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1)
처음 책을 사서 대충 읽은 후 언제 제대로 읽어보겠다고 했는데 너무 텀이 길었다. 이제야 제대로 읽어보겠다고 나선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하느님 앞에 고해성사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인간이 한 평생 바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로이 깨달으면서....
대학 강의실에서 저자의 생목소리를 들으며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정의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함께 고민하고 논쟁을 펼치는 장면을 떠올리며 읽었다.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관념들을 정의한다는 것은 복잡하고 까다롭다.
어떤 행위의 결과를 논할 때마다 산정해야할 동기의 순수성을 따져 봐야하고, 상황에 따라 그 값은 상반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나름대로 고심 끝에 한 문장을 건져 올린다.
정의란,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기반으로
공동선을 향하여
이성적인 사고와 양심적인 판단으로
옳은 행위를 실천하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1953년 미네소타에서 출생. 최연소 하버드대학교 교수(27세).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함. 《자유주의 정의의 한계》(1982)를 발표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 공동체주의 4대 이론가 중 한명이자, 존 롤스 이후 정의 분야의 세계적 학자로 분류됨. 저서로는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 《민주주의의 불만》, 《공공철학》, 《완벽함에 대한 반론》 등이 있다.
이 책은 ‘1강. 옳은 일 하기’를 위시하여 최대 행복원칙, 평등 옹호, 소수집단 우대정책 논쟁,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정의와 공동선 등 총 10강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마다 주요내용이 키워드와 핵심문장으로 소개되어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저자는 첫 페이지에서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관해, 도덕적ㆍ철학적 사고를 통해 정의론에 답하고자 한다’고 글의 취지를 밝힌다.
따라서 행복의 극대화, 자유존중, 미덕추구를 오랜 인류사의 관점에서 탐색하면서 현대사회의 특징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본다. ‘고대의 정의론은 미덕에서 출발하는 반면, 근현대의 정의론은 자유에서 출발한다’(p21)고 제시하면서 ‘정의를 고민하는 것이 곧 최선의 삶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깊이 파고들수록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를 쉽게 이해시키고자 저자는 실제 상황에서 맞닥뜨린 예화를 통해 논점을 부각시키고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에 불을 지핀다. 그래서 난해한 개념을 쉽게 풀어가고 이해시키며 주요내용을 쟁점으로 이끌어 나간다.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행복을 극대화하고 자유를 존중하며 미덕을 기르는 행위의 의미,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이상이 서로 충돌할 때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희생을 최소화하는 쪽을 선택한다 해도 여러 가지 반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몇 가지 예화들
‘상처를 입은 재향군인만이 군인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미군은 1932년부터 상이군인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국군병원 진료수혜자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환자들은 제외되었다. 외상후정신장애는 다리가 부러진 경우보다 진단은 어렵지만, 그 후유증은 더 심각하고 오래간다는 점을 제기하면서, 참전용사들은 국방부의 결정이 옳았는가를 묻는다. 재향군인 상이군인훈장협의회는 훈장수여대상을 정신손상까지 확대하는 것을 반대한다.
‘철로를 이탈한 전차’와 ‘아프가니스탄의 염소치기’ 등의 일화는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멀쩡한 한 명을 죽여서 다섯 명을 살려야 하는가, 죽을 운명인 다섯 명을 죽도록 버려두어야 할 것인가, 순박한 염소치기를 살려둔 것이 과연 옳았는가. 죽였다면 더 많은 희생자를 내진 않았을 것이다.
2005년 6월, 미 해군 특수대원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정찰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그들은 오사마 빈 라덴의 측근 탈레반 지도자를 찾기 위해 험한 산악지대에 은신해 있었다. 그때 무장하지 않은 농부 두 명이 열네 살 가량의 소년과 함께 염소 떼를 몰고 나타났다. 이들을 살려두면 미군의 소재가 발각될 위험이 있었다. 이들을 죽여야 한다는 대원도 있었지만, 논의 끝에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 이들을 살려준다. 그 결과 미군 네 명은 탈레반에게 포위되어 총격전 끝에 3명의 사망자와 한 명의 부상자를 내었으며, 구출을 돕던 헬리콥터 한 대가 파손되고 16명의 사망자를 냈다. 부상을 입고 생존한 대원은 그들을 죽였어야한다고 진술했다.
