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아우에서 메아딩안으로. 그리고, 스위스.
지난 이야기: 아우에서는 오래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곳을 관리하던 매니저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고, 다른 플랫메이트들과도 마찰이 있어왔어요. 저에게까지 심각한 인종차별과 괴롭힘을 가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사를 결심하게 되었죠.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로, 포도밭이 드리워진 조용한 마을, 메아딩안(Merdingen)입니다.
이곳에서 만난 주인 할머니는, 묵직한 삶의 태도를 몸소 보여주신 분이었어요. 그동안 제가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사회 안에서 '사회성'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받던 수많은 불합리한 타협과 체념들에 더 이상 무기력하게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된다고요. 그 이야기는 본편 더 깊게 담을 예정이니, 이번에는 살짝 넘어가기로 해요.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피아노가 놓여 있죠?
제가 살던 이 남부 독일은 프랑스 국경과 가까워,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바로 프랑스 도시들과 연결됩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이 되었다는 도시, 콜마르(Colmar)에서 지금 사진에 보이는 나무 피아노를 만나 이렇게 집에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메아딩안에서의 생활은 매일 밤 파티와 소음으로 가득 찬 플랫이였어요. 저를 제외한 모든 플랫메이트들이 남성 직장인이였고,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저는 혼자만의 시간을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부활절 특가로 스위스의 호텔을 예약하고, 모든 걱정과 서류를 뒤로한 채 떠나게 됩니다.
저는 산보다는 바다를, 바다보다는 호수를 좋아합니다. 프라이부르크의 호수 역시 녹음이 짙은 숲아래 고요히 머물러, 그 깊은 매력이 있었지만, 이 곳 스위스의 호수는 물이 맑아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기찻길 옆을 따라 걸어도 얕아서 마치 지구를 횡단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곳에서 저는 닷새 동안,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호숫가를 따라 이어진 기찻길을 하염없이 걷기만 했습니다.
꼭대기에 눈이 걸쳐진 산, 맑은 호수, 기차... 좋아하는 것들만 가득한 5일은 마치, 독일로 오기 전 잠시 머무른 위빳사나* 명상을 하던 기간과 같았습니다. 휴대폰을 멀리하고, 그저 호수만 바라봐도 반나절이 그냥 지나갈 정도로 그 시간은 짧았어요.
*위빳사나: 위빳사나 명상은 불교 수행 전통에 따른 체계적 관찰 명상으로, 묵언 수행과 함께 몸과 마음의 모든 변화를 있는 그대로 지켜보며 통찰과 평온을 길러가는 수행 방식입니다.
독일 유학 전, 한국에서 위빳사나를 하면서 같은 방에 머무르게된 독일인 친구와의 우정이야기는 본편에 수록됩니다.
호수를 바라보면서도, 5일 동안 단 하루도 생각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여행 중에는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저를 돌아보며, 유럽에 온 이유에 대해 깊이 고민했습니다. 숙소 안에서는 비치된 작은 나무 책상에서 음악사의 흐름을 다시 살펴보고, 각 나라의 문화에 대해 세세하게 탐구했어요. 독일 집에서는 다들 너무 시끄러워 집중을 할 수 없었으니까요.
독일어와 비자 문제를 잠시 제쳐두고, 이곳에서 제가 머물러야 할 이유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중학교 시절의 의료사고,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인해 약해진 면역력, 각종 알러지성 질환들. 제 삶은 꼭 거꾸로 가는 시계처럼, 나이많은 노인이 계속해서 젊어지는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을 종종 느끼고는 했습니다.
그 와중에 독일행은 어쩌면 삶의 궤도를 완전히 바꾸는 전환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기대야 하는 상황이 싫었고, 미래를 함께 그렸다가 서로에게 상처를 남길까 두려웠습니다. 어디에도 ‘병’이라 명명되지 않는 애매한 몸 상태는, 체념을 습관으로, 성격으로 굳혀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휴대폰을 찾으러 밤 중에 호텔 밖을 나갔습니다. 호텔의 식당, 프론트 테이블부터 현관 입구, 들렀던 슈퍼마켓을 배홰했어요. 겁이 많아 밤에는 혼자 돌아다니지 않는 성격이라 마음이 점점 더 다급해졌습니다. 결국 길건너 호숫가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휴대폰을 찾지 못하면, 불안정한 체류 상황에 분실신고와 재계약 등 귀찮은 일들이 겹쳐버리고 말테니까요.
그렇게 자주 머물던 호숫가의 난간 근처에 이르렀습니다.
그 순간,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호수 표면에 가느다란 반원을 연속적으로 그리며 이어지는
커다란 핑크색의 보름달이
하늘 가운데 떠서
그 새카만 우주를 환하게 빛내고 있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커다랗고 밝은 달은 난생 처음 봤어요.
정말이지, 다른 곳에 굳이 LED조명이 필요 없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그런 광경은 디즈니 영화에서나 만들어진 연출인 줄 알았어요.
나중에 찾아보니 바로 그 날은 핑크문이 뜨는 날이였다고 합니다.
휴대폰은 다음날 아침에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숙소 안, 침대 가장자리에 끼어져 숨어있었어요.
그 달을 카메라 안에 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렇게 저는 스위스의 눈산을 더이상 카메라에 담지 않고
눈과 마음에만 담았습니다.
다시오면 되지, 어차피 사진작가들이 많이 찍는 곳이야... 하면서
저만의 시선을 포착하는 것과 아카이빙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잠시 내려놓고.
그렇게 단한번도 스위스를 다시 찾아갈 수 없었습니다.
유럽에서 어떻게 하면 싼 기차편과 숙소를 간편히 찾을 수 있는지
모든 방법을 알고있음에도
방법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체류의 문제는 매년 불거졌으니까요.
(체류에 문제가 생기면 이동이 불편해집니다.)
초반의 이야기는 모두 스토리의 진행에 맞게, 일어난 사건의 순서가 아닌 스토리 전개의 순서대로 진행됩니다. 축약본처럼 빠르게 진행되는 초반의 전개는 본편에 더 풍성하게 사진과 함께 제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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