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하고 브런치에 글을 올렸던 게 일주일에 한 두번으로 줄더니 이제는 보름에 겨우 한 편 쓸까말까한 지경까지 이르렀다. 낯부끄럽기 짝이없다.
글을 쓴다는 것.
들쑥날쑥이 아닌 일주일에 한번이든 몇 번이든 규칙적으로 꾸준하게 글을 쓰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머릿속에 봄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부유하는 생각들을 판판한 활자로 옮겨내는게 여간 고역스러운 일이라는 걸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뼈져리게 실감하게 되었다. 애당초 유명 작가가 되겠다거나, 책을 출간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서 시작한 브런치가 아니긴 하지만 이곳에 글을 올리는 시기가 점점 길어질수록 내 마음도 돌덩이가 하나씩 늘어가는 듯했다.
또 다른 돌 하나가 얹어지기 전에 내 반드시 오늘은 짧은 글이라도 끄적여보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요즘 내 브런치의 글이 뜸했던 데에 대한 변명을 적어보고자 한다.
우선, 9월 말부터 시작한 이탈리아어 수업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c1 코스를 시작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수업을 따라가느라 버거운 상태이다. 교재 한 페이지에 적힌 단어의 절반이상을 알 수 없는데다 수업 또한 빨리 진행되어 하루의 대부분을 이태리어 공부에 할애할 수밖에 없다.
두번째는 지난 열흘 간의 한국행이다. 앞 글에서 언급했듯이 아빠의 기제사를 치루기 위해 부랴부랴 나 홀로 제주에 다녀왔다. 제주에 있는 동안 제사를 지내고, 엄마의 가게 일과 살림을 도우느라 도통 글을 끄적일 짬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이런 이유는 그야말로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정확하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하루 건너뛴 글쓰기는 이틀 건너뛰게 되고, 금세 일주일을 건너뛰고, 급기야 보름을 건너뛰게 되는 데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직장인들이 눈뜨고 주 5일 회사 출근 하듯이, 학생들이 교복입고 주 5일 학교다니듯이 그렇게 글쓰기가 나의 일상이 되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간만에 다시 글을 쓰려니 글이 잘 안 써지는 것도 문제다. 내가 아이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게 꾸준히 하는 사람 못 이긴다는 건데 내가 내 얼굴에 침뱉는 짓을 하고 있다. 곧잘 써지던 몇 단락의 문장도 이제는 썼단 지웠다를 수십 번 반복하고 있다. 주부가 하루 세 끼 식사를 차려내기 위해 하는 수많은 칼질처럼, 그렇게 꾸준히 글을 써야하는데 쉽지가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눈 뜨자마자 책상앞에 앉아 정해진 시간 동안 글이 잘 쓰여지든 아니든 그 시간동안 글쓰기에 매달린다고 한다. 그렇게 매일같이 꾸준히 썼던 글들이 소설로 묶어지고 또는 에세이로 출간된 것이리라. 그의 꾸준함이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던 계기를 생각해본다. 왜 신청했던걸까. 그 당시 어지럽고 힘들던 내 마음을 토로하고 싶기도 했지만, 내 글을 통해 내 아이들이 나중에라도 엄마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나의 아빠가 돌아가신 뒤, 나는 아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빠 사진 외에 아빠가 살았을 때 어떤 분이셨는지 계속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일기나, 글, 이런 것들이 전혀 없었다. 아빠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 점점 희미해질텐데 그런 글이 있다면 아빠의 나이에 내가 이르렀을 때 아빠를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아쉬움이 생겼다. 그러니 나라도 이런 글을 남긴다면, 적어도 아이들에게 엄마에 대한 궁금증과 그리움을 해소할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자, 그러니 부지런히 꾸준하게 글을 써보자. 엄청나게 멋진 명문을 남기기 위함도 아니니 그럴싸해보이는 글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저 짧게나마 남기지 않으면 기억도 나지 않는 그런 사소한 것들을 솔직하게 적어내어, 후에 이 글들을 읽었을 때 다시 떠올릴 수 있는 정도만 되면 충분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