구명보트 사건이다. 1884년 여름, 영국선원 4명이 남대서양을 표류하다 한 소년을 희생시킨 사례이다. 구명보트에 의지한 채 망망대해에서 생존투쟁을 하다가 19일째 되던 날 4명이 다 죽기보다는, 한 명을 희생시켜 나머지 3명의 목숨을 건지자는 의견을 낸다. 극한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아이의 시신으로 목숨을 연장하고 세명은 살아남았다. 저들의 행위는 과연 옳은 것이었나.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은
첫째, 공리주의 관점, 둘째, 자유지상주의, 셋째,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도덕적 관점 등 크게 세 가지 관점이 있다. 저자는 고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벤담, 밀을 거쳐, 칸트, 존 롤스 등 현대에 이르기까지 저들의 시각과 이론을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정의를 상정(想定)해 본다. 수많은 민족과 종교, 역사와 문화적 갈등 속에서 옳은 방향과 기준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최대 행복 원칙, 공리주의에 대한 반론
공리란 쾌락이나 행복을 가져오고 고통을 막는 것 일체를 가리킨다. 즉, 옳은 행위란 공리를 극대화 하는 모든 행위이다. 그러나 극한상황에서 공리주의에 따르면 인간이 선택해야하는 옳은 행위란 질보다 양을 우선시하는 데에서 반론에 부딪친다. 소수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적인 가치가 도외시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도덕은 목숨의 숫자를 세고, 비용과 이익을 저울질하는 문제만으론 위험하기 때문이다.
벤담이 주창한 공리주의의 한계는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권리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는 것, 도덕적 문제를 쾌락과 고통이라는 단순한 저울로 측정하는 데에서 오류를 범한다. 개개인의 존엄성보다는 숫자에 초점을 맞춘 결과라는 반론이다.
벤담에 이어 한발 더 나아간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사람이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면서 개인을 보호한다거나 다수가 믿는 최선의 삶을 개인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개개인의 권리나 자유에는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있으며 도덕적으로 모순에 빠지는 큰 오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리주의는 현대 민주사회 모든 규범의 토대가 되고 있다. 두 공리주의자를 비교하자면, 밀은 인간다운 철학자였고 벤담은 좀 더 일관된 철학자로 평가된다.(p82)
대리인 고용하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안락사’와 ‘합의하에 이루어진 식인 행위’의 사례이다. 환자가 안락사를 원한다 해서 안락사를 시행한 의사는 실형을 받는다. 오리건 주와 워싱턴 주를 제외하고 현재 미국 사회는 안락사가 불법이다. 스스로 식인재료가 되겠다고 합의하에 응한 사람을 약속대로 식재료로 먹어준다면 합법인가? 전쟁수행 시 대리인을 써서 병역을 때운다든지, 불임부부가 대리모를 통해 자식을 사는 사례를 통해 시장과 도덕문제를 생각해 본다. 자유 시장은 공정한가? 돈으로 살 수 없는 재화는 있는가?
병역할당에는 징병제, 유급 대리인을 허용하는 징병제, 시장체제하의 자원군 제도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징병제다. 만약 우리나라가 자원군 체제라면 힘과 권력이 있는 소수그룹은 군복무에 대리인을 쓸 것이다. 어찌 보면 돈으로 목숨을 사고파는 행위다. 아직은 우리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 국가에 대한 개인의 의무와 권리를 회피하는 이기적인 행위로 형평성에 맞지 않아 여러 가지 부작용이 예상된다.
법정소송 사건이 된 대리모 출산문제다. 자식을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사전에 거액의 돈을 받고 출산을 약속한 대리모가 있었다. 그러나 막상 자식을 낳고 보니 아기와 헤어질 수가 없었다. 산모는 어려운 환경이었으나 거액의 돈을 포기하고 아기를 키우기로 한다. 인간의 사랑이란, 특히 모성애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출산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감정으로 돈을 받고 아기를 줄 수 없었다. 그때 법정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어느 쪽도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정의론을 펼쳐나가는 저자는 이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에 긍정적으로 공감을 표하면서 많은 분량을 칸트의 이론에 할애한다. 칸트는 인간의 의무와 권리에 대해 독보적인 생각을 가진다. 인간이 자신을 소유한다거나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주장에 근거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우리는 존엄성을 지닌 이성적 존재라는 생각에 기초한다.(p148)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에서 도덕의 최고 원칙에 대해서 논한다. 더불어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궁구한다. 앞서 언급한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에서 공리주의 시각이나 재화를 분배해 미덕을 포상하고 장려하는 입장을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을 전제로 정의론을 자유와 연관시키는 시각을 취한다.
칸트의 철학은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도덕과 정치에 관한 사고방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p150) 그는 공리주의를 거부한다. 많은 사람에게 쾌락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옳다고 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다수가 특정 법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정당하다고 할 수 없듯이. 칸트의 주장은 도덕은 사람들이 특정한 시기에 드러내는 흥미, 바람, 욕구, 기호 같은 경험적 요소에 좌우되어서는 안 되며, 이러한 요소들은 가변적이고 우연적이라서 보편인권 같은 도덕원칙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칸트는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데, 이유는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인간은 자율적 존재로서 자유롭게 행동하고 선택할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의 도덕철학은 자유의 개념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우리는 자유를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상태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칸트는 인간이 다른 동물처럼 쾌락이나 고통회피를 추구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자유의 행동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유로운 행동이란 주어진 목적에 따라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를 선택하는 것이다. 도둑질을 예로 들어보자. 무인 가게에서 원하는 것을 훔치고 싶지만, 도둑질한 행위가 발각되면 자신의 명예가 더렵혀질 것이 두려워 도둑질을 하지 않는 것은 자율성, 도덕성, 옳은 행위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만인의 지탄이 두려워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도둑질 그 자체가 옳은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유로운 행동으로서 그가 말하는 양심이며, 도덕이다.
