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문미순 지음, 나무옆의자, 2023)

by 도도히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

“벨이 울리고 있었다”로 시작된 소설은 “오늘은 운수가 좋은 날이다.”로 끝난다. 첫 문장부터 독자의 시선을 확 끌어 당긴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수시로 누르는 벨소리라고 생각하니, 간병인은 얼마나 피곤할 것이며 스트레스를 받을 것인지 짐작이 간다.


이 소설은 작가에게 세계문학상을 안겨준 작품으로, 정교하고 치밀한 구성과 깔끔한 문체가 도드라졌다. 거의 완벽한 문장을 보며 작가의 탄탄한 필력을 감탄하며 읽어나갔다. 주요 내용이 신문기사로 보도되었던 끔찍한 사건을 떠올렸다. 유족연금을 받기 위해, 부모의 사체를 은폐하고 지내다가 이상한 냄새 때문에 이웃에게 발각되는 뉴스가 떠오른다.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어서 쉽게 술술 책장이 넘어갔다.


인간미나 도덕성은 사라지고, 돈이 전부인 세상을 비판하다가도, 취업이 어려운 현실과 초고령 사회의 노인간병문제 등을 생각하며 작가의 의도를 짚어나간다.


“직장동료 살해, 5년간 베란다 고무통 안에 시체은닉 20대 녀 징역15년”

“25년간 남편 사망신고 미뤄 3억5천만 원 군인연금 부정수령.”

“아버지 사망 숨긴 채 20년간 연금 수령한 70대 딸 기소.”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세상종말을 떠올리곤 한다.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이런 기사를 듣는 날에는 오죽 했으면 그랬을까 하다가도 영구히 감출 수 있을 것도 아닌데 임시방편으로 일을 꾸미는 저들의 행태가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 책 역시나 읽어 나가다보니 좀 불편했다. 시체는 부패할 것이고, 냄새는 탈취제로 감출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쩌자고이런 무모한 짓을 시작한 것인지.

13평 영구 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701호에 사는 명주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이혼녀다. 맞은 편 702호에는 뇌졸중에 화상까지 입은 장애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청년 준성이 나온다. 이렇게 벼랑 끝에 사는 서민들이 겨울을 어떻게 건너가는 지 펼쳐 보인다. 이들은 생존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죽게 되고 명주는 어머니의 사체를 집안에 숨겨두고 유족연금으로 생계를 잇게 된다. 준성 역시 아버지 간병 때문에 취업 자격증을 못 따고 콜택시 운전으로 근근이 버티던 중 아버지가 사고사로 사망하게 된다. 명주의 도움으로 사망신고를 미룬 채 행방불명으로 속이자는 계책에 동의한다.


작품을 읽고 나서 한참동안 할 말을 잃었다. 깊은 상념에 잠겨, 만감이 교차했다. 뭔지 모르게 속상하고 화가 났다.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쁠까 한참 생각했다. 명주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크게 잘못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딸이, 내 아들이 저런 환경에 놓여 있고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가정해보니, 조금은 이해가 되었지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또 가슴이 아프고 답답했다.

“한 여자가 남편을 죽이면 살인이라고 부르지만, 다수가 같은 행동을 하면 사회현상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명주는 자신의 범죄를 합리화하려한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자기처럼 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도 위안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엄마가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사체를 은폐하고 엄마의 연금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한 후에 죽으려고 하는데,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었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샛길로 빠지는 게 아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구차하게 살 바에는 차라리 그냥 죽어라’ 는 말이 목까지 치밀었다. 그러면서 자기처럼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사체를 유기하는 사람이 많으면 사회현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제 잘못을 당연시하며 얼버무린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잘못된 착각이라고 짚어둔다.

‘이건 세상이 내게 준 모욕과 멸시에 대한 보상이야. 이 세상이 내게 갚아야할 빚이야. 사죄야. 명주는 마음이 흡족하다 느껴질 때까지 보상 받으리라. 그때에야 미련 없이 가리라.’는 생각 역시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겨우 이런 식으로 어려운 순간을 넘기려고 하다니, 읽으면서 힘이 쭉 빠졌다. 이 세상에 가난하고 어려운 모든 사람들이 명주처럼 생각하며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세상을 향해 앙갚음을 하려하기 때문에 묻지마 범죄가 늘고,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처지나 환경이 어렵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명주의 행태는 선을 넘은 행동이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을 방안에 두고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며, 엄마 이름으로 대리 처방을 받고 그것도 모자라 엄마 옷을 입고 엄마행세를 하는 모습은 코미디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상으로 발바닥이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이 제가 하고 싶은 짓은 다하고 돌아다닌다. 이율배반적이고 위선적이다. 그럴 힘이 있으면 죽기 살기로 알바를 해서라도 생활비를 벌어야지. 무슨 경황으로 딸을 만나 외식을 하고, 과도한 졸업선물을 사주려는 것인지 공감하기 어렵다. 이건 모성애도 아니요, 부모로써 마땅히 해야 할 의무도 아니고, 책임과 사랑을 빙자한 속된 일탈행동이다. 먹고 죽을 것도 없는 인간이 명품을 두르고 다니는 것처럼 어리석고, 위선적이며 가증스럽다.

그렇게 처신하기 때문에 배운 것이 없는 은진(딸)이 싸가지가 없고, 철딱서니가 없는 것이다. 제 엄마가 처한 상황도 모르고 저만 생각하는 딸이 된 것이다. 초딩에게 돈을 갈취하려다 걸리고, 고등학교 때에는 유부남을 사귀는 등 말썽을 부리다가, 거지신세인 엄마에게 비싼 음식을 시켜 먹고, 과도한 옷을 사달라는 등 정말 한심한 모녀다.


