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지음,이미애 옮김,민음사)
“그는 미안한 표정으로 내게 돌아가라고 손짓하며 여성이 도서관에 들어가려면 대학 연구원을 동반하거나 소개장을 소지해야 한다고 유감스럽다는 듯 나지막이 말했습니다.”(p.16)
버지니아 울프(1882~1941)는 영국의 소설가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과 가족 안에서의 폭력, 아버지의 강한 권위 속에서 자랐다. 이런 경험은 평생 그의 마음에 상처로 남았다. 울프는 우울증과 정신 질환으로 오래 고통받았다. 남편과 함께 출판사를 세워 자신의 작품과 다른 작가들의 글을 출판하며 독립적인 작가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1941년,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자기만의 방』은 강연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다. 이 책은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하면서, 당시 남성중심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를 비판한다.
책이 나온 1929년 무렵, 영국 사회는 불안정했다. 전쟁 이후 경제는 흔들렸고 실업자는 늘어났다. 많은 여성은 돈을 벌기 어려웠고, 스스로 생활을 꾸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려면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방’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방해받지 않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 경제적 독립,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뜻한다. 다시 말해 ‘자기만의 방’은 여성이 한 인간이자 작가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당시 영국에서는 여성의 대학 진학이 늘었지만, 유명 대학들은 여전히 여성에게 학위를 주지 않았다. 도서관이나 연구 공간에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었다. 울프가 강연에서 울분을 토한 '여성 도서관 출입 제한' 장면은 실제 상황이었다. 현재도 어디선가는 이해할 수 없는 성차별과 크고 작은 성 폭력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이 글은 20세기 초반 영국사회의 불편부당한 현실만은 아니었다.
영국은 1928년에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고, 1929년에 법적으로 시민이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결혼한 여성은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해야 했고, 결혼을 하면서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적으로 여성의 임금은 남성보다 훨씬 낮았다. 여성의 삶은 여전히 가정에 묶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조차 여성은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가 없었다.
이 책은 겉으로는 평등한 시민사회였으나, 실제로는 남성 중심 사회였던 당시 현실을 드러낸다. 그리고 초기 페미니즘 운동의 소시지가 된다. 지금은 단지 성차별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모든 편견과 차별에 대한 경고가 되고 있다.
시대를 거슬러 울프의 생각을 귀담아 들으며, 나는 멀지 않은 우리 의 과거사를 떠올린다. 한국 사회도 오랫동안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웃지 못할 성차별을 겪어 왔다. ‘귀남이’와 ‘후남이’라는 말은 '아들과 딸'을 '귀한 존재와 씨잘데기 없는 것'으로 대하던 지난 날의 슬픈 상흔이다. 많은 딸들은 여자로 태어난 죄로 집안의 아들을 위해서 희생과 헌신을 강요받았다. 교육과 사회 활동, 재산 상속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아야 했고, 아들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진학을 포기하고 가사를 돕고 이른 나이에 사회진출을 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가진 자들의 갑질과 이유없는 폭력, 장애인에 대한 편견, 이주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 심각한 노인 빈곤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과제로 남아 있다.
차별은 나라마다 역사, 전통, 종교, 문화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떤 사회는 겉으로는 정의와 시민을 위한 평등 사회처럼 보이지만 더 큰 인종, 성별, 종교적 갈등과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한다. 어떤 사회는 노골적으로 불합리한 법률과 관습으로 시민을 억압하고 기만한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생존 자체가 인권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서 갈등과 폭력,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다시 『자기만의 방』으로 돌아가 보자.
울프가 말한 핵심은 당시 영국 사회의 여성인권에 대해서 담론을 펼친다. 실제로 자신이 처한 불편한 현실을 고백하면서. 제아무리 출중한 재능을 가진 여성이라도 남성에 종속되어 자기의 역량을 떨칠 수 없었고, 교육과 생활면에서 엄청난 차별을 받았다.
