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문학동네 2023)를 읽고

by 도도히

삶은 ‘B(irth)와 D(eath)사이 C(hoice)……’


이 소설은 1부에서 인간의 ‘탄생’, 2부에서는 ‘임종’의 순간을 그리고 있다. 마침표 없이 써내려갔으나, 간결하고 생동적인 문체가 독자들을 쉽게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동일한 어휘의 반복과 구어체의 리드미컬한 운율감이 가속력을 더했다.


요한네스의 탄생과 올라이의 기쁨

첫 장을 펼치면 요한네스가 태어나는 순간이 북유럽 특유의 모노톤으로 펼쳐진다. 노르웨이의 원시적인 바다가 산처럼 출렁이며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하나의 작은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 산모와 산파, 곁에서 지켜보는 아빠가 함께 산통을 느끼며 고전하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아 아 저기 저기 아 아 아 저기 아 그리고 아 우 그렇게 아 에 아 에 아 쏴 쏴 아 윙 윙 아 오래된 강 굽이굽이 이 아 에 아 이 에 아 에 물이 ……"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 무슨 의미인지 알 듯 모를 듯한 감탄사, 아니 신음 소리, 절규가 이어진다. 감탄사처럼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 또 있을까? ‘침묵’의 소리보다 더 깊은 의미의 언어가 있을까? 아내의 산통과 태어날 아기의 생명을 상상하며 내지르는 올라이 내면의 소리일까? 산파와 산모의 외침인가. 시공간을 감싸고 있는 대자연의 소리, 바람과 파도소리를 표현한 것일까. 이처럼 한 생명의 탄생은 최고의 고난도 게임이며, 숭고하고 오묘한 거사이다. 혹여 사산하거나 산모가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전제로 한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아이 최고의 아이 그렇단다 아주 잘 생긴 아이란다

너는 그토록 어여쁜 아이 그래 세상에 내게 아들이 생기다니"


아들 요한네스가 태어났을 때 올라이의 고조된 감정을 묘사한 대목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가 태어나면 젊은 부부는 자기 아이가 세상의 전부로 생각된다. 최고로 멋지고, 최고로 예쁜 소중한 존재로 여겨진다. 이런 부모의 심정을 반복 어구와 감탄문을 활용하여 강조한다.


돌고 도는 인간의 역사

올라이는 아들의 이름을 아버지 이름을 따서 '요한네스'라고 짓는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일곱 명의 아이를 낳고 그 중 한 아이의 이름을 아버지 이름을 따서 '올라이'라 짓는다. 이름이 유전하듯 그들의 삶도 가업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사람이 죽어도 영원히 자손과 함께 살고자하는 염원을 나타낸 것일까. 이 책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짧게 요약해서 전달하고, ‘탄생’과 ‘죽음’의 순간만은 온갖 상상력을 발휘해서 구체적이고 풍부하게 나타낸다. 인생이 그러하듯 세월이 흘러 사랑하는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서로 머리를 잘라주며 우정을 과시하던 친구 페테르도 먼저 죽었다. 요한네스는 혼자 생활하며 지낸다. 다만 가까이 살고 있는 막네 싱네가 매일같이 보살피러 들르곤 한다.


친구와 함께 떠나는 이별의 순간

임종의 순간이 찾아온다. 요한네스는 평소처럼 새벽 일찍 일어나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려 한다. 그러나 그날은 모든 것이 조금씩 이상했다. 사실 그는 죽은 몸이었으나 스스로 죽은 줄을 모른 채 평소 하던 대로 하려고 한다. 죽은 친구 페테르를 돌을 던져 부른다. 그러나 돌이 통과해버리는 이상한 현상을 느끼면서 서서히 자기에게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사람이 죽어 저승으로 가는 순간을 일상처럼 그려내고 있다. 먼저 떠난 친구가 죽음의 길로 안내하는 설정이 그럴 듯했다.


"이제 자내도 죽었다네 요한네스, 페테르가 말한다 오늘 아침 일찍 숨을 거뒀어,

그가 말한다 내가 자네의 제일 친한 친구여서 나를 이리로 보낸 거라네."


우여곡절이 많은 세상살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삶은 위대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사후 세계는 너무 두렵고 알 수 없는 세계다. 작가는 이 어둠의 세계를 절친과 여행이라도 가듯 삶의 연장선으로 나타내고 있다. 절친과 함께 떠나는 저승 길이라면 누구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가는 곳은 어떤 장소가 아니야 그래서 이름도 없지, 위험한가? 위험하지는 않아 우리가 가는 곳에는 말이란 게 없다네, 아픈가? 우리가 가는 곳엔 몸이란 게 없다네, 그러니 아플 것도 없지"


저승에 대한 묘사다. ‘위험하지도 않고, 아픔도 없으며, 사랑하는 것들이 다 있고, 모든 것이 하나이며, 서로 다르나 차이가 없는 세계’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죽음의 세계는 유토피아다. 그랬으면 좋겠다. 이승에서 힘겹고 슬픈 시간들을 견뎌낸 이들에게 저승에서만이라도 위로를 받고 행복하다면 좋겠다. 정말 신이 살아계신다면 그럴 것인가? 물어본다. 확신은 없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언젠가 췌장암으로 고생하던 지인의 말이 떠오른다. ‘삶은 불공평하고 억울할 수도 있으나, 죽음만큼은 공평하니 억울할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고. 맞다. 재벌이나 거지나 조금 먼저, 또는 조금 늦게 가는 것일 뿐 누구나 예외 없는 길이니,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생전 그의 화두가 ‘오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였다. 나에게 있어 정답은 항상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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