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눈을 감았다 뜨기만 해도,
쑥대들이 쑥쑥 자라나는 쑥골.
앞산 쏙독새는 시도 때도 없이 울었다.
비 갠 후면 고사리가 한 뼘씩 올라오고,
산골 마을은 풍요로웠다.
마을 사람들은 산이나 냇가로 나가
어린 쑥잎을 따고 고사리를 캐며
손끝이 까맣게 물들었지만 평화로웠다.
겨울이 오면 모든 것이 얼어붙고
냇물은 얼음장 밑으로 숨죽여 흐른다.
짧은 오후 산그늘이 빠르게 내려오고
어떤 기다림 속에 날이 저물곤 했다.
누구는 손목을 삐기도 하고
누구는 넘어져 발목을 다치고
누군가는 급체를 했다.
도시에서 살다 온 노인은
가끔 실성기가 돌아
감나무 밑 허깨비를 보았다.
군대 가서 죽었다는 아들을 부르며,
하염없이 먼 산을 바라보았다.
노인이 마을을 떠날 때까지도,
가족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뒤 안 대숲은 대낮에도 컴컴했고,
밤낮으로 미친 바람이 불어댔다.
산그늘이 성큼 내려오는 마을,
지금도 그 아이는 뭔가를 애타게 기다릴까.
2
아비는 먼 타지로 떠나고,
텅 빈 방 안엔 어둠이 짙었다.
낮은 한숨에 문풍지가 떨었다.
날이 저물면 조숙한 아이는
누가 시킨 듯이 군불을 지피고
눈칫밥으로 큰 막내는
온종일 순둥 순둥 보채지도 않고
혼자 뒹굴며 혼자 놀았다.
매일 막차로 돌아오는 아낙은
관절 마디마디 통증을 감추었다.
구부러진 손마디가 눈에 선하고
몇 점 구름들이 둥둥 떠 흐른다.
쭉 뻗은 미루나무 가로수 길 따라
소실점 끝까지 걸어가면
꿈같은 도시가 있을 것만 같았다.
저녁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된장국 보리밥 냄새가
온 마을에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