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내 동료가 되어줄 수는 진짜 없을까?
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내가 나 자신을 좋아하는 것보다 이름 모르는 누군가가 나를 더 좋아하고 아껴줬으면 좋겠다. 그럴수록 나는 나에게 냉정했고 모질게 대했으며 다른 사람에게는 한없이 친절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친절해 보이고 싶었다. 그 생각들은 아마도 누군가로부터 어떤 무언가를 받고 싶어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준 아주 약간의 마음보다 훨씬 더 크게 나를 위로해 주고 나에게 고마워해주는 그런 보상 말이다.
내가 왕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는 전주로 전학 오자마자 소중하고 또 소중했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일부러 친구들이 집에 있을 것 같은 시간에 몇 명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 전화를 건 친구는 그나마 나와 가장 친했다고 생각했던 나처럼 소심한 친구였다. 그 친구는 항상 쉬는 시간만 되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별거 아닌 농담부터 준비물 얘기, 좋아하는 여자친구 이야기 등 시간만 되면 나에게 아무 말이나 걸던 친구다.
처음에는 그 친구가 어색했지만 난 그 친구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정해진 시간에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를 해주는 친구... 난 그런 그 친구가 좋았다. 이사를 가는 차 안에서도 누군한테 제일 먼저 전화하지라고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그 친구였다. 분명 반갑게 또 아무 얘기나 나한테 들려줄 것만 같았다.
통화음이 들렸고 낯선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분명 그 친구의 아빠였다. 낮은 중저음에 약간 술에 취한듯한 아저씨는 귀찮은 듯한 말투였다.
"네! 안녕하세요. 아저씨 저 무영이 친구인데요! 혹시 무영이 집에 있나요?"
내가 떨리는 마음으로 묻자 아저씨는 아들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서인지 꽤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어~ 무영이 친구구나? 잠깐만 기다려봐. 무영아~ 친구 전화 왔다~!"
갑자기 다정해진 아저씨는 무영이를 부를 때는 다시 투박한 말투로 바뀌었다. 그러자 무영이의 목소리가 전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누군데? 아이씨~ 지금 나한테 전화할 친구 없는데..."
그 말을 듣고 나는 아저씨가 나에게 전달해 주기 전에 말했다.
"아.. 아저씨! 저 저번주에 전학 간 친구라고 해주시겠어요?"
그 말을 들은 아저씨는 말했다.
"네가 그 전학 간 친구구나... 잠깐만 내가 가서 직접 말할게... 잠시만... 기다릴래?"
바로 아저씨는 전화기를 놓고 무영이에게 가는 듯했다. 그리고 아저씨는 무영이에게 내게 전화가 왔다는 사실을 알렸고 전화기 아주 멀리서 들리는 선명한 무영이의 대답에 나는 그냥 전화를 끊었다.
"아이씨 전학 간 놈이 왜 전화를 해... 짜증 나게... 이... 씨... 귀찮게 하네... 진짜... 아빠 그냥 나 없다고 해... 걔 별로 친한 얘 아니야..."
언제나 그렇듯이 나에게 친구는 만나기 아주 어려운 외계인 같은 존재였다. 있다는 것을 믿고 있지만 만날 수는 없는 게 친구다. 그러면서 나는 항상 '그래... 내가 소심해서 친구가 생기지 않는 거야!'라며 애써 상황을 외면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 마치 전쟁에서 온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생기고 피가 나고 있는데도 나는 열심히 싸웠다며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승리의 깃발을 휘두르는 사람 같이 말이다. 아무도 나의 정신 승리에 대한 축하도 위로도 격려도 해주지 않는다. 난 그렇게 매번 승리했다.
나에게 친구라는 것은 만화책에서 나오는 멋진 악당을 함께 해치우는 그런 동료였다. 당연히 내가 주인공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인공의 친구들은 항상 악당에게 당하지만 난 혼자 살아남는다. 그러다 아주 가끔 초인적인 힘으로 죽어가는 친구를 살려낸다. 그리고 그 친구와의 뜨거운 눈물로 포옹한다. 나에게 친구는 그런 것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내 옆에 있어주는 사람. 내가 구해주고 싶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