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을 떠오르게 하는 인상 깊었던 영화가 있다. 『굿 윌 헌팅』이다. 심리학자로 분한 로빈은 상처 많은 윌(맷 데이먼)을 끌어안으며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라고 말해준다. 그 장면은 언제 보아도 가슴이 뭉클하다.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에도 두 주인공은 서로를 끌어안고 포옹을 한다. 포옹은 기억이나 이성보다 더 강한 본능적인 감정이다. 유럽인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과 가벼운 포옹과 볼 키스를 한다. 짧은 인사 속에서도 사랑과 우정, 신뢰와 위로를 전한다. 포옹은 그 자체로 따뜻한 표현이다.
요즘 푹 빠지게 된 다큐영화 『니 얼굴』이 있다. 다운증후군 발달장애를 가진 정은혜 작가의 일상을 담은 작품이다. 몇 번씩 보아도 가슴 찡한 장면이 있다. 은혜 작가는 드라마 『우블』에서 배우 한지민의 쌍둥이 역으로 출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나는 간간이 그녀의 영상을 보며 위로와 기쁨을 얻는다. 할 말을 잘 하진 못해도 꾸밈없는 모습과 솔직한 삶의 모습이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그녀의 개인전 주제가 ‘포옹’이다. 생각을 말로 온전히 전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들에게 포옹은 더욱 뜻깊다. 그 무엇보다 깊은 위로를 주고, 사랑과 지지의 표현이 된다.
얼마 전 일이다. 나는 그다지 애교가 없는 편이나 남편은 더욱 무뚝뚝한 성격이다. 부부의 대화는 “늦었네, 밥 먹었어?” 정도가 전부다. 그런데 어느 날, 출근길 구두를 신던 남편이 불쑥 나를 불러 세운다. “이리 와 봐.”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갔더니 갑자기 끌어당겨 포옹을 한다. 젊어서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스킨십이라니. 그것도 이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갑작스런 주책이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싫진 않았다. ‘이건 뭐지?’ 하면서도 가슴이 찡했다.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래, 우리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는가. 살아온 날보다 남은 날이 더 짧은데, 이제라도 마음껏 정을 나누어야지.’ 늦게나마 다행이라 여겨졌다.
한때 ‘프리허그’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2000년 초반, 호주의 한 청년이 “Free Hugs”라는 팻말을 들고 낯선 사람을 안아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오면서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 대학가나 거리, 축제 등에서 ‘프리 허그 행사’가 행해졌었다.
마음의 벽을 허무는 운동으로 퍼져나갔다. “작은 포옹 하나로 세상을 따뜻하게”라는 구호가 자주 쓰였다. 각박해진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인간적인 온기를 회복하자는 취지였다.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는 가족 간, 이웃 간에 거리를 두고 격리된 삶을 살아야했다. 감염우려라는 이유로 제대로 얼굴표정을 알 수 없이, 마스크를 쓴 채 웃음을 잃어버린 삶을 살아야했다. 가족 간, 이웃 간에 서로 거리를 두는 게 정상적인 삶이 되었다.
일설에 포옹을 하면 ‘옥시토신(사랑의 호르몬)’이 분비되어 감기나 질병에 덜 걸리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심리적 안정이 몸의 자율신경계를 조절해 면역 기능을 높이다고 한다. 포옹은 누군가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확신과 위로를 준다. 말로 풀기 어려운 갈등 상황에서 포옹 한번으로 감정의 벽을 허물 수 있다. 진심이 담긴 포옹은 미안함과 용서의 신호가 된다.
요즘은 혼밥, 혼술, 혼다, 혼숙이 익숙해졌다. 유모차보다 개모차를 끄는 사람이 늘고 있다. 나아가 AI 인형과 얘기하며 혼자 사는 가족이 자연스러워졌다. 인간의 온기가 사라지고, 기계와 반려 동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사람살이가 갈수록 더 뾰족해지고, 건조해지고, 각박해졌다. 포옹까지 바라지 않더라도, 어깨라도 부비고 눈빛이라도 마주치며 살았으면 좋겠다. 가족, 친지, 이웃간에 인간미를 나누며 웃고, 떠들며 온기를 나누는 일이 어려운 풍경이 되었다. 늘어가는 독거가정이 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