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지음, 문학동네, 2021/2025)
책을 읽은 후 제목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현재형 ‘않는다’가 마음에 결렸기 때문이다. ‘작별’이라는 심플한 명사도 아니고, ‘작별하지 않았다’는 과거형도, ‘않겠다’는 미래형도 아니다. 현재형인 이유는, 늘 그것을 가슴에 품고 살겠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뜻하지 않은 이별은 그런 것이다. 가족, 연인과의 생이별은 고통이자, 한으로 맺힌다. 예전에 즐겨 듣던 멜라니 사프카의 ‘ The saddest thing’이 떠오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이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이라며 가슴을 쥐어짜듯 울부짖던 허스키한 음성이 귓전을 울린다. (And the saddest thing under the sun above. Is to say goodbye to the ones you love) 굳이 멜라니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별은 가슴이 찢기는 아픔이다.
내게 생애 최초의 슬픈 기억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 집은 갑자기 Y시에서 J시로 이사를 가야했다. 예고에 없던 일로, 부모님은 사전에 어떤 귀 띰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고향을 등지고, 먼 타지로 떠나는 것이었다. 해외로 이민을 가는 심정이었을까. 열세 살 아이에게 세상 전부이던 것과의 작별은 깊은 상처를 남긴다. 마을을 뒤로한 채, 달리는 차안에서 눈에 익은 것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울었다. 정든 것과의 생이별은 참담한 고통이며,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큰 슬픔이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대륙과 해양의 접경지에 위치한 반도 국가이다. 그런 이유로 강대국의 침입과 수많은 역사적 아픔이 있다. 일제강점기 잔혹사와 6.25 동란,제주 4.3 평화운동, 5.18 광주민주화 운동 등 깊은 상처를 치유하기도 전에 잇따라 크고 작은 사건사고에 떠밀려 왔다.
작가는 이러한 우리 민족의 상처와 아픔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특히 무고한 죽음과 희생에 대해서는 오래토록 악몽에 시달린다. 밤낮 웅크리고 앉아 피와 살을 말리는 참담한 슬픔에 잠긴다. 그리고 결국 사실적인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시와 산문이 중첩된 작품 ‘흰’에서는 생후 두 시간도 못 버티고 죽은 언니와 저체중 미달로 태어나자마자 숨진 오빠가 있다. ‘채식주의자’에서는 유년 시절 집에서 키우던 ‘백구’의 죽음을 잊지 못한다. 광주민주화 운동에 대한 『소년이 온다』, 제주 4.3 평화 운동을 이야기한 『작별은 하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그 외 작품에서도 작가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그 모든 폭력과 억울한 원혼에 대하여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따뜻한 사랑 때문이다.
특히 이 작품은 오랫동안 묻혀 있던 역사적 아픔을 헤집는다. 사진작가이자, 다큐영화제작자인, 절친 인선의 어머니가 주요 인물이다. 사건의 직접피해자 가족인 인선의 어머니를 통해서 이야기는 펼쳐진다. 작가인 화자가 일인칭 시점으로 사건의 전말을 서술하는 듯하나, 다각도로 여러 가지 시점이 혼용된다. 화자의 독백으로 중얼거리다가도, 과거 인선과의 대화를 끌어온다거나, 그녀의 어머니의 기억을 통한 진술을 구사하며 종횡무진 다양한 관점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현실과 과거가 오가며 섞이고, 꿈과 실제 상황이 공존하며, 기억과 상상이 혼융되어 펼쳐진다. 그래서인지 술술 통독하다보면 자칫 이야기의 초점을 잃고 무슨 이야기인지 스토리가 꼬이는 난독에 빠진다. 필자도 두어 번 앞장으로 되돌아가 끊긴 흐름을 더듬어야 했다.
화자는 생각한다. ‘묘지가 여기 있었나, 이 나무들이 다 묘비인가’라고. ‘우듬지가 잘린 검은 나무의 단면마다 소금 결정 같은 눈송이들이 내려앉고 그 뒤로 엎드린 봉분들 사이를 걷는데 발밑으로 바닷물이 스며드는 악몽’을 화자는 반복적으로 꾸게 된다.
‘내가 그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낸 지 두 달 가까이 지났을 때였다.’(P11)
‘여러 연령 때의 사람들처럼 조금씩 크기가 다른 수천 그루의 통나무들이 나타나 눈을 맞고 있는 풍경’이 꿈의 요강이다. 그즈음 그녀는 ‘몇 개의 사적인 작별’을 경험한다. 이사를 하고 유서를 작성하며 보내던 시기에, 그녀는 잦은 편두통과 위경련에 시달린다. 그런 중에 인선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기록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 후, 화자는 무슨 이유론가 그 작업을 포기하자고 한다. 그러나 인선은 이미 통나무를 사들이고 목공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검지와 중지 손가락이 잘리는 중상을 입고 서울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인선이 화자에게 전화를 하고 제주로 가달라는 부탁을 한다. 자기가 키우고 있는 앵무새를 구해달라고.
