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시험중
큰 애의 IGCSE Mock시험기간이다. 영국계 학교를 다니고 있어 11학년 말에는 IGCSE 시험을 치뤄야하는데 Mock는 그 시험을 대비한 모의고사 정도라고 하면 되겠다. 보통 하루에 다 치루는 한국의 시험과 달리, 이 곳에서의 시험은 짧게는 일주일 , 이런 Mock는 2주, IGCSE는 본인이 선택한 과목에 따라 2주가 훌쩍 넘는 경우도 있다. 선택한 과목에 따라 다르지만 과목당 보통 두 세번의 시험을 봐야 하므로 큰 애의 경우 30회의 시험을 2주 동안 치뤄야 한다.
지난 주 화요일부터 시작했는데 어느새 8부 능선을 넘어섰다. 어제와, 오늘은 시험이 없어 동생들만 등교하고 큰 애는 집에 있다.
한 녀석이 학교를 안가니 도시락 싸는 것도 수월하고 뭔가 여유로운 아침이다. 두 녀석을 등교시키고 오니 남편고 출근하려 하고 있다.
“ 좋겠네~ 큰 아들하고 둘이 있어서…”
남편은 내 마음을 잘 들여다 본다.
배시시.
“그러게. 별 것도 아닌데 기분이 좋네”
뭐 어차피 제 방에서 나오지 않고 내내 시험공부하겠지만, 괜히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다.
아들이 아침에 밥먹고 제 방 들어가면서 한 마디 한다.
“ 엄마 점심은 같이 먹어요”
본인만 점심 차려주고 나는 안먹을까봐 하는 소리다. 동생들 없으니 큰 애 먹고 싶은 걸로 해 주고 싶어 슈퍼에서 소고기 안심 한 덩이 사와 마리네이드 해 놓는다. 파스타고 좋아하니 생면으로 볼로녜제 파스타도 만들고, 모짜렐라-토마토 샐러드도 준비한다.
정성껏 소고기도 구워 한 상 차려 놓고 아들을 부른다.
“밥 먹자~~”
“으음 엄마 맛있어요..”
아들이 먹으면서 맛있다고 하니 더 즐겁다.
아들 덕분에 혼자였으면 대충 때우는 점심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먹으니 좋다.
포크질 몇 번 하더니 아들이 술술술 요즘 보는 시험 얘기를 한다.
“엄마, 시험이 생각보다 너무 어려워서 힘들어요. 휴… 영어도 너무 어려웠고, 히스토리는 5분 남겨두고 페이퍼 다 썼는데 심장이 터져버리는줄 알았어요. 등에서 땀나고 손가락이 덜덜덜 떨려서 글씨도 엉망이 되고요.. “
안경너머 보이는 아이의 눈에 수심이 가득하다. 입은 연신 음식 씹느라 우물거리는데 표정은 슬프고 ..그 모습이 정말 우스꽝스러워 그러면 안되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실실 새어나온다.
“뭐 어때. 얼마나 다행이야. 진짜 시험이 아니고 모의고사니까. 이제 부족한 부분을 잘 준비하면 되지. 끝난 건 잊어버려.”
“엄마 시험이 무서워요. 하…”
나와 단둘이 있을때면 큰 아이는 이렇게 슬며시ㅜ본인 속내를 꺼내곤 한다. 그럴때면, 나에게 털어놓는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짠하기도 하다. 모든 고등학생들이 다 겪는, 어쩌면 학생이 겪는 당연한 과정이고, 나 역시 겪었던 일인데 내 자식이 시험이 무섭다고 하니 마음에 돌덩이가 내려앉는 기분이다.
큰 아이는 공부에 그닥 흥미가 없었다. year3에 한국에서 건너와 영어 수준도 같은 year그룹보다 한참 떨어져 year5까지 EAL이라고 영어추가수업을 들었다. 수학 하나 조금 잘 하는 정도였지만, 다른 한국 아이들에 비하면 자랑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게 secondary 학년이 되어서도 그냥자냥 학교 숙제정도만 했다. 그러던 애가 무슨 계기가 있었는지 10학년이 되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성적도 꾸준하게 오르니 자연스럽게 더 열심히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기특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그렇지만 오늘 시험이 무섭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니 답답해진다.
아이는 이 시험 하나하나가 큰 일이겠지만, 나는 안다. 이런 시험 망친다고 인생이 잘못 흘러가는 건 아니라는걸.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되새겨 본다. 아이의 실패와 좌절에 안절부절하지 말자고.
나도 담대한 마음으로 지켜보기만 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