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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정 Jan 17. 2023

외딴섬에 갇힌 모든 A와 B에게

시간은 결코 약이 되지 않아요

박사과정 5년 차 A는 첫 만남부터 불안해 보였다. 마치 목에 셀로판테이프를 붙인 종이 인형 같았다. 언제 떨어질지 모를, 어쩌면 진작 떨어졌으나 테이프 한 장으로 가까스로 몸통과 머리를 감당하고 있는 듯한 A를 나는 슬그머니 피했다. 좋기만 하고 싶은 날이었다.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근사한 저녁을 들고자 삼삼오오 모인 어느 교수님의 집이었다.      


A의 소식을 다시 접하게 된 건 SNS를 통해서였다. 몸이 안 좋아 요양차 잠시 한국에 갔다던 A가 직접 올린 게시글 속에서 A는 이 세상을 구원할 부활한 예수가 되어 있었다. 장황하고 전혀 앞뒤가 맞지 않은 A의 글은 한눈에 봐도 정상인의 것이 아니었다. 어쩌다 그 게시물을 찾아서 내게 보여준 남편은 과묵하고 예의 바른 A가 왜 이런 허무맹랑한 글을 올렸는지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이 사실을 어서 학교 측에 알리라고 말했다. 신고해서라도 A의 게시물이 내려갈 수 있게 힘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1년여만에 다시 만난 사와로(Saguaro) 선인장. 항상 그 자리에 서 있는 선인장을 보고 있자니 달라지는 건 오직 내 마음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박인정)


고립은 사람을 병들게 하는 속병 중 하나다.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산재하고, 군중 속에서도 홀로 떨어진 외딴섬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기 마련이다. 오직 남편의 성과를 위해 달려온 아내로서의 지난 내 삶도 어쩌면 그런 섬이었다. 모든 스포트라이트에서 물러나 남편이 가장 빛나게 받쳐주는 무대 스텝과도 같은 역할. 남편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지난 6년간 나는 무채색이었다. 마치 미술관에서 예술품을 관리하고 소개하는 큐레이터가 작품보다 돋보이지 않도록 착용하는 유니폼처럼 말이다.    

  

실제 미술관에서 재직한 경력도 있고, 나는 그게 꽤 내 적성에 맞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포터가 직업이 아닌 삶이 되니 말이 달라졌다. 두 끼 도시락을 챙겨 학교로 향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혼자 남게 될 낮과 밤을 계산하다 보면 쓸쓸함이 밀물처럼 밀려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침대로 돌아가 모래와 자갈이 섞여 울퉁불퉁한 회반죽 천장을 바라보곤 했다. 누구도 종용하지 않은 이 삶과 내 선택을 수백 번이고 그 백색의 벽에다 다시 쓰고 고쳐보았다. 아무리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글을 써 보아도 나는 점점 매몰되었다.    

  

믿고 의지했던 B가 상심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겹치자 내 고립된 섬은 더욱 깊은 곳으로 침잠했다. ‘만약에 나도 한국에 살았더라면. 그래서 좀 더 자주 B를 만날 수 있었더라면. 적어도 그런 말을 그때 B에게 하지 않았더라면.’ 뒤늦은 미련은 이내 헤아릴 수 없는 후회와 슬픔의 파도가 되어 나를 덮쳤다.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작고 푸른 알약들을 만난 게 그때다. 서트레인(Sertraline) 이라는 이름의 항우울제였다. 주황색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담긴 50mg짜리 알약들은 무척 자그맣고 단단해 흔들면 셰이커처럼 찰랑이는 소리가 냈다. 2분여간의 신속 상담을 마치고 정체 모를 약을 5정이나 처방해 준 한국 의사과는 달리 미국에서 만난 의사는 내게 좀 더 시간을 들였다. 내가 작성한 설문지를 꼼꼼히 읽고 내 이야기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었다. 우울증약으로 처방되는 약의 종류와 각각의 장단점을 알려주며 의사는 내게 직접 항우울제를 고르라고 말했다. 그렇게 복용하게 된 약이 서트레인이었다. 내가 선택한 질환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약만큼은 내가 고를 수 있었다.  

