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지음, 복복서가, 2022)
김영하(1968)는 어린 시절 글쓰기로 상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작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학원 재학중이던 1990년대 초, PC통신에 올린 콩트들이 뜨거운 반응을 얻자, 자신의 작가적 재능을 처음 깨닫는다. 1995년 단편 <거울에 대한 명상>을 계간《리뷰》에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소설이 시작되기 전 작가는 전체 이야기를 아우르는 한 문단의 글을 띄운다. 화자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숨을 내쉬며 생각하는 광경이다.
“자작나무숲에 누워 나의 두 눈은 검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한 번의 짧은 삶, 두 개의 육신이 있었다. 지금 그 두 번째 육신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 어쩌면 의식까지도 함께 소멸할 것이다. 내가 겪은 모든 일이 머릿속에서 폭죽 터지듯 떠오르기 시작한다.”
스토리는 요즘 국내외적으로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인공지능 ‘휴머노이드’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소재로 된 영화나 소설은 이미 많은 작품으로 제작되고 출품된 바 있다. 따라서 내용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었으나, 작가 특유의 인생관과 미래사회에 대한 깊은 사유에서 도출된 스토리 전개가 독자를 강하게 작품 속으로 스미게 했다.
게다가 완벽한 작품 구성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개성이 돋보이는 친절하고 사실적인 문장이 독자를 작중 인물과 동화되는 쾌감까지 불러왔다.
휴머노이드를 생산하는 회사인 휴먼매터스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최박사, 그의 아들 철이가 주인공이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최첨단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는 육안으론 인간과 구분할 수 없다. 인간과 똑같은 피부와 장기로 이루어져서 인간처럼 먹고, 배설하고, 씻고 잠을 자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간처럼 꿈을 꾸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느낀다.
최진수 박사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인공지능의 윤리적 선택’으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철이는 최진수 박사가 만든 인공지능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이다. 자기가 인공지능 기계인 줄 모르고 최 박사의 친 아들로 알고 살아간다. 인간처럼 희노애락의 감정을 가진 최신형 휴머노이드이기 때문이다.
휴먼매터스는 인공지능 로봇을 생산하는 회사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온갖 휴머노이드를 만들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 정부는 초인적인 인공지능에 의한 인류멸망을 예방하기 위해 무등록 인공지능 단속법을 발효시킨다.
철이는 무등록 휴머노이드로 수용소에 갇히기 전까지는 자기가 진짜 인간인줄 알았다. 뇌관에 그렇게 생각하고 살도록 입력되었기 때문이다. 슬펐다. 내가 인간인줄 알았는데 최신형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라면 어땠을까. 아마 철이처럼 아빠를 원망했을까.
‘프랑켄 슈타인’에서 외로운 피조물이 저를 만든 박사에게 따지고 드는 순간들이 뇌리를 스친다. 또한 영화<AI>의 장면도 연상되었다. 인간과 유사한 인공지능은 어떤 면에서는 인간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니 인간처럼 살도록 고도로 발달한 휴머노이드를 제작하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인지 여러 가지 생각이 얽힌다.
이야기는 화자가‘휴머노이드’라는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고, 인간처럼 죽을 것인지, 네트워크상에서 떠도는 의식으로 영원히 존재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과정을 펼쳐나간다.
화자가 무등록 휴머노이드로 수용소에 갇히기 전까지, 철이는 너무나 평화롭고 안전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순간에 평온하던 일상이 지옥으로 변한다. 온갖 종류의 휴머노이드가 잡혀 온 수용소는 망가진 인공지능 부품과 제조사별로 온갖 기능을 가진 휴머노이드로 가득하였다.
그곳에서 철이는 평생 친구 선이와 민이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바깥 세상에 대하여 많은 사실을 깨닫게 된다. 기계파,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 복제인간 클론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눈을 뜬다.
선이는 복제인간 클론이며, 민이는 인도산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이다. 민이는 자기가 인간이라고 주장하다가 기계파들의 폭력으로 팔을 뽑히게 된다. 부서진 팔에 드러난 인공섬유를 보고서야 자신이 휴머노이드임을 깨닫는다. 철이처럼 실제 인간이라고 의식이 입력되고 인간처럼 살도록 제조되었기 때문이다.
선이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는데 그것은 거래의 재능이었다. 누군가 새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다가가 수용소를 안내해주고 그들의 몸에서 교환 가능한 것들이 있는지 재빨리 훑어보았다. 기계파의 무지막지한 폭력 속에서 나와 민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선이 덕분이었다.
최 박사는 강(强)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하면서 심지어 다른 인공지능 로봇을 설계까지 하는 시대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한때 아빠와 절친했던 김 박사는 다른 의견을 주장하며 아빠와 각을 세웠다.
“그건 막을 수 없어. 최 박사. 과학은 언제나 그랬어. 상상한 것은 결국 현실이 돼.”
“그러니까 막아야지. 인공지능의 폭주는 결국 인류의 종말로 이어질 거야. 우리는 인간이지 기계가 아니야.”
