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안정효옮김,문학사상사,2011)를 읽고
부엔디아 사람이 아니라도 인간은 고독하다.
심연에 갇혀 뒤척이던 밤들, 아스라이 불어가던 바람, 미지의 그림자에 떨던 기억들
끝내 삼켜야 했던 뜨거운 것들을 더듬거리며 책장을 펼친다.
몇 년이 지나 총살을 당하게 된 순간,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 오래 전 어느 오후에 아버지를 따라
얼음을 찾아 나섰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마콘도 마을에는 공룡의 알처럼 거대하며 하얗고 매끈한 돌이 깔린 맑은 물이 흐르는 강가에 스무 채 가량의 블록집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는 1927년 콜롬비아에서 태생이다. 대학에서 법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하다가 자국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학교를 중퇴한다. 그리고 자유파 계열 신문사에 입사하여 기자생활을 한다. 1954년 로마에 특파원으로 파견된 그는 본국의 정치적 부패와 혼란을 비판하는 글을 쓴다. 이로 인해 평생 신변의 위협을 느껴 귀국하지 못하고 파리, 바르셀로나, 뉴욕, 멕시코 등을 떠돌며 살게 된다.
그의 작풍은 중남미의 역사를 토착신화, 민담 등을 버무려 쓴 환상적 리얼리즘이다. 따라서 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평을 듣는다. 1955년 첫 소설 「낙엽」을 출간하고, 퇴역 대령인 외할아버지를 소재로 한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았다」(1961)로 이름을 알리고 「불행한 시간」등 저항적이고 풍자적인 작품을 발표한다. 1967년 「백년의 고독」을 집필, ‘마술적 사실주의의 창시자’라는 헌사와 함께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버킷리스트로 꼽을 만큼 죽기 전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러나 내용의 얼개가 잡히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기까지는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다. 5대에 걸친 인물의 이름이 비슷해서 누가 아버지고 아들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의 첫 장에 끼워진 부엔디아 집안의 가계도를 참조하며 읽으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꿀맛을 본 곰돌이 푸가 꿀통 속에 머리를 박듯이 어느 새 마콘도 주민이 되어 있는 자신을 보며 놀라게 것이다.
이야기는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슬라 이구아란이 사랑을 하면서부터 비롯된다. 둘은 사촌지간으로 아기를 낳으면 이구아나, 도마뱀 또는 돼지꼬리가 달린 기형아를 낳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대대로 살던 고향을 떠나게 된다. 그들이 그렇게 흘러들어온 곳이 바로 ‘마콘도’이다.
근친 간 혼인으로 인한 나쁜 전례는 이미 선대에 있었다. 우르술라의 숙모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삼촌이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 돼지 꼬리를 달고 태어난 것이다. 용수철처럼 꼬인 물렁뼈에 털이 한 줌 나 있는 꼬리를 달고 태어난 아이는 헐렁한 바지만 입고 22년을 살다가 죽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또 근친 간 사랑을 하고 새로운 땅 ‘마콘도’에 와서 ‘부엔디아’ 가계의 100년 역사를 이루게 된다.
이야기는 5대에 걸쳐서 펼쳐지는 부엔디아 가문의 파란만장한 흥망성쇠를 그린다. 많은 스토리가 내장된 고밀도의 압축파일이 현실과 상상을 뒤섞어 펼치는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으로 서술된다. 그러다보니 독자는 내용의 쓰나미 현상에 휘둘리기도 한다. 죽은 친구가 찾아와 말을 건다든지, 아예 오랫동안 거주하다 다시 죽는다는 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도 황당하고 그럴듯하면서도 허무맹랑한 느낌이 든다.
