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2020)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출신으로 사상가, 자연주의 철학자, 수필가이다. 초월주의를 실천한 작가이자 사회 비판가이며, 절제하는 삶과 개인의 양심을 강조한 인물이다.
처음 책장을 펼치면 인용한 시 구절이 나온다.
“시 한 줄을 장식하는 것이 나의 꿈은 아니다.
내가 월든 호수에 사는 것보다 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는 없다.
나는 나의 호수의 돌 깔린 기슭이며 그 위를 스쳐가는 산들바람이다.”
2년 남짓 월든 호숫가에 살면서 그는 신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천국생활을 누린다. 때로 산들바람이 되고, 호수의 물결이 되어서 깊이 사색에 잠겨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독립적인 생활을 추구한다.
역자는 몇몇 애독자들의 댓글을 소개한다. “도서관의 모든 책들이 불에 탈 때, 단 한권의 책을 가지고 나와야 한다면 『월든』 이다.” “이 책이야말로 내 인생의 최고의 책이다.” 이 밖에도 대학 졸업생에게 졸업장 대신 이 책을 한 권씩 주는 게 낫다는 말을 전한다. 도대체 이 책이 무엇이기에 그런 후기를 남겼을까 자못 궁금해진다.
추천사를 참고하여, 간략히 책을 소개하자면, 크게 네 가지 포인트로 읽히는 책이다.
먼저, 『로빈슨 크루소』 같이 자연 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체험을 저술한 ‘모험기’이다.
둘째, 자연의 풍광을 세련된 어휘와 문장으로 표현한 뛰어난 ‘문학작품’이다. 계절이 바뀌면서 변하는 월든 호수와 숲의 정경, 자연 생태의 모습을 생생하고 치밀하게 묘사하여 찬사와 감동을 준다.
셋째, 저간의 사회통념과 상식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쏟아낸 다.
넷째, 최초의 ‘녹색서적’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산업발달로 자연이 훼손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를 최초의 환경보호론자라고 일컫는 이유다.
총 1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숲 생활의 경제학을 비롯하여, 나는 어디서 살았으며, 무엇을 위하여 살았는가, 독서, 고독, 마을, 호수, 보다 높은 법칙들, 전에 살던 사람들 그리고 겨울의 방문객들, 겨울의 호수, 봄' 등의 소제목으로 되어있다. 소제목만으로도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된다.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마을 근처에 있는 월든 호숫가의 숲 속에 집 한 채를 지어 홀로 살고 있었다.” 로 시작한다. 이웃과 1마일 쯤 떨어진 곳에서 2년 2개월 정도를 살았다. 자신의 노동으로 자급자족하는 삶이었다.
그는 ‘인간의 주목적은 무엇이며,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단과 방편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물으며 사색하는 삶을 살아간다. 선배로부터 유익한 가르침이나 진심어린 충고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나이가 많다고 젊은이보다 지혜롭다고 볼 수 없다’고 단언한다. 선인들이 살아온 삶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을 부정하고 새롭게 자신에 맞는 삶을 개척하며 살기를 바란다. ‘이웃이 선이라고 부르는 것이 때론 악이다.’고 생각하며, 자신감 넘치는 삶, 젊은 패기로 모험에 찬 삶을 살기를 원한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생필품의 대부분은 살아가기 위한 필수품이 아니며, 오히려 삶의 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현명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보다도 더 간소하고 결핍된 생활을 해왔다.’고 말하며, ‘자발적인 빈곤’에 처해보지 않고는 생에 대해 공정하고 현명한 관찰자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소로우는 오래 전에 ‘사냥 개 한 마리, 밤색 말 한 필, 비둘기 한 마리’를 잃었다고 한다. 그것들이 무엇을 가리키는가 물으니, 비유어로써 암시만 한다. 독자에 따라 달리 생각할 수 있겠으나, ‘사냥개’는 ‘가진 자들의 유희나 놀이’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말’은 문명의 이기로서 ‘생활 편의’를 비유하고 있으며, ‘비둘기’는 세속적인 ‘안락이나 평화’를 뜻하지 않을 까.
따라서 그는 안락하고 쾌락적인 세속적 삶을 버린채 자기만의 독립적이고 개성적인 삶을 실험적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일상은 길들여지지 않은 가축을 돌보고, 빨간 허클베리, 모래벚나무, 팽나무, 폰데로사소나무, 검정 물푸레 나무, 흰포도 나무, 노랑 오랑캐꽃에도 물을 주며 자연친화적인 삶을 산다. 옷은 기워 입으며, 스스로 최소의 것으로 생존할 것을 실천한다.
