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엮음, 주식회사 열린책들, 2017)을 읽고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냉소적이면서도 불길같이 섬뜩한 그의 강렬한 시선이었다."
머리로 살 것인가, 몸을 써서 살 것인가? 삼십대 중반의 일인칭 화자는 머릿속에 온통 먹물을 담고 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그에 비하여 60대 중반인 조르바는 직접 몸을 부딪쳐가며 경험을 통해 세상을 알고 인간을 사랑하며 살아간다.
조르바는 인간이 진정으로 사는 법이란 책과 사유를 통한 이론과 지식이 아니라고 말한다. 조르바는“진정한 삶이란 먹고 마시고, 춤추고, 사랑하는 것이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순간순간 온전히 그것에 몰입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역설한다.
"여행하시오? 그가 물었다. 크레타로 가는 길입니다. 왜 묻습니까? 날 데려가시겠소?"
작가는 세 부류의 인간을 말한다. 그 중 조르바는 자유와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첫 번째 유형이다. 작가의 회상에 소개되는 친구는 두 번째 인간이다. 죽음에 내몰린 민족을 구하고자 실천하는 인간유형으로, 사회 정의를 부르짖고 공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개인의 안위보다 사회와 조국, 인류의 평화를 구현하고자 한다. 화자는 세 번째 유형으로 물질을 정신으로 바꾸고자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물음에 답을 얻기 위해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쓴다. 정신과 물질, 육체와 영혼, 이승과 저승을 초월하고자 붓다를 연구하며 글을 썼다.
화자는 수많은 경험과 깊은 사유 끝에 붓다를 만난다. ‘인간은 공(空)’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최후의 인간은 붓다’라면서 그 깨달음을 미친 듯이 편지로 써서 친구에게 보낸다. 그리고 모든 사업체를 조르바에게 남기고 작별을 고한다. 그날 밤 그는 조르바에게 춤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어둠이 밀려오는 바닷가에서 둘은 파도소리에 맞춰 신들린 듯이 춤을 춘다.
"조르바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청소년기에는 대체로 입시에 내몰려 읽고 싶은 책을 맘대로 읽을 수도 없고,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의문에 진지하게 고민할 수도 없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봇물 터진 듯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하며 새로운 방황과 외로움에 빠진다. 삶과 죽음, 정신과 물질세계, 유신론과 무신론 등 삶과 종교에 대한 철학적 물음들로 카오스의 어둠 속에 매몰되기도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신은 존재하는가에 관한 철학서와 에세이를 읽으며 밤낮을 헤매었다. 소유냐 존재냐, 젊은 청년에게 고함, 삶이 무어냐고 묻거든, 죽음에 이르는 병을 마구잡이로 읽으며 끝없는 사유와 방황의 늪에 갇혀 지냈다. 하지만 하나를 알면 두 개, 세 개, 아니 수많은 의문과 혼돈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조르바를 읽으면서 다시 그때의 생각들이 밀려왔다. 그동안 잘 살아온 것인가, 크게 후회되는 일은 없는지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나름 독서와 여행과 많은 사람들과의 조우 속에서 살아온 듯 하여도 만족스런 삶은 아니었다. 인생이란 모름지기 제각각 타고난 손금과 지문처럼 서로 다른 길을 밖걸을 수밖에 없다. 일란성 쌍생아도 똑같은 삶을 살아가지 않듯이.
조르바의 삶을 생각하면서 나는 ‘중용’의 덕목에 곶히게 되었다. 주어지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순리대로 살아가는 방법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할 삶의 길이라고. 조르바처럼 육체적 쾌락도 중요하고 행복을 찾아 자유롭게 떠도는 삶도 중요하다. 그러나 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주변을 품고 아우르면서도 나를 소중히 돌보는 삶이 필요하다.
조르바는 현실적이며 우직하고 세속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행동파이다. 세계 곳곳을 떠돌면서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러나 가정을 돌보지는 못했다. 산투르(기타와 비슷한 악기)를 애인 다루듯 소중하게 품고 다니며 연주하며 즐긴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여행지에서 언어대신 온 몸을 써서 춤을 추고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록 책을 통해 많이 배우지 못했어도 세계 각지를 떠돌며 몸으로 체득한 경험은 작중화자에게 많은 일깨움을 주고 그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었다. 자신의 욕구를 자유롭게 즐기면서도 상대를 배려할 줄 알고 정의감이 넘치는 성격은 독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하느님도 믿지만 악마도 믿는다는 조르바는 모든 인간을 포용하는 박애정신의 소유자다. 그는 나이를 먹는 것이 안타깝다고 한다.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하며 살지만 아직도 하고싶은 일이 너무 많아 죽기 싫다고 항변한다.
MBTI 성격 유형으로 볼 때 조르바는 ESTP유형같다. 외향적인 성격으로 즉흥적이고 활동적이며 낯선 사람과도 쉽사리 말을 튼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도자기를 만들다가 왼손 검지가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도끼로 내려쳐서 잘라버린다. 이렇게 불같은 야성미가 펄펄 끓는 열정적인 인간이다.
그러나 여성을 남자의 성적 노리개로 여기는 부분은 눈살이 찌푸려진다. 남성중심 사회의 그릇된 편견이다. 19세기 동유럽의 문화와 풍습이었다고 생각하니 수긍할 순 있었다. 그러한 삶의 방식이 조르바의 쾌락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대변한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을 불쌍히 여기고 온정을 베푼다. 이러한 순수하고 따뜻한 인간미와 저돌적인 야성미에 독자들은 푹 빠지게 된다.
끝으로 책장을 덮으니 ‘자유, 행복, 산투르, 춤’이라는 말과 ‘정신과 물질, 영혼과 육체,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등이 머릿속에 남았다. 자유롭게 떠돌면서 자연의 풍광에 젖고 매일 낯선 풍광 속에서 산투르를 타고 춤을 추는 인간, 만나는 모든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며 무엇에도 거칠 것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 인생이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산전수전 변화무쌍한 고해이다. 시시각각 밀려오는 파도 앞에서 때론 혼자, 때론 함께, 울고 웃으며 영원한 고향을 찾아가는 고달픈 항해이다. 책장을 덮으면서 진정 행복이란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