제정신이라면 명주는 자기의 처지를 딸에게 사실대로 말해서 당분간이라도, 몸이 회복될 때까지 자기를 돕도록 이해를 구해야 한다. 모녀간에 어려울 땐 서로 돕고, 정직하게 겨울을 이겨내려고 해야 한다. 자기 처지가 어려운 것을 모두 세상 탓 인양 원망하며, 자기의 범법행위를 당연하다는 듯이 합리화하는 명주의 사고방식은 크게 잘못돼 있고 어리석기 짝이 없다.

준성이를 도와준답시고, 그 아버지의 시신을 은폐하도록 선동한다. 경찰에 신고해서, 평소 준성이가 얼마나 착한 효자인지를 증언해서 그가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진정 돕는 것이다. 그럴 듯한 말로 꼬여서 취업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사망신고를 미루고, 불법 연금수령을 유도하는 방식은 맹인이 동행을 잘못된 길로 이끌어 같이 구렁텅에 빠지는 행위다.


요양원에서 빠져나온 할머니를 엄마 삼아 살겠다는 생각도 잘못이다. 즉각 연락을 해서 요양원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요양원 가족들이나 보호자가 얼마나 애타게 행려자를 찾을 것인지 생각하지 않은 처사다. 다행히 보호자가 없는 노인이라면 적법한 절차를 거쳐,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인간이 제 정신 아닌 노인을 돌보겠다는 생각 자체가 무모하고 믿음이 가지 않는 어이없는 발상이다. ‘너나 잘 하세요’라고 속말을 하면서 책장을 넘긴다.


아무튼 명주는 매사 생각하는 방식이 뭔가 미숙하고 한참 비뚤어져 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척, 착한 척 하지만 멀쩡한 사람까지 범죄자로 만든다. 동의하기 어렵고 불편한 이유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무수저까지 다양하다. 그것까지야 제 탓이라 할 수 없지만, 일단 태어났으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바르게 사는 길을 선택하며 사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명주에게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전혀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삶의 고비마다 명주가 보여준 일련의 행동을 볼 때 그녀의 행, 불행은 다 이유가 있고, 그다지 마음이 가거나 지지하고 싶지 않다.

무슨 이유로 이혼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한다거나, 처지에 맞지 않는 소비행태 등으로 미루어 보건대 살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동은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자신의 인생을 빠뜨리는 일임을 그녀는 모르고 있다. 그들이 언제까지 기초연금이나, 유족연금을 무사히 받으며 살아갈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위법한 상태로 편안하게 살 수 있진 못할 것이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했다. 이들의 앞으로의 행보가 심히 우려된다.


자신이 살아있고 싶은 이유는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한 끼의 소박한 식사, 겨울 숲의 청량한 바람, 눈꽃 속의 고요, 머리 위로 내려앉는 한 줌의 햇살, 들꽃의 의연함, 모르는 아이의 정겨운 인사 같은 것들’이라고 한다. 겨우 이런 정도의 삶을 위해서 그렇게 까지 법을 어기고 , 세상을 속이며 살아야 한다니 그녀의 삶이 참으로 구차하고 가볍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연금이 아니더라도 유산으로 물려받을 고향집에 내려가 밝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서평, 리뷰를 쓰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별로 새롭지도 않은 내용이었고, 외면하고 싶은 비윤리적인 사건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유사한 실제 기사를 접하면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생각조차 끔찍해서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탓도 있었다.

이유 없는 죽음은 없다고, 어떤 사건이나 불행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러나 잘못된 일에는 엄정한 잣대로 판단하고 죄의 댓가를 치르게 해야한다. 생존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든지, 착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관대하게 봐준다거나, 피할 수 없는 환경에서 어쩔 수 없었노라는 식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되나. 대단히 실망스럽다. 어머니의 죽음을 보고서 그 연금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거기서부터 잘못되었다. 니체의 말이 생각난다. 게으른 거지를 돕는 것은 그를 망치는 행위라는 말이 뒷통수를 친다. 값싼 동정으로 그런 짓을 용서해선 안 된다.

고독사, 치매노인이나 중환자 간병 문제 등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할 중요한 문제다. 초고령사회가 되다보니, 노부모의 간병을 하느라 변변히 직장생활도 하지 못하고, 기초연금과 유족연금으로 병원비와 생활비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그러다가 막상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 연금을 타서 쓰려고 사망신고를 미루고, 사체와 함께 기거하는 사례가 더러 나타날 수 있다. 피하는 것만이 방법이 아니다.

읽고 나니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부침하며 명멸한다.


깨끗이 죽는 게 낫다. 동정은 사랑이 아니다. 법은 어떤 경우에도 예외란 있을 수 없다. 명주가 딸이라면, 내가 어머니라면? 그래도 안될 말이다. 그런 방식으로 겨울을 지나가지 말라고 가르치고 싶다.

어머니의 죽음을 사실대로 받아들이고 장례를 치르고 다시 시작해라. 어미가 그런 식으로 살아가니까, 딸자식이 싸가지 없이 크는 것이다. 은진이에게 졸업선물 따위 사주기보다 현재 상황을 제대로 알게해서 함께 노력해서 살아나가는 방식을 취하라고.


꽃밭에 꽃이 없고, 하늘에 별이 뜨지 않는다. 지상에 꽃같고, 별같은 네온사인이 현란하게 불야성을 이룬다. 가짜가 범람하는 세상이다. 따뜻하고 진실한 감정이 살아있는 진정한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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