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이름 위에 별을 그리다 (2)

독일에서도 이사?!

by 사온


독일 프라이부르크 홈스테이 집. 뒷뜰에 연못이 있었다.



독일 프라이브루크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 첫날 저는 세상이 한순간에 손바닥을 뒤집듯 달라진 기분을 느꼈습니다. 마치 복권에 당첨된 것 처럼, 홈스테이 학생들 중 가장 좋은 조건의 집에 머물게 된 것이에요. 독일인 아주머니, 아저씨도 행운처럼 좋은 분들이였고, 어학원에서 만나 가장 친하게 지냈던 캐나다인 친구의 가족들과 각별한 사이인 것까지 알게 되면서, 좋은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프라이브루크 외곽의 아우(Au)


홈스테이 기간이 끝난 뒤, 저는 피아노를 놓을 수 있는 방을 찾기 위해 어플리케이션 <WG-Gesucht>를 통해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조건은 단 하나, 피아노를 놓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공간이 충분히 여유로운 방이었습니다.


외국인이자 학생 신분으로 독일에서 집을 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실제로, 방을 구하던 한인들 중에는 결국 집을 찾지 못해 귀국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저처럼 ‘피아노를 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는다면, 그 불안함은 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홈스테이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도움, 그리고 어학원에서 만난 가장 친한 친구 덕분에 마음을 조금은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캐나다인이자 독일 국적도 가진 친구였는데, 캐나다에서 자라 독일어를 거의 하지 못해 저와 같은 어학원에서 독일어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점차 가까워졌고, 프라이부르크 외곽의 호수로 놀러갔던 기억, 그녀 삼촌 이야기도 차츰 이어질 예정입니다.


서울보다 훨씬 합리적인 조건, 연습을 소음이 아닌 일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 무엇보다 모든 일을 함께 상의하고, 각 결정마다 단순한 이득관계가 아닌 타당한 ‘이유’가 따라붙는 독일식 사고방식은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실용적인 태도를 넘어서, 어떤 철학적 기반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철학자 칸트의 나라’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죠.


외국인이 학생신분으로 살 곳을 찾는 것은 쉽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집을 구하던 중 귀국을 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는데, 그 와중에 피아노를 둬야하는 조건까지 갖추고 찾는 것이 많이 두려웠지만, 홈스테이 아주머니 아저씨도 도와주셨고, 어학원에서 사귄 가장 친한 친구 덕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캐나다인이지만 동시에 독일인인 친구는, 캐나다에 자라서 독일어를 구사할 수 없는 이유로 집근처 어학원에서 독일어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의사인 외숙모와 프라이브루크 지역에서 여러가지 인권관련 활동을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등의 활동을 하던 삼촌과 함께 외곽의 호수로 놀러갔던 기억까지, 이 모든 내용들은 뒤이어 나올 예정입니다.


꼭대기 층의 내 방.

유럽에서는 여러 명이 방을 나누고 부엌과 화장실을 함께 사용하는 공동 생활이 흔한데, 저 또한 그 문화 속에서 독일인 세 명과 함께 살며 서로 다른 문화를 배우고, 때로는 부딪히고, 다시 이해해가며 다양성의 의미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진은 프라이브루크 외곽의 아우(Au)에 머물던 시절, 제가 살던 집 창밖의 풍경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마을은 아주 거대한 산맥에 둘러싸여 있었어요. 저렇게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멀리서 보면 거의 검게 보이는 숲—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블랙 포레스트(Black Forest)’, 독일어로는 ‘Schwarzwald(슈바르츠발트)’, 직역하면 ‘검은 숲’입니다.


이곳은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위치한 산악지대로, 그림 형제가 무수한 동화 속 공포와 환상의 모티브를 얻은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죠. 울창한 침엽수림 사이로 깊은 안개가 드리워지던 날이면, 정말로 동화 속 숲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익히 알려진, 성심당에서 판매되는 ‘키르쉬 토르테’의 본고장이기도 합니다. 블랙 포레스트 일대의 마트에 가면, 동네에서 갓 따온 체리가 싱싱하게 진열돼 있어요. 그 체리를 아낌없이 넣고 럼(Rum)을 잔뜩 부어 만든 무겁고 진한 초콜릿 케이크를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체리(키르쉬)’와 ‘케이크(토르테)’를 뜻하는 Schwarzwälder Kirschtorte, 즉,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입니다.


아우에서는 오래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곳을 관리하던 매니저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고,
다른 플랫메이트들과도 마찰이 있어왔어요. 저에게까지 심각한 인종차별과 괴롭힘을 가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사를 결심하게 되었죠.



메아딩안의 방


그렇게 그 다음에 도착한 곳이 바로, 포도밭이 드리워진 조용한 마을, 메아딩안(Merdingen)입니다.

이곳에서 만난 주인 할머니는, 그동안 제가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사회 안에서 '사회성'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받던 수많은 불합리한 타협과 체념들에 더 이상 무기력하게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후 편에 더 깊게 담을 예정이니, 이번에는 살짝 넘어가기로 해요.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피아노가 놓여 있죠?


제가 살던 이 남부 독일은 프랑스 국경과 가까워,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바로 프랑스 도시들과 연결됩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이 되었다는 도시, 콜마르(Colmar)에서 지금 사진에 보이는 나무 피아노를 만나 이렇게 집에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들여다 놓은 피아노인데, 저는 끝내 독일 체류에 실패하고 맙니다.

그렇게 영국을 전전하게 되죠. 이후, 영국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파리에 잠깐 들러 한인 신문사 사장님께 하숙하며 지내다가, 결국 파리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됩니다.


다음 편은, 영국에서의 일화와 더불어 제가 그 곳을 추억하며 그린 그림 작업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이사한 지역만 열거하는 것은 스토리 전개상 다소 지루함이 느껴질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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