즉,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가 그것이 옳기 때문이지 유용하다거나 편리해서가 아닐 때만이 그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 칸트의 생각에 가깝다.
칸트는 도덕의 최고 원칙을 ‘의무대 끌림, 자율 대 타율, 정언명령 대 가언 명령’이라는 대립된 세 가지 개념으로 설명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의무, 자율, 정언명령이 도덕의 최고 원칙이다. 가언 명령은 “X를 원한다면 Y를 하라”이다. 정언명령은 아무런 조건이 없는 것으로서 어떤 행동이 그 자체로 바람직하다면 실천하는 의지를 가리킨다. 정언명령은 사람의 행동준칙을 보편화하고, 인간을 목적으로 대해야한다고 말한다.
공리주의자들도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보았으나 도구로서의 이성이었다면, 칸트의 이성은 “어떤 경험과 목적에도 상관없이 선험적으로 정해지는 순수 실천 이성”을 뜻하며(p167) “우리가 어디에 살든, 상대를 얼마나 잘 알든 모든 사람의 인권을 옹호해야 한다. 단지 인간이기 때문에 이성적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p173)
이 밖에도 인간의 평등을 옹호한 존 롤스의 이론이나, 소수집단 우대정책 논쟁, 정부의 도덕적 중립의무, 연대와 소속의 의무 등 많은 것들이 논의의 대상이지만 모든 대립과 갈등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현재 진행형이며 정치, 문화, 사회의 발전에 따라 계속 진화하고 변형 발전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의와 공동선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1960년 텍사스 휴스턴에서 했던 존 F 케네디의 연설이다. 그는 정치에서 종교의 중립적 역할을 내용으로 유세를 했고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로부터 46년이 지난 2006년 버락 오바마는 진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두 사람의 연설은 서로 달랐으나 두 사람 다 압도적으로 지지를 받았다. 그 사실은 한 가지 사안에 대해서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다는 방증이다. 후에 오바마는 예전에 전형적인 자유주의자처럼 반응한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 유연한 생각을 밝힌다. 자기의 입장이 바뀌었음을 암시하는 발언이었다. 정의라고 여기는 것들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사례다.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불변하는 것이 있을까.
우리는 다원화 사회에 살고 있다. 따라서 개인의 종교적 견해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 없다. 하지만 ‘자유주의자들이 종교가 빠진 정치담론을 제시한다면 개인의 도덕과 사회의 정의를 이해할 때 핵심을 포기하는 꼴이 된다. 한편 사회문제에서 가치와 문화의 역할을 간과하게 된다. 빈곤층과 인종 차별, 건강보험 미가입자와 실업자 등의 문제를 다루려면 도덕적, 종교적 신념은 정치와 법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 요건이다.(p343)
이러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작금의 우리사회를 생각해본다. 종교는 본연의 역할이 있다.
종교의 역할은 “인간이 삶과 죽음, 고통과 부조리 앞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궁극적 의미를 제시하고, 개인의 내면을 성찰하게 하며,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돌보고 책임지도록 이끄는 데 있다.” 그것은 교리의 확장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며, 두려움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북돋우고, 분열이 아니라 화해와 연대를 지향하는 데 그 본질이 있다.
종교는 인간의 존엄, 정의, 평화 같은 가치를 말하기 때문에 사회의 불의나 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 본래 역할과 어긋난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신앙을 바탕으로 인권운동에 참여했고, 마하트마 간디 역시 종교적 신념에서 비폭력 저항을 실천했다.
그러나 종교가 특정 정당이나 권력을 지지하며 정치권력과 밀착할 때는 갈등과 분열을 낳을 위험이 크다. 신앙은 양심의 문제인데, 그것이 권력 유지나 정치적 이익과 결합하면 본래의 도덕적 권위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사회적 발언으로서만이 가능하다. 권력과 결탁해 배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며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책장을 넘기며 민주사회 시민으로 한껏 성숙해짐을 느낀다. 수많은 가치와 서로 다른 룰이 인간사회를 탄탄하게 다져준다는 생각에 숙연해진다. 조건 없는 사랑을 알게 되어 기쁘다. 희망의 계절, 아름다운 책과 함께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다. 행복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