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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티노- 알토,알디제 2

이탈리아 트렌티노, 알토-아디제

by 불친절한 은자씨

숙소로 돌아온 뒤 아이들은 출출하다며 라면 먹겠다고 아우성이다. 열이 계속 오르는지 남편은 안색이 별로 좋지가 않다. 온도를 재보니 38도이다. 부랴부랴 애들에게 라면을 끓여주고 약국을 검색해본다. 다행히 숙소 바로 5분 거리에 있다고 하니 문닫기 전에 부리나케 다녀와야겠다. 증상을 설명하니 약사는 금세 알아차리고는 종합감기약을 준다. 의사 처방전없이 살 수 있는 이런 약들은 한국에 비해 꽤 비싸다. 종합감기약 하나에 10유로면 결코 싸다고 할 수는 없다.

빈 속에 약을 먹일 수는 없으니 가지고 온 햇반에 얼렁뚱땅 참치찌게를 끓여 남편에게 내어준다. 아무리 10년 넘게 해외생활을 했어도 김치가 들어가니 남편 얼굴이 펴지는 게 눈에 보인다. 이러다 아이들에게까지 감기가 옮을까 걱정되어 이 날 우리들은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잠들었다.


둘째 날 아침이다. 남편 얼굴을 살펴보니 새로 사 먹인 감기약이 효과가 있었는지 어제보다 안색이 좋다. 창 밖을 보니 날씨 또한 맑고 쾌청하다. 오늘은 조금 더 멀리 가서 테이블카를 타고 산을 올라가보기로 한다. 호텔 리셉션에서 첫 날 준 지도를 펼쳐들고 주변 산을 탐색해본다. 리셉션에서도 추천해 준 Madonna di Campiglio로 정했다. 차창 너머로 다양한 경사로의 스키슬로프가 보인다. 이곳이 스키어들이 얼마나 환호해 마지않는 곳인지 알 수 있다. 스키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내가 봐도 높은 고산 사이에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어 스키타기에 참 좋은 지형같다. 운전하는 남편은 연신 와 좋다. 여기서 스키를 타야하는데...이러면서 계속 감탄하며 흘끗흘끗 풍광을 곁눈질한다.

Madonna di Campiglio는 고도 1,500에 위치한 케이블웨이를 탈 수 있는 지점이다. 도착해보니 앞 뒤로 케이블웨이가 반대방향으로 두 라인이 움직이는데 5Larghi 방향의 Canobia는 운영하지 않아 우리는 Passo Groste 방향의 케이블웨이를 탔다. 종착지는 2,400m 지점이고 한라산으로 비유하자면 중산간 지역 Intermedio 지점이 2,000m 높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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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0m Groste에 내리면 보이는 풍광

종착지에 내려보니 온통 자갈과 돌이 눈에 들어온다. 지구라기 보다는 우주 어딘가의 행성에 도착한 기분이다. 항상 높게 떠 있던 구름이 내 눈높이에 있으니 이곳은 현실같지 않다. 무엇인가 거칠고 날 것의 느낌이어서 태초의 지구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둘레를 보니 곳곳에 채 녹지않은 얼음덩어리들이 있다. 아이들은 그 얼음덩어리 위에서 미끄럼틀을 타며 신나게 논다. 막둥이 역시 슬쩍 손을 대보더니 진짜 얼음이라며 한여름에 겨울느낌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가슴이 뻥 뚫린다. 내 시야를 가리는 것이라고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건너편 산 봉우리뿐이다. 손을 뻗으면 구름이 잡힐 것 같다. 대기권의 끝에 닿아있는 기분이다. 이렇게 조금만 더 올라가면 우주로 건너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상상을 해 본다. 새삼 나는 어떤 우연으로 이 지구에 살게 되어 이렇게 멋진 자연을 풍광을 짧게나마 마주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 걸까 싶다. 항상 이 돌로미티와 알프스를 보고 싶어했던 아빠가 생각났다. 점점 생각나는 횟수가 줄고 있지만, 아마 언젠가는 하루에 한번도 생각나지 않을 날이 오겠지만, 이런 산을 오면 아빠가 생각날 것같다.


아이들 몰래 차오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여기저기 카메라에 담아본다. 그리고 2,000m 지점의 intermedio -중산간 지역으로 다시 내려간다. 이곳은 초록의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다. 마치 몇 년 전 다녀 온 알페 디 시우시 같다. 흔한 스위스의 풍광같기도 하다.

케이블웨이 바로 옆에 bar 와 아이들이 놀 수 트램펄린과 놀이터가 있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쉬기에 딱 좋다. 구름에 가려졌던 해가 나오자 쌀쌀했던 공기가 금세 따뜻해진다. 오돌오돌 떨었던 탓에 따뜻한 햇살은 더없이 반가웠다. 아이들과 핫초쿄와 감자튀김을 먹으며 초록의 풍광을 찬찬히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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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같은 풍광이다.

한참을 쉬고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돌아왔다. 마음같아서는 돌아오는 길은 하이킹을 하고 싶었으나 전날의 여파가 남아있어 두번 생각안하고 케이블카를 탔다.

이렇게 3박4일의 짧은 여행을 끝내고 다음날 밀라노로 돌아왔다. 어차피 비예보가 있어 오후에 주변을 더 둘러보기가 힘들었다. 예상보다 빨리 집에 도착한 탓에 이번 여행의 아쉬움이 컸다. 남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오랜만의 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만끽하기가 힘들었다. 얼른 남편 감기 떨어지고 이번에는 가까운 바다로 떠나야지.


-이탈리아 트렌티노 , 알토-아디제 여행기 끝

2023년 7월 여름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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