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케잌, 홍차, 그리고 제인오스틴.

제인, 너는 운명이였어.

by 사온
지난 이야기: 이렇게 어렵게 들여다 놓은 피아노인데, 저는 끝내 독일 체류에 실패하고 맙니다. 그리고 영국으로 오게 되어요.


영국에 표류하는 동안 Waterstones라는 체인 서점을 즐겨 찾곤 했습니다. 이곳의 서점은 까페와 함께 운영되는 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머물렀던 독일의 까페들은 대체로 조용하고 진중한 반면 영국의 서점은 조금 더 따뜻하고 밝은 분위기였습니다. 독일의 서점은 오래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갖춰진 느낌은 아니였어요. 영국의 서점은 더 생기 있고 상업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책과 관련한 다양한 굿즈들이 진열되어 있고, 넓은 공간에 갖춰진 테이블에서 책을 훑으며 커피를 잠시 마시고 나가는 손님들의 모습은 한국과도 닮아 있었어요.


아침 시간에 들르면, 조용한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 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연령대가 높은 교양 있는 영국인들이 신문을 펼치고, 홍차와 비스킷을 곁들인 간단한 아침을 즐기곤 했다. 그런 풍경 속에서 차 한 잔과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은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아래 왼쪽 사진에는 납작하게 썰린 빵과 함께 버터와 잼을 보실 수 있고,

오른쪽 사진에는 빨간 포장지를 씌운 동그란 초콜릿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서점을 몇 차례 방문하다 보니,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메뉴판에는 없지만, 손님들이 익숙하게 무언가를 주문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요. 도대체 무엇을 시키는 걸까 궁금해져 직원에게 물어보니, “티케잌(teacake)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티케잌은 이미 매대에 이름과 가격표가 붙어 있는, 사진 속 오른쪽에 보이는 초콜릿 과자였어요.


직원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두 가지 다 티케잌이라고 불러요. 저도 가끔 헷갈릴 정도예요”


저 역시 처음 듣는 설명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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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빵은 띄어서 표기하는 tea cake, 오른쪽에 놓인 초콜릿은 붙여서 표기하는 teacake이라고 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이 단어가 두 가지 전혀 다른 음식을 가리킨다고 하는데요.


하나는 초콜릿 안에 부드러운 마시멜로와 비스킷이 들어 있는 동그란 과자로, Scottish teacake이라 불리며 대표적인 브랜드로는 Tunnock’s가 있습니다. 슈퍼마켓이나 까페에서 쉽게 볼 수 있고, 고풍스러운 포장 덕분에 영국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띄어 써서 tea cake이라 부르는 전통적인 빵입니다. 건포도나 말린 과일이 들어간 얇은 둥근 빵으로, 주로 토스터에 구운 뒤 버터나 잼을 발라 먹습니다. 아침 식사나 오후 티타임에 곁들이는 소박한 차림으로, 메뉴에 없어도 요청하면 흔히 제공되는 음식이라고 합니다.


띄어쓰기 하나 차이지만, 둘 다 영국인의 차 문화에 깊이 자리한 일상적인 간식이라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영국에서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차는 '잉글리시 브렉퍼스트(English Breakfast)'입니다. 진한 홍차에 우유를 섞어 마시는 방식으로, 호텔 조식에서부터 동네 까페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볼 수 있죠.


어느 가정집을 가도 늘 유리병에 구되어 있어요. 영국인들은 이 차를 손님을 맞이할 때나, 일과 중 잠시 쉴 때도 마십니다. 한국의 보리차 처럼 흔하게 마셔요. 그래서인지 어떤 장소는 특유의 꿉꿉한 차 향이 늘 배여 있곤 했습니다.


제가 특히 좋아하게 된 건 ‘요크셔 티(Yorkshire Tea)’였습니다. 영국에 머물던 시간이 끝나고 파리에 돌아왔을 때, 트와이닝이나 마리아쥬 프레르 같은 유명 브랜드의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마셔보았지만, 이상하리만큼 요크셔 티에서 느꼈던 그 단단하면서 깊은 맛이 그리웠습니다.


영국에서는 어디서나 흔하게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챙겨 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그 차.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이 브랜드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어요. 유통이 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수입이 제한된 걸까...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요크셔 티는 국경을 쉽게 넘지 못했습니다.


요크셔 티는 유난히 깊고 묵직한 맛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유를 넣었을 때도 향이 묻히지 않고, 끝맛이 깔끔하게 남는 차. 다른 브랜드보다 조금 더 탄닌감이 있고, 묽게 우려도 제 맛을 냅니다.


영국의 습하고 흐린 아침, 따뜻한 찻잔을 두 손에 감싸 쥐고 있으면,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비가 오는 날엔 늘 이 차가 그리워집니다.



요크셔 티(Taylors of Harrogate - Yorkshire Tea)

1886년, 찰스 에드워드 테일러(Charles Edward Taylor)가 하로게이트에서 차와 커피 상점을 창업하면서 시작되었으며, 1977년에 ‘요크셔 티’라는 이름의 홍차 브랜드가 공식 출시되었습니다. 하드 워터(hard water)가 있는 지역의 물맛에 맞춰 블렌딩된 것이 특징이며, 현재도 가족 소유로 운영되고 있는 전통 깊은 브랜드입니다


브랜드 철학은 “Let’s have a proper brew(정통 찻잔으로 제대로 우려드세요)”*라는 슬로건 아래, 공정한 거래와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며, 플랜트 기반 퇴비화 가능한 티백을 사용하는 등 지속 가능성을 고려합니다. 이 차는 1977년 출시 이후 꾸준한 성장 끝에 2019년 영국 전통 홍차 시장에서 판매 1위를 차지했으며, 영국 내 최고의 브랜드 중 하나로 자리 잡았어요. 각종 광고 캠페인과 대중 매체 속 영상·인물 출연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으며, 2009년 왕실의 인증(Royal Warrant)도 받은 바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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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읽었던 제인오스틴


위 사진은 지난 화에서 공개하지 않았던 스위스의 풍경입니다. 이 곳에 머물던 그 때만 해도, 제가 훗날 영국에서 제인오스틴의 작품을 공부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더욱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시기였는지라, 사랑에 빠질 줄도 몰랐죠.


사실 영국으로 올 것이라는 결정조차 내리지 못했던 시기였어요. 그저, 독일 서점에서 우연히 끌려서 산 책이였을 뿐이였죠.


세렌디피티.


뜻밖의 우연이지만, 마치 그 것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 같은 상황.

제인오스틴은 이미 저를 초대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요-?



해당 시리즈는 본편이 아닌 라이트 에디션으로 스토리의 진행에 맞게, 일어난 사건의 순서가 아닌 스토리 전개의 순서대로 진행됩니다. 축약본처럼 빠르게 진행되는 초반의 전개는 본편에 더 풍성하게 사진과 함께 제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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