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6/2025 16:19
Paris
그래픽 노블이란 장르가 있구나… 어쩐지 이 장르 나와 잘 맞는 느낌이다. 지금 당장 예술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조금씩 그려봐야겠어. 그동안 소설을 써야 할지, 각본을 써야 할지, 아니면 웹툰을 그려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나에게 맞는 플랫폼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기존의 웹툰 플랫폼은 그림에 공을 최대한 많이 들여서 화려한 그림체로 상업적인 스토리를 밀고나가야하고, 각본이라 한다면 같이 작업하고 일할 사람들이 무조건 필요하기 때문에 무리이며, 소설을 쓰기에는 그림을 같이 그리고 있는 나에게 한계가 느껴졌다. 글 안에서 다채로운 것들을 모두 담아내려면 그 것 역시 합평이라던가 글쓰기 모임을 통해 다른 것들을 구축해야하고, 그런 것 없이 소설로 투고하는 것 역시 부담이 컸다.
인물간의 대화가 좀 더 내가 원했던 만큼의 느낌으로 표현되었으면 하는 장면은 글 안에서 연출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그 것이 예술적이여야만 할 이유는 없으나, 예술적인 것은 적나라한 경우가 적다. 대부분 정제된 감정의 서사이고 그렇지 않다면 어쩔수없이 투박하게 연출해야하는데 양쪽 다 나의 방식은 아니다. 예를들면, 이야기 안에 오열을 하고 절망해야하는 장면이 필요한데 내가 여태까지 읽었던 소설에서는 그런 장면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려면 각본을 써야하는데, 배우가 연기해주길 바라는 것은 그 것 역시 부담이다.
동화책 작업도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많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그 길을 고민하지만, 나는 동화책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글과 그림이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일이라 믿는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런 유기적 완성도보다 출판사의 "니즈"만을 중심에 두는 경우가 많아, 때때로 답답함을 느낀다. 출판사에서 작가에게 글 그림 둘 다 “요구”한다는 “니즈”를 충족시키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 ㅋㅋㅋ ㅠㅠ ㅋㅋㅋ 니즈… ㅋㅋㅋ
잘 그려야한다. 정말 잘 그린 그림이란, 단순히 예쁜 한 장면이 아니라, 몇 장을 넘기며 하나의 시적인 이야기로 완성되는 것. 그리고 그런 그림은 상업성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출판사가 원해서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그림책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본질적으로 그러한 것이다.
몇 해 전, 베아트릭스 포터의 생가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녀가 피터 래빗을 쓰기 위해 문장을 수차례 줄이고 다듬으며, 동시에 그림도 함께 완성해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유아용 동요나 구전 동시(nursery rhymes)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차용했다. 글에 맞춰 그려진 일러스트가 장면마다 탁탁 맞아떨어지면서도, 전체적으로 유기적 흐름을 잃지 않는 그림책. 그리고 그걸 해내려면 내 작업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글에 맞춰 그려진 그림이 장면장면 딱 딱 떨어지는 일러스트와, 유기적인 흐름이 모두 짜임새있게 연결되어 완성도 높은 “그림책”을 쓰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왔고, 그러려면 내 일에 자신감이 있어야하기에. 웹으로 툰도 그려보고, 일러스트만 그려보기도 하고, 그래픽 노블이라는 그림소설을 써보기도 하는 과정을 거쳐보려고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길진 않았음 좋겠다. 수입도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피아노도 칠 수 있었음 좋겠다…
사실 그러던 중 나와 감성 비슷한 웹툰들을 발견하기도 했는데, 잇선 작가의 "우바우(우리가 바라는 우리)", 스노우캣, 권혁주 작가의 "움비처럼", 고아라 작가의 "어서와" 등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모두 예술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들을 보면서, 용기를 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