다. 그녀를 통해 나는 어원에 대한 깊은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원래도 셰익스피어를 좋아했지만, 사전 안에 기록된 고대 영어가 그의 원문 속 언어로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은 내게 꽤나 특별한 감성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그 곳은, 피아니스트 아들이 자란 곳이기 때문에 원할 때 언제든 칠 수 있는 피아노가 놓여져 있었다.


그 후로도 나는 외국어 공부를 놓지 않았다. 이사할 때마다 도서관을 찾아 회원증을 만들고, 하루 아홉 시간 이상을 붙들고 공부했다. 설령 독일 체류에 실패했더라도, 거기서 살아낸 시간만큼은 내게 무엇이든 남아야 한다고 믿었다.


"영어가 안 되면 유럽에서 그 어떤 것도 못 해."(피아니스트 친구)

"프랑스어부터 배워와라"(프랑스인 피아노 선생님)

" fuckin chinise, 돈부터 내놔"(독일인 플랫메이트)


이 모든 말들이 그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세 언어로 채워나가며 거처를 옮겼고... 어느덧 셰익스피어의 생가 근처까지 이사하게 되었다.


망설임 없이, 그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을 찾아갔다.


단순히 한 작가의 흔적을 밟는 것이 아니라, 언어와 나 자신의 역사를 함께 따라가고 있었다. 사실 이 여행을 하면서도 상당히 불안했다. 통장 잔고는 바닥이였고, 약간의 계획을 벗어난 지출로 진짜 굶어야하는 상황까지 갔으니까. 하루에 식빵 세조각과 잼, 그리고 커피 한잔으로 버텼다. 위염이 심각해져 위액을 매일 쏟아낼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어있었다.


정작 이 순간엔 알지 못했다. 그 모든 여정이, 5년 뒤 일러스트 계정, ‘pastelbard’라는 이름을 완성하는데 그토록 깊이 관여하게 될 줄은.


현재 해당 계정이름은 coucounene 브랜드명에 맞춰 변경되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coucounene.atelier/




셰익스피어가 살던 곳,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에 위치한 고서점.


셰익스피어에게는 아주 오래된 별명이 있다.
“The Bard of Avon”
직역하면 ‘에이번 강변의 음유시인’이다.


이때의 "Avon(에이번)"은 단순한 고유명사가 아니다. 고대 브리튼어 “abona”, 즉 ‘강(river)’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그러니 Avon River라는 표현은, 사실상 ‘강강(江江)’이라는 반복된 말이다.

그의 고향, Stratford-upon-Avon. 말 그대로 “에이번 강 위의 스트랫퍼드 마을”. 그 곳에서 셰익스피어는 태어나 강가의 시인이 되었고, 무대 위에서 언어를 노래하며 한 시대를 기록했다.


그에게 ‘bard(바드)’—시인, 음유시인이라는 칭호가 붙은 건 그의 삶 전체가 곧 시였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일러스트 계정의 아이디를, 그의 별명에서 빌려온 ‘bard’에 'pastel'을 덧입혀 지정했다.

어쩐지 그는 내게 포기하고 싶지 않을 때마다 등장해 손을 잡아주는 사람과 같다. 그 시절 극작가로 명성을 떨쳤던 것처럼, 그의 이름은 늘 내 삶 어딘가에서 시대를 거스르고 반짝이고 있었다.


초반의 이야기는 모두 스토리의 진행에 맞게, 일어난 사건의 순서가 아닌 스토리 전개의 순서대로 진행됩니다. 축약본처럼 빠르게 진행되는 초반의 전개는 뒷 이야기에 더 풍성하게 사진과 함께 제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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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은 모두 일러스트로 그려졌으며,

동화처럼 그려진 그림과 그 내용은 웹사이트에 수록되어있으니, 놀러오세요!

https://www.coucounen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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