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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아빠 Apr 26. 2024

#3. 착각은 자유

더 이상 나한테 오지 말아 줄래!

나는 이성친구가 생길 거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같은 동성 친구도 만들기 힘든 나에게 이성친구라는 것은 어쩌면 내 모든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들 중에 하나였다. 나에게 이성친구가 말을 걸어준다는 것은 곧 나에게는 '나 너 좋아해!'라고 하는 것이었고, 나랑 눈이 마주치는 것은 '나랑 사귈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노력조차 하지 않았고 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국민학교 6학년 1학기의 시작을 난 전주에서 시작했다. 길거리, 음식점, 사람, 우리 집, 학교... 심지어 횡단보도까지 모두 다 새로운 것들로 가득했다. 첫 등교날 집에서 학교까지 부모님이 데려다주셨는데 나는 혹시 집에 갈 때 우리 집을 못 찾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학교 가는 길 곳곳에 있는 건물들을 모양을 힘들게 외우려고 했다. 교무실에 도착한 부모님은 선생님과 만난 뒤 내가 한마디만 하고 돌아가셨다.


"친구들하고 싸우지 말고 잘 지내야 해! 알겠지?"


역시 우리 부모님은 내가 친구들과 잘 지낸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난 선생님과 교실에 들어갔고 선생님은 나를 친구들에게 소개해줬다. 


"조용! 여기 서울에서 전학 온 친구가 있는데... 앞으로 우리 반에서 지낼 거니까 다들 싸우지 말고 잘 지내야 해.. 다들 알았지?"


나는 고개를 숙여 친구들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했고 선생님도 그런 내가 소심한 아이라는 것을 그때 알아버리셨던 것 같다. 당시 우리 반에는 40명 정도 있었는데 모두 나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마치 동물원에 새로 온 원숭처럼 말이다. 선생님은 나를 맨 뒤자리로 가라고 하셨고 나는 우리 반 한가운데 맨 뒷자리에 앉았다. 


몇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친구들은 하나같이 나를 모른척했다.


'분명 어색해서 일거야? 내가 예전에 왕따였고 소심한 아이라는 것을 얘네들은 모르잖아. 분명 여기서는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거야'


나는 몇 시간 동안 생각했다. 어느덧 수업 시간이 끝나고 청소시간이 왔다. 다들 각자 맡은 역할이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누구는 대걸레를 잡고 누구는 빗자루를 잡고, 누구는 책상과 의자를 옮겼다. 하지만 나에게 누구도 어떤 역할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때 한 여자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야~이리 와봐! 선생님이 너도 청소하는 거 알려주래!"


나는 마치 밧줄에 묶인 듯이 여자아이를 따라갔다. 2학년 교실. 당시 우리 학교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는 6학년이 2학년 교실을 대신 청소했다. 2학년 교실에 도착했을 때 나는 조금 놀랬다. 우리 반 여자아이들이 10명 정도 모여있었다. 뭔지 모르지만 무서웠다. 여자아이들은 교실에서 각자 걸레를 하나씩 들고 2학년 아이들의 책상을 닦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말을 걸었던 아이는 나에게 말했다.


"원래 남자애들은 우리 반 청소하는데 2학년 교실은 여자들이 청소해! 근데 남자애들 자리가 없어서 선생님이 너는 우리랑 같이 2학년 교실 청소하래! 앞으로 청소시간에는 이쪽으로 내려오면 돼!"


말은 빨랐지만 또렷하게 들렸다. 충분히 이해가 됐다. 나는 어디를 청소할지 다시 물어봤다. 


"응... 그럼 나는 뭐 하면 돼?"


내가 물어보자마자 그 여자아이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말했다.


"야~ 그냥 여기 다 청소하면 돼 알았지? 히히히... 우리는 잠깐 나갔다 올게~"


무언가 나만 모르는 게 있는 입꼬리를 올리면서 나에게 말했다.  나머지 여자아이들은 주눅 들어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자기들끼리 웃으면서 교실 밖으로 나갔다.


또 나 혼자가 됐다. '그래 어차피 첫날이라 어색한데 나 혼자 청소하는 게 더 좋지 뭐~'라는 생각으로 나는 혼자서 땀을 흘리며 열심히 책상을 옮기고 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손걸레로 유리창을 닦았다. 처음에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지만 몇 개월을 혼자 하다 보니 요령도 생겨서 나름 괜찮았다. 그 여자아이들을 미워하지는 않았다. 우리들은 몇 개월간 단순히 어색했을 뿐이다.


그렇게 많은 여자아이들이 나만 바라보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내가 좋든 싫든 밉던 상관없었다. 난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고, 그들의 기대를 만족시켰다.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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