모든 삶의 필수품을 자급자족을 통하여 해결한다. 집을 구하기 위해 쓸데없는 노동을 하거나 빚을 지는 것을 비판한다. 사람이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사람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죽어서나 자유의 몸이 될 것이라고 혹평한다. 인간은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끝없이 노력하고,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고 말한다. 더 소박하고 더 간소하게 살 것을 권한다.
얼마 전, 친지로부터 받은 돌김선물 포장이 떠올랐다. 뜯어보고 너무 황당해서 할 말을 잃었다. 실제로 내용물은 한 줌도 안 되는데, 포장이 너무 화려하고 거창했다. 아직도 이런 사례가 있다니 황당했다. 허례허식은 하루빨리 사라져야한다.
소로우는 집을 짓거나, 씨앗을 산 것 등 생활 전반에 걸쳐 가계부를 작성한다. 꼼꼼이 체크하면서 절제하는 삶을 살지만,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자유로운 삶이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길을 택한다. 좋은 가구나, 맛있는 요리, 멋진 주택을 마련하기 위해서 시간과 돈을 허비하지 않는다. 젊은이가 자발적으로 이런 생활을 추구하다니 새삼 놀랍고 지혜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생활철학에 깊이 공감하며, 더 간소하고 검소하게 살 것을 다짐해 본다.
이 밖에도 기존의 모든 이론들을 확인하면서 더욱 인간답게 지혜롭게 살 것을 스스로 챙기고 체득하며 살아간다. “나는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의 군주이며, 세상에 내 권리를 의심하는 자는 하나도 없다.”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가진 것이 없어도 모든 자연을 고스란히 느끼고 소유하는 사람이 진정 부자임을 역설한다. 어디서든 상상의 나래를 펴고 넓은 초원을 달리는 생각을 하면 답답하거나 갇혔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술회한다.
일찍 일어나 호수에서 멱을 감고 하루를 시작한다. 삶을 깊게 살기를 바랐고, 생의 모든 골수를 빼먹기를 원했다. 자기에게 강인하고 엄격하여, 군더더기라고 생각되면 일체 잘라버린다. 인생이 사소한 일들로 헛되이 쓰인다고 생각하면서 보다 간소하게 살기를 바랐다.
여가시간에는 많은 독서를 한다. 참다운 책을 참다운 정신으로 읽는 것은 고귀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침시간은 독서로 보내고자 하였다. 자기의 거처를 사색하기 좋았으며, 독서하기엔 대학 도서관보다 나았다고 생각한다. 귀족들 대신 보통 사람들로 구성된 고귀한 마을을 건설하고자 의견을 낸다. 요즘 평생학습관 같은 의미이다. 19세기에 벌써 21세기를 내다보는 예지가 있었다. 이런 그의 행보가 새삼 놀라웠다.
“몹시 상쾌한 저녁, 온몸이 하나의 감각기관이 되어 모든 땀구멍으로 기쁨을 들이마신다.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밤에 집 옆을 지나는 길손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무인도에 사는 듯한 느낌이었으리라. 마치 세상 최초 인간이거나 마지막 인간인 것 같았다고. 얼마나 적적하고 적막했을지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혼자만의 해와 달과 별들을 소유하고, 혼자만의 작은 세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외로움을 느끼거나, 고독감으로 위축된 적이 없었다.
“조용히 비 내리는 가운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나는 갑자기 대자연 속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속에 집 주위의 모든 소리와 모든 경치 속에 진실로 감미롭고 자애로운 우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모든 대자연이 친구였으며, 친근하게 느껴졌기에 외로울 새가 없었다.
그가 보낸 가장 즐거운 시간 중 ‘봄가을 비바람이 몰아치던 때’를 꼽는다. 그런 날이면 하루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쉴 새 없이 부는 바람 소리와 빗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달랬다. 그런 날엔 이른 황혼과 긴 밤 내내 ‘많은 사념이 뿌리를 박고, 나래를 펼칠 시간적 여유’를 얻는다고 한다.
필자는 황혼 무렵 혼자 있다보면, 주변이 적적하고 외로워서 생의 덧없음을 느끼곤 한다. 그럴 때면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신다. TV를 틀거나 유튜브를 보며 적막함을 잊으려 애쓴다.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심 한가운데서 외로움을 느끼는데, 소로우를 생각하니 힘과 용기가 생긴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 달렸다더니....
