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지음, ㈜문학동네, 2022)
김훈(1948~ )은 기자 시절 재난·폭력·전쟁 현장을 취재하며 삶의 잔혹한 단면들을 기록해 왔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작품 세계의 근간이 된다. 대표작으로 《칼의 노래》, 《남한산성》, 《현의 노래》, 《하얼빈》 등이 있다.
작가의 문학적 특성으로는 먼저, 절제되고 단단한 문장을 꼽는다. 모든 문장이 대체로 짧고 군더더기가 없다. 직설적이고 사실적인 문장 속엔 인간의 고독과 애틋함이 응축되어 있다. 기자로서 경험한 여러 가지 재난과 파괴의 현장은 작품 속에서 삶의 비극을 외면하지 않고 고통의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민통선 안 수목원에 계약직 세밀화가로 일하게 된 화자의 이야기다. 그러나 세밀화가로서의 일상보다는 감옥에 있는 아버지의 삶을 회상하는 내용이 주조를 이룬다.
“숲에서 밤 부엉이가 울었다… 나는 아버지의 남은 형기를 따져 보았다.”
“감방 창틀 어디쯤 시멘트 깨어진 자리에 풀씨 하나 날아와 뿌리를 내리고… 아버지가 그 풀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어둑한 저녁이 내릴 때마다 화자는 어둠 속에 떠오르는 아버지를 생각하곤 한다. 아버지는 군청 말단 공무원이었으나, 뇌물죄와 알선수재로 징역 삼년 육 개월에 추징금 삼억 원을 선고 받고 수감된다. 술집 여자들에게 정보를 팔고 불법적인 일을 눈감아 주는 대신 돈을 갈취하고 윗선에까지 상납했다는 이유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갇힌다면 가족들은 충격에 빠질 것이다. 스물아홉, 이직상태의 딸과 어머니의 시간들은 독자들을 질척이는 사유의 숲으로 이끈다.
“숲이 어두워지는 저녁에 가끔씩 아버지가 생각났다....수목원에 취직한 일을 편지로 알릴까 하다가, 쓰지 못했다. 아버지가 교도소 밖 세상과 절연되어서 그 안에서 더 이상 세상에 쓸리거나 부딪치지 않고, 숲 속의 나무나 벌레처럼 홀로 적막하고 자족하기를 바랐다.”
이렇게 화자의 젊은 날은 온통 아버지에 대한 생각으로 어둡고 깊은 숲을 이룬다.
작가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비무장 일대를 묘사하기 위해서, 그곳의 자연환경은 물론이고, 전국의 산야를 떠돌면서 수많은 세월을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 호흡하고 생생한 기록을 남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연중 숲과 야생화의 기척을 알아채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눈이 녹기 전에는 복수초와 얼레지 꽃을 그리고, 3월이 가기 전에 목련을, 4월에는 민들레를 그리는 식이었다....작업은 식물의 발아, 개화, 결실에 집중되었다. 생애의 가장 역동적인 순간에 작동하고 있는 식물의 생명의 표정을 드러내라는 요청이었다.”
“숲에 눈이 쌓이면 자작나무의 흰 껍질은 흰색의 깊이를 회색으로 드러내면서 윤기가 돌았다. 자작나무 사이에서 복수초와 얼레지가 피었다. 키가 작은 그 꽃들은 눈 위에 떨어진 별처럼 보였다.... 노란 꽃은 쟁쟁쟁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눈 위에서 얼레지 꽃의 안쪽은 뜨거워보였고, 거기에서도 쟁쟁쟁 소리가 들리는 듯싶었다.”
화자는 매월 피고 지는 꽃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숲의 다양한 모습을 생동감 있게 포착하여 그려야 했다. ‘숲’은 많은 식생들이 군집해서 살아가는 무성한 생태적 환경이다. 특히 일반인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민통선 안 수목원은 덤불이 무성하고 깊고 적막하다. 온갖 식생들이 자라고 꿈틀거리는 물리적인 환경이다.
책을 읽기 전 ‘내 젊은 날의 숲’이라는 책명은 ‘무성한 초록 숲’을 연상시켰다. 싱그럽고 아름다운 생명이 넘치는 여름 숲이 떠올랐다. 그러나 책을 읽은 후 ‘숲’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화자의 칙칙하고 고단했던 삶의 순간을 비유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숲 어딘가에는 아버지의 어두운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이십대 끝자락 스물아홉의 나이는 청춘의 마지막 관문이다. 어떤 시인은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고 선언한다. 그렇게 이십대와 삼십대는 누구에게나 크게 다른 느낌과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화자의 이십 대는 두 달 치 월급을 받지 못한 채 퇴사를 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했고 아버지가 벼락을 맞은 듯 감옥살이를 하는 절망적이고 암울한 상태였다. 미처 젊음을 향유할 여유가 없이 깊고 어두운 숲 속을 배회해야만 했다.