“이미 인간은 기계와 결합하고 있어. 지금 웨어러블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여기 아무도 없잖아? 우리의 심장박동, 혈압, 혈당, 그 밖의 모든 수치가 기계에 기록되고 관리되고 있어. 우리가 기계와 다를 게 뭐야? 이미 우리는 사이보그라고.”
“그럼 김 박사는 자기 뇌를 업로드해서 인공지능과 같이 영생할 거야?”
인간이 기계와 결합하여 영생할 것인지, 본래 인간성을 잃어버린 사이보그로서의 영생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가지고 의견이 분분했다. 어쨌든 인공지능은 갈수록 진화할 것이고 한계가 있는 인간은 기계의 힘을 빌려서라도 영생을 꿈꿀 것이다. 그러는 중 도태되고 진화하면서 또 다른 종의 기원이 탄생하는 것은 아닐지.
다 읽고 나니 둔기로 한 방 얻어맞은 듯 기분이 멍했다.
인류는 과연 인공지능에 의해 멸망할 것인가?
인간과 휴머노이드가 다른 게 무엇인가?
육안으론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휴머노이드가 자가증식을 하면서 진화한다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신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상상은 쉽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작품에서 예고하듯 인간세계의 종말이 올 것이고, 신처럼 강한 인공지능이 인간을 조종하는 세상이 되고 인류는 멸망할 것인가. 독자마다 이견이 분분할 것이다.
수용소에는 어떤 기술로 제조되었나에 따라 천차만별의 휴머노이드가 존재한다. 나이들면 인간이 노쇠하듯, 기계도 오래된 제품들은 낡고 고장이 나서 오작동을 한다. 인간이 치매에 걸려 의미 없는 짓을 반복하는 것 같다. 인공적인 물질로 이루어진 점만 다를 뿐, 모든 사고나 행태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 어찌보면 휴머노이드는 다른 문화와 기능을 가진 인류의 한 종이나 다를 바 없다.
최 박사는 백방으로 철이의 행방을 좇다가 철이와 교신을 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알아챈 정부의 민병대가 예상보다 빠르게 출동하여 수용소는 파괴되고 철이 역시 두 동강이 난다. 아버지는 철이의 머리를 찾아와 의식을 되찾아 주고, 철이는 두 번째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선이와 민이를 찾아 길을 나선다. 민이는 수용소 폭격 때 완전히 부서져 산산조각이 나고, 선이의 흔적은 오호츠크해 연안에서 포착된다. 철이는 그곳으로 선이를 찾아 길을 나선다.
“의식과 감정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는 인간이든 휴머노이드든 간에 모두 하나로 연결되고 궁극에는 우주를 지배하는 정신으로 통합된다....우주의 모든 물질은 대부분의 시간을 절대적 무와 진공 상태에서 보내지만 아주 잠시 의식을 가진 존재가 되어 우주정신과 소통할 기회를 얻게 된다....”
“우주는 생명을 만들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하고 의식은 영속하는 거야. 그걸 믿어야 해. 그래야 다음 생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거야.”
작가는 선이를 통해 인류사에 관한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그 우주를 신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이해가 명확해진다. 역시 미지의 세계는 두렵다. 나약한 인간에게 신앙이 필요한 까닭이다.
선이를 찾아 나선 철이는 노안과 백발로 변한 선이와 재회한다. 예전의 모습 그대로 재생된 철이를 선이가 알아본다. 그 곳에는 늙고 병든 클론과 망가진 휴머노이드, 걷지 못하는 로봇들, 개와 닭들, 그 밖의 동물들이 있었다. 선이는 그곳에서도 마을 공동체의 수장으로 신임을 받고, 모든 것에 도움을 주며 살고 있었다.
선이는 주어진 모든 시간을 철저하게 남을 돕는 일을 하며 산다. 자기가 가진 모든 재능과 에너지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소진하고 삶을 완성한다. 선이를 통해서 ‘죽음은 삶의 완성임’을 깨달으며 인생의 숭고함을 느꼈다. 진한 여운이 남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 알 수 있을 거야.”
“우주는 생명을 만들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하고 의식은 영속한다.”
철이는 선이가 하는 말을 믿고 싶은 순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파랗기만 하던 하늘이 서서히 오렌지 빛으로 물들고 있다. 노을이 진하니 내일은 맑을 것 같다. 그리고 난 그 내일을 보지 못할 것이다....끈질기게 붙어 있던 나의 의식이 드디어 나를 떠나간다.”
그렇게 철이는 철저하게 인간적인 삶을 살다가 죽는다. 최 박사는 예상했을까. 자신이 만든 휴머노이드가 인간적인 윤리의식을 가지고,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살다가 죽을 것이라고.
읽고나서 크게 두 가지 생각이 남는다.
하나는 의식을 가진 존재는 무엇이라도 인간처럼 소중한 생명이라는 것이다. 무엇인가가 고통 속에서 슬픔과 절망을 느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되었다. 인간과 유사한 고도로 발달하고 진화된 휴머노이드는 또 다른 생명체의 '종의 기원'이 되지 않을까.
죽음은 '삶의 완성'이다. 죽음이 두렵다는 생각보다는 하루하루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재능과 에너지를 남김없이 소진하고나면 그 연장 선에 죽음이 있다는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