폐쇄적인 씨족마을 특성상 동족간의 사랑이 불가피했을 것이리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또한 문명의 세력이 미치지 않던 시대 어느 오지 마을을 떠올려보면 토착민들의 사람살이가 상상이 된다. 그리고 그들만의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중남미 사람들의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과 물불을 가리지 않고 타오르는 그들의 뜨거운 성정(性情)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해마다 봄이 되면 정처 없이 떠도는 집시 무리가 마콘도를 찾았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피리를 불고 북을 치며 사람들을 부른다. 수많은 인파에 아이들이 길을 잃을까봐 손을 잡고 돌아다니며 구경을 해야 했다. 그들은 온갖 진귀한 물건들을 가지고 들어와 마술을 부리고 곡예를 하였다.
어릴 적 내가 살던 고향마을에도 봄이면 엿장수가 들르곤 했다. 양지 녘에 봄 햇살이 노랗게 쏟아지는 시기였다. 이른 봄 적막을 깨고 마을 아이들을 부르던 가위질 소리와 그 장단에 맞춰 부르던 엿장수의 구성진 노래 가락이 지금도 들려온다.
마콘도에도 봄이면 어김없이 곡마단이 찾아들고, 그들이 가져온 신기한 물건은 마을사람들에겐 별천지 같은 세계를 꿈꾸게 하였다. 아리아를 부르는 울긋불긋 색칠한 앵무새, 탬버린 소리에 맞춰 황금달걀을 100개나 낳는 암탉, 사람들의 생각을 신통하게 맞추는 원숭이, 기분 나쁜 추억을 잊게 하는 물건, 시간을 잊게 하는 찜질약, 마시면 형체가 보이지 않게 되는 물약 등을 팔았다.
정처 없이 떠도는 고달픈 집시들의 행각은 마을 사람들에겐 놀라운 경이로움과 새로움에 눈을 뜨게 되는 신세계였다. 마콘도 사람들은 이들이 가져온 물건들로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과학적 원리를 터득해 나갔다. 점점 무지에서 눈을 뜨며 문명의 세계를 알아갔다. 이렇게 눈을 뜨게 된 마을 사람들은 후에 정부의 간섭을 배척하며 가난한 사람들의 권익을 위해 정부와 투쟁을 하게 된다.
작품 속에선 개성적인 인물들이 끊임없이 부침(浮沈)한다. 작가는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서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의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이런 캐릭터들은 흥미로운 사건 사고를 일으키며 나타났다가 어처구니없이 죽음으로 내몰리며 현실과 허구의 세계를 다채롭게 직조한다. 레매디오스는 그녀의 행복을 질투한 아마란타의 커피를 마시고 죽고, 레베카와 아마란타에 대한 실연과 고뇌로 피에트로 크레스피는 자살을 한다. 그리고 신비한 아름다움으로 많은 남성들의 눈을 호리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는 다 죽게 된다는 미녀 레매디오스는 광선이 이끄는 담요를 타고 하늘로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한편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결투로 죽인 푸르덴치오 아귈라는 귀신들의 세계에서 지내다가 옛 친구를 찾아온다. 죽을 때 목에 뚫린 총탄구멍에 흐르는 피를 닦으려고 집안을 돌며 물을 찾기도 한다. 이를 본 우르슬라는 집안 곳곳에 물항아리를 즐비하게 놓아두는 대목도 일품이다. 또 집시 맬키아데스도 죽었다가 외로워서 다시 마콘도에 나타난다. 그는 불면증으로 기억을 잃어버린 마을사람들을 그가 가져온 물약을 먹여서 구해준다. 그는 마콘도에서 은판사진술을 연구하며 살다가 다시 죽는다. 독자들은 이런 대목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마콘도에 처음 태어난 아이
아우렐리아노 대령은 마콘도에서 처음 태어난 아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남과 다르게 눈을 뜬 채로 태어난다. 탯줄을 자르는 순간에는 방안을 신기한 듯 이리저리 둘러볼 정도로 비범한 통찰력을 지닌다.