아버지는 딸을 볼 때마다 ‘미안하다’고 한다. 딸은 그런 아버지에 대해서 별다른 감정을 보이지 않는다. 부녀간에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연민의 정을 느낀다. 죄는 미우나 사람을 내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진 퇴사한 백수임에도 아버지 면회 시 꼬박꼬박 영치금을 들인다.
그에 반해 어머니의 캐릭터는 부정적이다. 말로는 “그 인간 불쌍하다, 불쌍하다” 하면서도 남편을 돌보려 하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서 지낼 마음이 없다. 자기 명의로 된 단독주택을 팔아서 아파트 두 채를 산다. 남편이 출소하게 되면 따로 살 생각이다. 늦은 밤 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넋두리와 하소연을 반복적으로 해댄다. 딸이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배려할 줄 모른다. 이해가 되지 않는 캐릭터다. 현실적으로 이런 사람이 있을 수는 있으나 흔치는 않다.
왜 작가는 어머니를 이런 인물로 설정했을까.
보통의 아내라면 세상이 외면하고 내친 남편이지만 자식을 낳고 부대끼며 살아온 부부로서, 한 가닥 측은한 정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작은 아파트 두 채를 멀리 떨어진 곳에 사 놓고 남편과 별거를 할 생각이다.
남편이 죄를 짓고, 더러운 돈을 가져왔을지언정 가족을 위해서는 헌신적으로 살아왔다. 작은 돈일지라도 꼬박꼬박 월급을 가져왔고, 딸의 사년제 미술대학 등록금과, 자취방을 얻어줬으며, 취직했을 때는 자동차까지 사준 사람이다. 아내의 명의로 집도 마련해주고 그렇게 가족에게는 최선을 다한 사람이다.
감옥에서는 모범수로 인정을 받는다. 상사와 부서의 모든 죄를 옴팡 뒤집어쓰고 옥살이를 감내하는 것으로 봐서 어떤 면으로는 사회의 희생물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어머니는 노구인데다 병을 얻고 출소한 남편과 한 집살이를 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이 모두 손가락질을 한대도 아내만큼은 이해를 해주고, 함께 죗값을 치러야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독자는 그 점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아버지라는 인물을 뚜렷하게 부각시키기 위해서일까. “인간은 완벽하게 부족한 존재”라는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화자에게 어머니와 아버지는 참으로 모자라고 불편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화자는 딸로서 부모를 부끄럽게 여기거나 증오하지 않는다. 참고 견디며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뿐이다.
어머니와는 달리, 화자는 중성적인 딸의 모습으로 그림자 같은 캐릭터 역할을 한다.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해서 가타부타 단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한결같이 절제되고 응축된 감정으로 대처한다. 어머니보다 훨씬 성숙하고 의젓한 모습이다. 주어진 환경에 순리대로 처신하며 담담하게 적응해 간다.
화자에게는 인간적인 따뜻함이 있다. 직속상관인 안요한과 그의 아들 신우는 자폐성을 앓는다. 화자는 그들 부자에게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고 끝까지 신우를 향한 따뜻한 시선을 멈추지 않는다. 작가는 이런 캐릭터를 통해 어두운 현실 속에도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아버지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외면 받고 버려진다. 영원한 아웃사이더다. 작가는 못나고 부족한 아버지를 그려내어 독자들의 여러 가지 생각을 도출하고 찌질하고 허접한 현실을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만약 어머니가 아버지를 긍정적으로 대하고 한 통속으로 살아가는 모습이었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졌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작아지고 그의 부정적인 삶이 비루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주제와 내용이 훨씬 빈약해질 것이다.
특히 감옥 속에서 아버지가 ‘모범수’가 되었다는 말이 슬프게 느껴져서 울컥했다. 비록 아버지는 범죄자 낙인이 찍히지만, 가족을 위해서는 희생적인 가장이자, 성실한 아버지였다. 그러면서도 자식에게는 평생 ‘미안하다’는 말로 압축되는 사람이다. 방법은 잘못되었으나 주어진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가 이 땅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화자는 자연의 변화와 생명의 표정을 포착하며, 아버지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며 청춘의 숲을 통과한다. 사랑도, 꿈도, 자유도 없던 스물아홉. 그러나 그 숲엔 인간적인 온기와 성찰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아 건너온 힘, 그것이 화자의 젊은 날이다.
이 책은 한 아버지의 몰락과 죽음을 그리지만, 동시에 우리 시대 모든 무명의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야상곡이다. 불완전하고 남루한 존재들이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들이다. 아버지는 감형을 받고 출소하지만 병이 악화되어 곧 세상을 뜬다. 시신은 화장이 되고 뼛가루는 새들의 먹이가 된다.
아버지는 죽어서야 새가 되어 하늘을 자유롭게 떠도는 영혼이 되었다. 책장을 덮으며 이 땅의 모든 무광의 아버지에게 깊은 감사와 사랑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