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한다는 것은 부재일 때 증명되는 것일까
일본에 오기 전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너 일본에 아는 사람 있어?”였다.
최소 1년 이상 외딴곳에서 산다는 것에 지인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을까.
사실 나는 코로나 이후 10번 이상 일본에 여행을 갔을 정도로 단지 일본이 좋아서 여행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일본 자체의 문화, 과거 일본과 한국과의 암울한 역사 등 많은 것을 제쳐두고 그냥 일본 음악이 좋았을 뿐이었다.
그냥 그곳에 좋아하는 것이 있어서 혼자서 여행을 자주 갔었고, 방황하던 30대의 삶의 도파민이자 탈출구이자 도피처였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잠시 잊게 해 주고, 수많은 자기 계발서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라.’라는 획일적인 프레이즈에 어쩌면 걸맞은 도피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좋아하는 확실한 취미가 있었음에도 수 없이 많은 공연을 보러 다니고 좋아하는 무언가를 쫓았음에도 일본에 온 내내 내 마음에는 늘 구멍이 있었다.
한국에서의 나는 혼자를 즐겼고, 취미가 많았고, 외롭지 않았다.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정말 아무도 없는 외딴 나라에서의 나는 고작 편도 2시간 내외로 충분히 오갈 수 있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외로웠다. 공허했다. 그동안 내가 혼자임에 안심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랫동안 나와의 친밀감을 쌓아온 친구들, 가족들 덕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한국에서 혼자가 편하다고 느꼈던 것들, 오랫동안 자취를 했었기 때문에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느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내 옆에서 늘 당연하게 존재해 주었던 사람들, 내 내면의 버팀목이었던 존재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늘 곁에 있었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보이지 않았던 그 소중한 것들 때문에 혼자임에 충분하다고 착각했던 것임을 말이다.
결국 소중한 존재가 부재가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늘 곁에 있었기에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임을 말이다.
외로움은 누군가가 채워줄 수 없는 것임을 안다.
누가 단지 옆에 있다고 해서 온전히 채워질 수 없는 것임을 안다.
하지만 처음은 누구나 새롭고 외롭다.
오기 전에 예상했던 것들(지진, 엔화의 상승, 아무런 친구가 없는 것, 모든 것을 혼자 겪어 내가 하는 것, 문화적 차이 등) 뿐만 아니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몸소 겪는다.
머릿속으로 예상했던 것을 실제로 겪고 해결해 나가는 것을 넘어서서 뭐든 내가 혼자 해 나감으로써 나는 나의 부족함을 알게 되고 그저 혼자가 전부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부재가 존재를 확인시켜 줌으로써 그동안 나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걸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사랑해 마지않는 너희가 있었기에, 앞으로의 내 인생을 응원해 줄 너희가 있기 때문에 지금의 외로움 또한 이겨낼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