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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 하루

봄을 기다리며

1도가 이렇게 춥다.

by 불친절한 은자씨

똑같은 아침풍경이다.

세 아이는 각자의 루틴대로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시작한다. 큰 애는 샤워실로, 둘째는 제 방에서 책가방을 챙기고, 막내는 옷부터 갈아입고 책가방을 들고 거실로 나온다. 그 동안 나는 도시락을 미리 준비해두고 애들 먹일 아침을 후딱 차려낸다. 그러고선 주방 선반 옆 창문 너머 밖을 무의식적으로 바라본다.

" 이제는 이 시간에 조금씩 환해지네. 겨울도 이렇게 지나가는군."

매번 이 시기에는 내 입 속에 되감기 버튼이라도 있는건지 이 말이 반복된다. 남편이 듣건, 아이들이 듣건, 혹 듣는 이가 아무도 없건...

두 아이가 입시를 치루고 있어서일까. 올해는 정말 시간이 물흐르듯 흘러가는 듯하다. 12월이네 싶었는데 어느새 1월이었고 이제는 구정도 지난 2월이라니. 소름끼친다.


한 명씩 거실로 나와 아이들은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는다. 8시 10분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학교에 여유있게 도착할 수 있다. 항상 날씨를 확인하는데 오늘은 서둘러 나오느라 미쳐 확인을 못했다. 5분 늦게 출발했더니 도로에 이미 차가 가득이다.

"오늘따라 차가 왜 이렇게 많지? 월요일도 아닌데..."

겨우 아슬아슬하게 교문이 닫히기 전에 애들을 내려줬다.

아차차. 그냥 집에 가면 안되는구나.

오늘 학교에 교복업체가 온다고 둘째가 스웨터를 사야한다고 했는데..

학교 운동장 구석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게 보인다. 차에서 내리는데, 아이고.

얼굴에 찬 기운이 바로 느껴진다.

그래서 도로에 차가 많았구나. 이렇게 쨍하고 추운, 입에서 허연 김이 연신 나오는 추위는 밀라노에서 흔치않다. 핸드폰에서 날씨를 확인해보니 1도라고 뜬다.

1도의 추위가 이런 상태로군.

정말 추웠다. 이제 2월이라 겨울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12월, 1월보다 훨씬 춥다니 이게 무슨 일인건가.

종종거리며 오늘은 무조건 집콕이라고 중얼거리며 얼른 차에 올라탄다.



I giorni della Merla

직역을 하자면 <검은지빠귀의 날>정도가 되겠다. 영어식 표현으로는 Blackbird day라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1월 마지막 세 날- 29,30,31이 평소보다 추우면 그 해의 봄이 일찍 오고, 이 세 날이 따뜻하면 그 해의 봄이 늦게 온다는 속설이 있다. Merla가 검은색의 지빠귀 종류의 새인가 보다.

가만있어보자. 1월 마지막 날 날씨가 어땠더라.

지나간 날 날씨가 이제와서 뭐 중요하겠는가. 봄이 늦게 오면 어쩔 수없이 패딩을 더 오래 입고 지내야지 별 수 있나.

쨍하게 추웠던 아침 찬 기운에 한국의 겨울이 떠올랐다.

결국 오늘도 이렇게 한국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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