   

나는 잠들기 전 그 작고 푸른 약을 삼켰다. 의사는 매일 1정씩 2주 이상은 꾸준히 복용해야 효과가 나타난다고 했다. 한국에서 처방받은 5알처럼 당장 잠이 오는 것도 아니고, 몸이 노곤하게 풀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그 작디작은 알약을 반으로 쪼개 복용하라는 조언까지 들었다. 플라시보 효과마저도 기대할 수 없는 하찮은 용량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서서히 나아졌다. 약의 효과 때문인지, 마침내 입을 열 의지가 생겼다. 오래 묵혀놓았던 심정을 어렵게 입으로 옮겨 더 어렵게 여러 귀에 전하다 보니 느리긴 해도 내 증상은 완화되었다. 귀 기울여 주는 이들은 감사하게도 똑같은 레퍼토리의 내 사연을 몇 번이고 들어주었다. 같이 울어주기도, 화를 내기도 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하지, 왜 이렇게 멀쩡한 척하며 살았느냐고 타박했다. 그게 어려웠나 보다. 모두 각자의 고민과 처지로 바삐 사는데, 굳이 내 이야기까지 얹고 싶지 않았나 보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온통 좋고 긍정적인 모습만 보이고 싶은 욕심도 컸다. SNS에 올리는 잘나고 멋들어진 사진들처럼 말이다.     


욕심만 많지 용기가 없었다. 힘듦을 인정하고, 지치고 상처받은 나를 받아들일 용기. 무조건 잘해야 하고, 강해야 하고, 굳세야 한다는 누구도 차라고 강요하지 않은 완장을 차곤 누구도 시키지 않은 웃는 연기를 하고 있던 꼴이다. 대단한 일을 하며 사는 것도 아닌데, 대단히 아픈 나를 나는 용납할 수 없었다. 추수감사절을 며칠 앞둔 날, 내가 A를 통해 보았던 것 역시 그런 종류의 연기였다. 온 힘을 끌어내어 남들 눈에는 멀쩡한 사람처럼 보이려는 대단한 노력. ‘안녕하세요? 처음 뵙네요.’ 설령 내가 이 한마디를 A에게 건넸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날 A의 상태를 눈치챘으면서도 일부러 피한 게 오래 마음에 걸렸다. 


(새해의 첫 목요일, 바쁜 와중에도 가파른 언덕을 함께 올라와 준 소중한 이들과 함께. 사진=박인정)


지금의 나는 안다. 상처와 아픔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그것을 극복하는 시작점이라는 것을.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무척 어려운 일이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스스로 집 밖을 나서는 일. 정신과 진료를 예약하고 처음 보는 의사에게 심경을 갈무리해 순차대로 읊조리는 일. 그걸 반복하는 일. 그래도 나는 당신이 그렇게 하기를 권한다. 마음의 빗장을 풀고 외딴섬을 벗어나 병원의 문턱을 넘기를 종용한다. 시간은 결코 약이 되지 않으니, 언젠가 괜찮아질 거라 미련하게 버티지 말고 제대로 진단받고 적합한 약을 처방받기를 말이다. 배가 아프면 내과를 찾듯, 마음이 아프면 내원하는 게 맞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고 부끄럽고 숨길 것이 아니다. 나도 해낸 일을 당신이라고 못할 리 없다.      


유독 아프거나 상실한 지인들의 소식이 잦았던 작년이다. 2023년은 부디 기쁜 소식으로 충만한 해가 되면 좋겠다. 무엇보다 한국의 A가 무사히 쾌차하길 바란다. 수많은 A가 용기를 내어 하루빨리 외딴섬을 벗어나길, 부디 가라앉지 않고 부표처럼 다시 떠오르길 진심으로 바란다. 


영월매일에서 연재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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