여성은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었으며 자기만의 공간이 없었다. 그녀는 말한다. 이런 부조리한 현실이 아니었다면 섹스피어를 능가하는 많은 '섹스피어의 누이'가 탄생했을 것이라고. 평생 우울증을 앓고 정신병원 신세를 져야했던 작가를 이해할 수 있는 이유다. 시대를 선도하는 여성작가로서 용인할 수 없는 당시의 사회적 차별과 편견은 그렇게 절망적이었다.
그렇다면 현대인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오늘날 현대인은 또 다른 편견과 다양한 차별 속에 갇혀 있다. 절대 권력인 부와 빈곤은 세습되고 경제력은 그대로 신분계층을 결정한다. 죽도록 노력해도 불가능한 일들로 절망한다. 살기 위해서 '여우의 신 포도'로 무한한 자기긍정을 하며 스스로를 달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중요한 세, 네 가지를 포기하는 '삼포, 사포 시대'를 넘어서 'N포시대'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그런 선상에서 비혼주의, 딩크 족의 출현이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인생은 일종의 '로또'다.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느냐에 따라 일회적인 인생이 한방으로 결정된다. 주어지는 시공간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게 보면 현실은 처참하다. 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다. 어쩌다 사회적 약자로 태어나 자기의 노력과 의지와는 무관하게 타자에 종속되어 노예처럼 살아간다. 이것이 현실이다.
울프는 일찍이 이러한 현실을 알아채고 목소리를 낸다. 주변의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침묵할 수 없었다. 자기만의 세계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한다. 무겁게 드리워진 역사의 침묵을 깨고 끊임없이 글을 쓰고 강의를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낸다. 그렇게 선구적인 모더니스트로서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실험적인 작품을 써서 여성으로서 시대를 앞서 나간다.
디지털 시대, 깨인 지성으로 산다는 것
요즘은 교육이나 사회활동 면에서 성별로 인한 차별은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 스마트폰과 인터넷, 인공지능 AI와의 공존 속에서 또 다른 위협을 받고 있다. 검색 기록은 저장되고, 위치 정보는 추적된다. SNS에서는 끊임없이 비교와 평가가 이루어진다. 나도 모르는 '나'가 생성되고 수집되어서 나의 신분이 노출되고 꼭두각시처럼 이용 당하는 환경 속에 노출되어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촌각을 다투며 업그레이드 되는 인공지능의 출현이 또 다른 차별사회를 만든다는 점이다. 채용 프로그램은 특정 나이나 성별을 불리하게 만들고, 신용 평가 시스템은 가난한 사람을 더 어렵게 만든다. 이는 울프가 말한 구조적인 차별과 닮아 있다.
울프는 불합리한 체제에 맞서 용기를 낸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글을 써서 자유로운 의식을 이끈다. 자기만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생각한다.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사생활 보호, 표현의 자유, 감시받지 않을 권리이다. 이것이야말로 울프가 말하는 현대인의 ‘자기만의 방’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
『자기만의 방』은 고전이다. 오래된 목소리, 시대에 뒤쳐진 풍경이지만 지금 우리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현대인은 과연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는가. 간섭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마이 웨이'를 걸어가고 있는가.
절대적인 신이자 권력인 돈의 노예가 되어 있진 않는가.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나 여타의 물질에 의해 선택권과 결정권을 빼앗긴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자기 인생의 온전한 주체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지, 당신의 심신은 자유롭고 안녕하신가 묻는 것이다.
울프가 억울한 현실을 글로 써서 목소리를 냈듯이,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야한다. 개인이나 집단이 이기적인 과욕으로 부패할 때, 인류는 위기에 처하고 미지의 위험으로부터 역습을 당할 수 있다.
일례로 코로나19를 통해 이미 우리는 매운 경고를 받았다. 함께 사는 방법을 찾고 조화롭고 균형있는 사회를 위해 공존의 미덕을 깨달아야 한다.
'자기 만의 방'을 갖는 일이란, 어쩌면 불공평한 차별로 소외 당하는 이웃에게 손을 내밀고 작은 힘을 보태는 용기가 아닐까, 뭔가 아쉬운 생각을 접으며 책장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