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컨 브리프」

(존 그리샴 지음, 정영목 옮김, 시공사, 1994)

by 도도히


한 사람의 진실한 목소리와 언론이 사회를 바꾼다


존 그리샴은 미국 아칸소 주(1955)에서 출생한, 법정스릴러 작가다. 변호사이자 정치인으로 활동한 경험이 그의 작품에 사실성과 생생함을 더해준다. 미시시피 주립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하다 법학으로 전향, 변호사가 되고, 이러한 경력이 법정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 설득력을 입힌다.


『펠리컨 브리프』는 치밀한 구성과 빠른 전개로 독자를 단숨에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야기는 명망 높은 대법원 판사 두 명이 연이어 살해되면서 시작된다. 언뜻 공통점이 없는 두 사람의 죽음은 사건을 미궁에 빠뜨린다. 그러나 법대생 다비쇼가 두 판사가 환경보호에 우호적이었다는 공통점을 알아낸다.


밤새워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사건의 배후를 추적하여, 대기업과 고위권력간 은밀한 결탁이 있음을 감지한다. 그녀는 이러한 정경유착의 실체를 파헤쳐 ‘펠리컨 브리프’라는 비공식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것이 워싱턴 권력층에까지 흘러들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관련 인물들이 연쇄적으로 살해된다.


다비 쇼는 생명의 위협받으며 쫓기게 되고, 신문사 기자출신 그랜섬과 추적을 피해 도피행각을 벌인다. 두 사람은 사건 배후에 숨어있는 검은 세력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끝까지 싸워 나간다. 처음부터 소설은 압도적인 긴장감을 주며, 한 개인의 용기와 언론의 사명을 강조한다.


책을 읽어 나갈수록 머릿속에 현재진행형인 국내외 사건들이 떠올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든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 미국의 관세 정책, 선진국 간 기술패권 경쟁, 에너지와 환경 문제, 인종차별과 소수자 인권 문제 등 숱한 난제들이 스쳐간다.


작금의 나라 현실도 심히 우려스럽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양극화 현상이 그렇다. 보수와 진보의 극단적 대립, 선거철마다 불거지는 지역주의와 색깔론, 가족 간, 세대 간 정치 성향 차이로 인한 갈등현상 등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기분이 씁쓸하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법정스릴러는 예측 불가능한 추리와 긴장감, 흥미진진한 쾌감과 함께 사회문제를 제기한다. 돈의 위력을 아는 자일수록,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더 큰 금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생사를 건다. 이를 알면 인간이 얼마나 파렴치하게 타락할 수 있는지를 느끼게 된다. 개인의 끝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목숨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 눈앞에 걸림돌이 되면 흔적 없이 쓸어버리는 완전범죄의 사악한 칼춤을 자행한다.


거대한 실체가 감춰진 부정, 부패와 악의 정체를 밝히고, 뿌리 깊은 사회의 불의와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어느 특정인의 힘만으론 부족하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시민정신과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올바른 언론의 역할이 무엇보다 더 절실히 요청된다. 이 글에서는 법대생 다비와 기자인 그랜섬이 그 역할을 보여준다. 목숨을 내건 그들의 투지와 용감한 실천력에 박수를 보낸다.


사활을 건 그들의 고투가 있었기에, 두텁게 가려 있던 사건의 실체를 밝힐 수 있었다. 이처럼 이 사회의 부정부패를 근절시키고 정의사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용감한 시민과 책임 있는 언론의 역할이 중차대하다.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시민은 바쁜 일상에 쫓겨 때로 무관심하게 지나친다. 그들은 넘치는 정보와 가짜뉴스에 휘둘리기 쉽다. 그러나 한 나라의 주권자로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혜안을 갖춰야 한다. 금전 몇 푼에 양심을 팔고, 불의한 세력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


진실을 알리는 용기와 사회적 연대

『펠리컨 브리프』는 그렇게 남 일처럼 생각하고 지나쳐온 사회적인 이슈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미스테리한 사회적 난제들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소리를 내고, 진실을 알리는 용기와 참여정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우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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