경하가 제주로 떠나면서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주로 인선이 들려 준 이야기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제주 4.3 사건의 핵심 피해자 가족이다. 어머니의 기억 등을 토대로 제주 4.3 사건의 전말을 생생하게 진술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말은 원래 경하와 인선이 계획했던 프로젝트명이다. 인선이 묻는다. ‘작별 인사만 않는 거야 정말 작별하지 않는 거야? 완성되지 않는 거야 작별이? 미루는 거야 작별을? 기한 없이?’ 인선의 말에 경하는 묵묵히 끓고 있는 찻주전자만 바라본다.
억울하게 죽은 무고한 원혼들이 묻힌 땅, 사시사철 성난 파도가 울부짖는 땅, 피비린 사연을 묵언으로 전하는 숲의 밀어를 수십 년 동안 역사는 쉬쉬 외면해 왔다. 그 엄청난 비의를 어떤 식으로든 발설할 수 없었다.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리고, 억울한 영혼들을 위로할 수 있을지 화자는 쉽게 그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몇 번이고 작품을 고쳐 써서,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그 원혼들과 결코 ‘작별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깃든 말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꿔나가는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생각해내기 어려운 선택들을 척척 저지르고는 최선을 다해 그 결과에 책임지는 이들’ (P33)
그가 인선이다. 사진전공인 그녀는 졸업 후,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관심을 갖고 십 년 동안 끈기 있게 그 일을 해오고 있다. 화장은 전혀 하지 않고,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면서도, 자연스럽고 멋진 캐릭터가 바로 인선이다.
인선은 이년에 한번 꼴로 제작한, 세 편의 단편영화를 연결해 ‘삼면화’라는 장편영화를 제작한다. 첫 작품은 베트남 밀림 속 마을에서 만난 한국군 성폭력 생존자들에 대한 이야기, 두 번째 작품은 1940년 만주 독립군으로 활동한 치매 노인들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 그 다음 후속 작이 제주 4.3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어머니의 기억을 토대로 인선이 직접 출연한다. 1948년 제주실상이 담긴 흑백영상물 사이에 인선의 인터뷰 증언들로 이루어진다. 이것을 ‘삼면화’라는 이름으로 제작 중이었다. 역사적으로 제대로 증언되지 않고 은폐되어온 세 가지 얼굴이 ‘삼면화’이다.
“아직 사라지지마. 불이 당겨지면 네 손을 잡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눈을 허물고 기어가 네 얼굴에 쌓인 눈을 닦을 거다. 내 손가락을 이로 갈라 피를 주겠다. 하지만 네 손이 잡히지 않는다면 넌 지금 너의 병상에서 눈을 뜬 거야. 다시 환부에 바늘이 꽂히는 곳에서 피와 전류가 함께 흐르는 곳에서.
숨을 들이 마시고 나는 성냥을 그었다. 불붙지 않았다. 한번 더 내리치자 성냥개비가 꺾였다. 부러진 데를 더듬어 쥐고 다시 긋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P324~325)”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성냥팔이 소녀’의 장면이 떠올랐다. 어린 소녀가 손이 시려워 성냥불을 긋자, 돌아가신 할머니의 영혼이 나타나고, 아름다운 세계가 현실처럼 나타나는 장면이. 불꽃이 솟구치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부러진 성냥개비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결국 경하와 인선은 다시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의 프로젝트는 완성될 것이며, 아흔 아홉 개의 검은 통나무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우리는 무고한 원혼들과 끝내 ‘작별할 수 없는 것’이다.
저자의 집요한 ‘작가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세계를 놀라게 한 노벨상 수상작가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생명존중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죽음에 대한 집요한 천착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런 끈질긴 생각과 노고 끝에 결실을 맺은 사랑과 열정이 감동적이다.
작가는 그렇게 역사 속에 묻혀있는 어둠을 깊이 들여다본다. 그 속에서 삶을 관통하는 폭력과 살상을 끄집어낸다. 그것을 통해서 인간의 존엄성과 존재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는다. 그리고 작품으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런 뜨거운 인간애와 투철한 작가 정신에 새삼 경의를 표한다. 작가가 우리 사회에 불러온 독서열풍과 글쓰기 운동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의 전 작품은 중쇄본으로 출판을 거듭하게 되고, 전 국민을 독자로 이끌었다. 전 세계인에게 한국역사와 한국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불러왔다. 작가의 모든 행보가 자랑스럽고 민족적인 자긍심을 갖게 한다. 대단히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