천둥과 비바람이 요란하고, 숲 속에 벼락이 떨어졌을때 외롭지 않더냐고 묻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자체가 우주의 한 점에 불과합니다.” 별의 폭은 측정불가한데 저 별에 살고 있는 가장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의 거리가 얼마쯤 된다고 생각하시오?” “천지의 오묘한 힘은 그 영향이 얼마나 넓고 깊은가?”라고 말하며 그만큼 지구는 작은 별에 지나지 않으며,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같이 있으면 싫증이 나고 주의가 산만해진다며,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내는 것이 심신에 좋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집 주변에 있는 자연의 많은 것들을 친구로 생각한다. “꼭 웃는 것 같은 특유의 울음소리를 가진 되강오리가 외롭지 않듯이, 월든 호수가 외롭지 않듯이, 태양이 혼자이듯이 나도 혼자다.”고.
이 밖에도 콩밭, 마을, 호수 등의 키워드로 자기의 체험과 사색을 가감없이 써내려간다. 새로운 숲과 새로운 풀밭을 다니면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나간다. 온갖 나무와 새들을 관찰하고 아름다운 무늬와 모양에 대해서 묘사한다. 따먹기에 너무 아름다운 이름 모를 금단의 야생 열매들을 보면서 자연의 눈부심과 유혹에 대해서 찬탄한다.
나태함은 무지와 관능을 낳는다며 인간이 지켜야 할 것이 정결이라고 역설한다. 몸을 부지런히 놀리면 지혜와 순결을 얻는다고. 죄악과 불결함을 피하려거든 외양간 청소라도 좋으니 부지런히 일하라고 말한다.
이 책은 정독하면 할수록, 반복하여 읽을수록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끝없는 배움을 준다. 자연에 대한 사랑과 풍부한 지식과 정보에 찬탄을 금치 못한다. 생쥐, 딱새, 개똥지빠귀, 들꿩, 도요새, 멧비둘기, 붉은 개미, 가을 월든 호수의 되강오리와 호숫가를 거니는 고양이까지, 수많은 동물들을 관찰하고, 친구로 삼으며 사는 삶이 경이롭고 존경스럽다. 그의 삶에 공감한다고 보통 사람이 그대로 본받고 살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주어진 환경을 긍정하고, 풀 한 포기일망정 무심히 지나쳤던 자연현상에 대해, 보다 세심하게 피부로 느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대의 눈을 안으로 돌려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 속에 여태껏 발견 못하던 천 개의 지역을 찾아내리라. 그곳을 답사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학의 전문가가 되라”
인간 개개인 내부에 있는 신대륙과 신세계를 발견하라고 한다. 평범한 상식은 잠자고 있는 사람들의 상식이며, 코고는 소리라고 일갈한다. 인생이 비천하더라도 똑바로 맞닥뜨려 살아가되, 피하거나 욕하지 말라고 한다. 뜨는 해, 지는 해는 부자의 저택이나 양로원의 창가에도 밝게 비친다며, 샐비어 같은 약초를 가꾸듯 가난을 가꾸라고 한다. 신은 결코 인간을 외롭지 않도록 보살펴 줄 것이라며 글을 맺는다.
소로우는 1817년에 태어나서 1862년 44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28세에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살다가 30살에 월든 숲 생활을 마친다. 따라서 이 책은 1840~50년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지금으로부터 180년여 년 전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오늘날 환경보호, 최소주의 등이 유행한 걸 보면, 그는 놀라운 예지와 통찰력을 지닌 위대한 영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은 각자 타고난 길이 있다. 저마다 욕망과 의지가 다르다. 따라서 자연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소로우의 삶과 사상이 그대로 스미거나 먹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각자의 처지와 입장에 따라 변주가 가능하다. 자연을 사랑하고, 여타의 모든 폭력을 거부하며, 순수하고 정결하게 사는 삶의 자세 또한 누구에게나 귀감이 된다.
새로운 날을 맞아 아침을 열고, 많은 독서로 참된 삶을 찾아 가며, 깊은 사유로 살아가는 태도 역시 배움이 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했던가. 모든 것을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그의 몇 가지 행적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길을 추천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의 행적들을 더듬어 가며 독자마다 자기의 길을 헤쳐 간다면, 숲 덤불 속에서도 멋진 길이 보일 것이라고 확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