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평범한 미래 」

(김연수, 문학동네, 2022)를 읽고

by 도도히

" 아무리 긴 밤도 끝이 있으며, 새벽은 온다."


한때 감염병 전염으로 외출이 통제되고, 사람과의 만남이 자유롭지 못할 때, 우린 이전의 평범했던 일상을 그리워했다.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새삼 느꼈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야말로 행운이 따라야만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 」는 여덟 편의 단편으로 꾸며진 옴니버스 소설이다. 인간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픔과 고통의 시간들을 겪는다. 그리고 각자의 방법으로 그 어둠을 뚫고, '그토록 평범한 미래'를 맞이한다.


첫 작품은 1999년의 종말론으로부터 2023년 현재의 시간들을 근거로 이야기를 펼친다. 그 때 죽으려고 했던 남녀가 결혼을 하고 맥주를 마시며 암울했던 그날들을 회상한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모든 게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1999년의 일을 생각한다.’(p9)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작가는 '꺼져가는 재속에서 작은 불씨를 피워' 다음 세대의 빛으로 추앙되는 인물, 그런 캐릭터를 창조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피력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이야기들은 작은 위안을 주고, 불확실한 것들에 대해서 낙관하게 한다.


“내 기억에도 특히 1999년에는 곧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지구의 종말을 예고한 철학자뿐만이 아니라 사이비 종교들도 속속 나타났었다. 천 자리 숫자가 1에서 2로 바뀌는 과정에 모든 전자기기에 대 혼란이 일어나며, 특히 금융권의 모든 컴퓨터에 대 혼란이 생겨서 금방이라도 지구가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고 우리는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살고 있다. ”


작품 속 화자와 지민이도 죽지 않고 살아서 지난 일들을 반추한다. 작품 속에는 지민의 엄마가 쓴 ‘재와 먼지’라는 액자소설이 나온다. 배경은 1970년대 유신독재시대. 공교롭게 작품 속 인물들의 사랑이 끝나는 날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날(1972.10)과 일치한다. 그 이유만으로 유신독재 체제하 군부에서는 자기들의 비위에 거슬린다하여 판매금지령을 내린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자살을 한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라고"(p35) 작가는 아무리 긴 밤도 끝이 있으며, 새벽은 온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난주의 바다 앞에서’는 악성종양으로 아들을 잃고 남편과 이혼한 은정의 이야기다. 아들을 잃고 고통 속에 있던 은정은 개명을 하고 추자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녀는 정난주의 이야기를 소재로 ‘새 바람은 그대 쪽으로’라는 추리소설을 쓰며 살아간다. 천주교 박해 때, 정난주는 두 살 된 아들과 함께 제주도 관노로 끌려가게 된다. 그때 아들을 노예로부터 탈출 시키려고 추자도에 놓고 내린다. 정난주는 가슴이 에이는 고통을 느끼며, 평생동안 추자도를 바라보면 살다가 죽는다. 정난주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은정이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을 얻었을 것이다. 자식을 잃은 어미의 심정은 똑같을 것이다.


운동을 하다보면, 너무나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때 바닥에 드러눕게 된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고통이 줄고 운동을 계속하고 싶은 시간이 온다. 그것을 ‘세컨드 윈드’라고 하는데 제 2의 정상상태라는 뜻이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대체로 그 시간을 경험한다. ‘세컨드 윈드’ 타임이다.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몽골 사막을 찾아가 삶과 죽음을 성찰하며 깨닫는 이야기다. 바얀자그는 몽골 남부 지방에 위치한 사막이다. 한때 고비지역에서 가장 큰 숲이었으나, 지금은 황량한 자갈사막으로, 모래와 황토 이동으로 사막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곳이다.


여행프로그램 진행자였던 화자는 죽은 아내(정미)의 말을 떠올리며 바얀자그로 떠난다. 그녀가 ‘사막의 모래폭풍’에 대해서 말했던 것을 떠올리며.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방랑>에 나오는 ‘모래폭풍’에 대한 이야기였다. 인도에서는 모래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카타큐 호갸(다 끝났어)’라는 말을 한다. 화자 역시 사막에 가면 이 말을 꼭 해보고 싶었다.


어떤 탐험가는 성처럼 생긴 바얀자그를 '불타는 절벽'이라 불렀다. 처음 사막에서 그가 본 것은 ‘바람’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사물이 흔들릴 때 바람을 느끼듯이, 광활한 모래사막 위로 떠가는 구름을 보며 그는 바람을 본다. 그 바람 속에서 죽은 아내를 느끼고 생각한다.


“일억 년 동안 수많은 생명이 그 모래 폭풍에 파묻혔으며 인류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의 시간이 다져져서 쌓인 곳이다.”(p117)


붉은 천이 나부끼듯 노을빛이 넘실거리던 일몰 속에서 그는 미래의 바람을 본다. 중층의 시간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부서진 돌처럼 흩어져 내린 시간의 눈으로 사물들을 바라보며 삶과 죽음의 의미를 알게 된다.


살다보면 막막한 순간들을 맞는다. 절대로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일로 앞이 캄캄한 채,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암담할 때, 우린 할 수 없이 낙관주의자가 된다. 아무리 거센 모래 폭풍일지라도 지나간다는 것을 믿는 인도 사람처럼 화자는 정미를 추억하며 자신의 믿음을 술회한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고, 그리고 그 말은 현실이 된다.


어떤 절망 속에서도, 평범한 미래가 온다

이 밖에도 작중 인물들은 현실 속에서 크고 작은 사건 속에 매몰된 사람들이다.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말을 잃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치매 아버지를 6년 동안이나 간병하다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에 결국 집에 불을 지르고 마는는 인물, 연인과 헤어지고 슬픔을 달래가며 노래를 부르는 인디 가수, 억울하게 죽은 누이 동생을 잊지 못해, 정신병증을 앓으면서도 그 이름을 부르는 치매 할아버지, 세월 호에 떠내려간 꽃들을 가슴에 묻고 생가슴을 앓는 많은 사람들이 출현한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어두운 시간이 빛으로 가득 찬 몸을 만든다.’ 는 메리 올리버의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작가는 고통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을 찾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고 진술한다.


누구라도 죽을 것 같은 순간을 어떡하든 견디노라면 그 모든 어려움은 지나가게 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지구의 종말이 올 것 같던 세기말도 엄청난 긴장과 불안 속에 무사히 지나가고, 죽을 것처럼 절망적이거나, 고통 속에서도 새날은 밝는다


이 책의 제목처럼 ‘평범한 미래’가 온다. 지금 우리가 그 미래를 살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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