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2021)
메리올리버는 미국 오하이오(1935) 출신이다. 첫시집『항해는 없다』(1963)를 발표, 이듬해『미국의 원시』로 퓰리처상을 받는다. 『새 시선집』(1992)으로 전미 도서상 수상, <뉴욕 타임스>는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시인’이라고 인정한다.
시인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경이와 기쁨을 시적 언어로 노래한다. 시인은 예술가들의 고장 프로빈스타운에서 숲과 바닷가를 거닐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로 쓰면서 소박한 삶을 살았다. 플로리다주로 거처를 옮긴 그는 여든 세 살로 생을 마감했다. 월트 휘트먼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스무 권이 넘는 시집과 산문집을 낸다.
푸른 목장과 긴 호흡
이 책의 원제는 ‘Blue Pastures: 푸른 목장’이다. 온갖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자, 삶의 터전이다. 시의 근원지를 비유하고 상징한다. 그러나 역자는 ‘푸른 목장’이 아니라, ‘긴 호흡’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푸른 목장’이라는 자연의 외적 이미지보다, 자연 속에 동화되어 천천히, 사색하며, 매일 살아있음을 글로 나타내며 살아가는 시인의 내면적인 정서와 삶의 태도를 나타낸 것이다.
메모와 몰입, 시인의 창작 태도
이 책은 1부 펜과 종이 그리고 공기 한 모금, 2부 푸른 목장, 3부 삶의 동반자들, 4부 시인의 목소리 등 총 4부로 구성된 산문집이다.
앞부분에서는 작가의 시작태도를 나타낸다. 시인은 자연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때마다 메모해 둔다. 창작은 고독한 것, 방해 없는 집중이 필요하다며, 하나의 작품은 확실성에 이르기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창작태도에 있어서 ‘집중과 몰입’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하나의 일화로 소개한다.
아버지가 어린 딸을 데리고 스케이트장에 놀러왔다가 딸을 잊고 혼자 집으로 돌아간다. 아버지는 뭔가에 꽂혀, 그것에 오롯이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나중에야 딸을 기억해내고 데리러 온다.
‘사람이 무언가에 홀리듯 꽂혀서 집중하고 마음을 홀릴 수 있는 일’이 창작의 태도라는 것이다.
또한 ‘홀로 서성이며, 연필을 질겅질겅 씹고, 휘갈겨 쓰고 지우고 다시 쓸 장소’가 필요하다고 한다. 시인에게 그곳은 사계절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고 온갖 생물이 살아 숨 쉬는 ‘경이롭고 아름다운 자연’이었다.
자연을 탐구하고 성찰하다
‘푸른 목장’편에서는 헤링코브 바닷가를 소개한다. 세상의 온갖 쓰레기로 뒤덮인 곳, 바닷새들의 모습, 환경오염으로 나방이 죽어가는 모습 등을 묘사하면서 끔찍한 고통과 공허함을 느낀다.
또한 그곳에 살고 있는 온갖 바다생물을 관찰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찾는다. “나는 물속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나에게 말한다. 어떤 게 나지?”라고.
월트 휘트먼과 오듀본, 파브르, 헨리 베스턴 등 몇몇 작가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들은 시인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깨달음을 준 사람들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자연을 탐험하고, 온갖 곤충과 생물을 사랑하고 그것들을 연구하고 세상에 알렸다는 것이다.
자연과 하나 되어 시를 쓰다
시인은 자연을 벗 삼아 천천히 느리게 사는 삶을 노래한다. 누구보다도 자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다. 독자들은 읽는 내내 ‘자연을 사랑하며, 자연과 하나 되어, 천천히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한번은, ‘나무 한 그루에 달린 나뭇잎은 몇 개일까’를 생각하며,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 온종일 나뭇잎의 숫자를 세며 보낸 적이 있다. 그렇게 자연에 푹 빠져서 자연과 물아일체가 되어 살아간다.
새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받으며 바람 따라 춤을 춘다. 바람의 향기를 맡으며, 구름 따라 생각에 잠긴다. 노을빛을 바라보며 하루를 접는다. 이렇게 자연을 사랑하는 시인은 ‘풀잎 한 줄기의 지배자도 되지 않을 것이며 그 자매가 될 것이다.’라고 고백한다. 즉 자연을 지배하거나 이용하지 않고 친구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살겠다는 것이다.
특히 “삶은 나이아가라거나 아무것도 아니다. Life is either Niagara or it is nothing.”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이 말은 ‘삶이란 격정적이고 계속적인 힘으로 꿈틀거리는 폭포 같은 것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시인의 생각을 말한 것이다. 시인은 독자에게 삶을 ‘지속적인 사랑과 열정’을 품고 살기를 권한다.
순리대로 사는 삶
나는 ‘긴 호흡’을 ‘휴식 또는 쉼’이라고 생각한다. 시인이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간다면 나에게 ‘긴 호흡’의 시간은 무엇일까. 나 역시 한 때는 시골생활에 대한 로망과 향수가 있었다. 그래서 시골에 세컨 하우스를 가지고 있는 지인들을 부러워했다. 그러던 중 내게도 그렇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제주에 작은 거처가 생긴 것이다. 언제라도 가서 쉴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얼씨구나’하며 제주 한 달살이를 계획했다. 좋으면 3개월, 반년이라도 있고 싶었다. 나는 설레며 근사한 계획을 세웠다. 이것저것 짐을 꾸려서 부치고, 잔뜩 기대를 품고 제주로 내려갔다. 마트와 다이소를 오가며, 온갖 생활 집기들을 사서 살림을 꾸렸다. 그리고 생태 수목원, 휴양림, 오름, 카페, 파크골프장 등을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한 20여일이 지나자 더 이상 다니는 것도 귀찮고 집 생각이 났다. 더구나 남편은 직장에 매인 몸이라 집에 혼자 머물러야 했다. 그런 관계로 막상 두 집 살림을 하려니까 쉽지 않은 것도 이유였다.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도 매일 찾아가, 일 없이 시간을 때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20여 일만에 짐을 꾸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니 몸과 마음이 편안했다. 그곳에서 느낄 수 없었던 평안을 느꼈다. 아무리 좋은 일도, 모든 여건이 맞아 떨어져야 쉼이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동안 해오던 생활패턴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내게 필요하고 내 몸과 마음에 맞는 삶을 살아야한다. 그것이 자기답게 사는 것이며, 참다운 휴식과 쉼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전의 일들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가까운 공원에 샤스타 데이지가 청초하게 피어있고, 장미원에는 온갖 장미가 피어 있다. 이른 꽃들은 시들고 지기도 했으나, 늦은 장미들은 아직도 싱그럽고 아름다웠다. 행복을 주는 파랑새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집 베란다 새장에 있다. 고혹적인 장미꽃을 찍은 사진을 친구에게 보낸다. 제주살이를 마치고 돌아왔노라고 안부를 전하며. 친구는 제주 사진인 줄 알았는데, 집근처 공원이냐고 의아하게 묻는다. 나는 이곳도 제주 못지않게 아름답다고만 짧게 안부를 전했다.
나에게 ‘긴 호흡’이란 분수에 맞게, 스스로 자족하며, 여유를 즐기는 삶이다.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길 때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담담한 자세로 사는 거다. 조금 더 삶의 군살을 빼고, 담백한 삶의 여유를 찾아야겠다. 수량으로 환산되지 않는 것들을 챙기며, 순리대로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