새로운 문물의 유입으로 마을이 번성하고 복잡해질 무렵 자유파의 선봉이 되어 보수파와 투쟁한다. 수많은 전쟁에 참가하나 매번 죽을 고비를 맞았다. 가는 곳마다 씨를 뿌려 17명의 아들을 낳기도 한다. 포로로 잡히기도 하지만 추종자들로 하여 목숨을 보전하게 되고 죽으려고 직접 쏜 총을 맞고도 살아나는 인물이다.
온갖 세상 풍파와 고초를 다 겪고 집에 돌아온 그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폐쇄적인 생활을 한다. 하루 종일 그곳에 틀어박혀 황금물고기를 만든다. 그렇게 만든 황금물고기는 일정한 숫자가 되면 다시 녹여지고, 또다시 황금물고기의 재료가 되었다.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그렇게 세월을 소모하면서 모든 일에 무감각한 반응을 보였다. 자기 자신 속에 꼭꼭 숨어 들어가 자물쇠를 채워버린 삶이었다. 마침내 사람들은 그를 죽은 사람 대하듯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임종하던 순간이다. 그는 곡마단이 왔다는 환청을 듣는다. 코끼리 머리위에 앉아 있는 황금빛 옷을 입은 여자를 본다. 슬퍼 보이는 단봉낙타를 보고, 음악에 맞춰서 튀김판을 두드리는 곰을 본다. 행렬의 끝에서 바퀴로 재주를 부리는 어릿광대들을 보고……, 그러한 모든 것이 다 지나간 다음 다시 비참한 고독과 마주 선다. 그는 어린 병아리처럼 머리를 두 어깨 사이에 박고 이마는 밤나무에 기대어 그 자리에 서서 죽는다.
아우렐리아노야말로 인생의 오욕(五慾) 칠정(七情)과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다 겪고 100년 동안의 고독 속에서 죽음의 세계로 간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삶이야말로 모든 맛이 녹아있는 바다와 같은 시간이었다.
그는 열일곱 명의 아들을 낳지만 다 죽는다. 그가 사랑한 아내 레메디오스도 죽고 가는 곳마다 그에게 접근하던 많은 여인들도 허무함을 남기고 사라졌다. 한때 자유파 중심에서 지지자들의 호위 속에 최고의 권력을 누리기도 했으나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된 일이었다. 그렇게 그는 고향에 돌아와 자기 속에 갇혀서 무미하고 고독한 시간을 보내다가 생을 마감한다.
나는 그에게서 영원한 인간의 고독을 본다. 처음 제목을 보며 왜 100년 동안의 ‘고독’일까 차라리 ‘강물’이나 ‘바다’ 같은 것이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으나 아우렐리아노의 말년을 보면서 이해를 하였다.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무의미하고 덧없고 지리한 일상은 천년의 바윗돌 같은 고독의 시간이었다고. 차원이 다른 세계의 무상무념의 한 끝자락을 더듬는 듯했다. 고독이란 생의 그림자와 같아서 숨을 쉬듯 목숨과 공존하는 것이라고. 고독이 사라진다는 것은 인간이 숨을 멈추게 되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실재하지 않은 한낱 설화에 불과한 소설 속의 또 다른 허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의 백년이란 세월이 무상(無常)했다. 내가 꿈을 꾼 것인지 꿈이 나를 꾼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판타스틱 했다. 문장이 밀도 있게 묘사되어 독자를 무난하게 상상의 세계로 안착시킨다.
결말 부분에서 이 마을의 내력이 밝혀진다. 이 마을 이야기는 말키아데스가 양피지에 수십 년 전에 써 놓은 예언인 것이다. ‘누군가 이 원고를 해독하는 순간 마콘도는 인간의 기억에서 잊혀질 것’이며 ‘여기에 적힌 글들은 영원히 사라져서 다시는 되풀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모와의 사이에서 돼지꼬리 아기를 낳게 된 아우렐리아노가 이 예언서를 해독하게 되며 마을은 영원히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100년 동안의 고독에 시달린 종족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없다’고 적힌 예언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부엔디아’ 가문의 100년 동안의 역사는 영원히 블랙홀 속으로 함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