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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정 Jan 22. 2024

그래도 되는 땅에서 그러지 않기

열네 번의 우물우물-여덟 번째 긷기


햇반을 먹고 남은 용기를 무심코 쓰레기통에 버렸다. 여긴 누구도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다. 그래도 되는 땅이다. 문 밖에 내놓기만 하면 온갖 쓰레기를 거둬가는 발렛 서비스를 마다하고, 종이나 알루미늄 캔을 차곡차곡 모아 차 트렁크에 실어 재활용품 센터까지 나르는 사람이 이 아파트에 우리 말고 또 있을지 모르겠다.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재활용센터는 종종 예고도 없이 문을 닫는다. 이번 연말에도 열흘 가까이 문을 닫았다. 코스트코에서 파는 일회용 물병 같은 투명한 플라스틱은 확실히 재활용될 것 같아 띠지까지 떼어가며 열심히 모으고, 햇반 용기 같은 음식물이 묻거나 불투명 플라스틱은 그보단 대충 모으게 된다. 종이며 유리병이며 온갖 재활용품을 세탁기와 건조기와 신발을 보관한 좁은 공간에 욱여넣는 게 버거워 가끔 내가 왜 이러고 사나 자문이 들기도 한다.


확신은 없다. 이렇게 열심히 모은 쓰레기들이 제대로 재활용이 될는지. 이런 노력이 지구에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그러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씻고, 헹구고, 떼어내 모으는 무수한 어제의 내가 미래의 삶을 일말이라도 바꾸는 변수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무해함일기 #CQ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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