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파트릭 모디아노, 문학동네, 2010)

by 도도히

‘ 잃어버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패트릭 모디아노 (Patrick Modiano, 1945∼) 프랑스 소설가. 1978년 공쿠르상, 201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그는 기억, 정체성, 상실, 과거의 그림자를 주요 주제로 삼는다. 노벨문학상 수상 당시 심사위원단은 그를 “기억의 예술가”라고 평가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화자가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여정을 담은 소설이다. 작품배경은 ‘세계 대전의 참화 속에서 태어나 자란’ 작가의 환경이 크게 반영되었다. 전후 불안정한 거처와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떠돌며 살아야했던 현대인의 비극을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인간의 삶’으로 빗대어 나타냈다.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 총 마흔 일곱 편의 크고 작은 글로 구성되었다. ‘흥신소’를 공간적인 배경으로 사용한 것은 과거의 기억을 찾는데 좋은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시점에 일관성이 없어서 단순한 문맥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어떤 부분은 화자의 독백처럼 서술되다가 불쑥 편지글로 대체되기도 하고(p183), 과거를 추적하는데 필요한 관련된 서류가 한 줄 메모로 쓰인 글(p144)로 전개되는 등 서술의 변화가 다채롭다.

작중 화자 ‘나’는 스테른, 지미 페드로이며, 1912년 살로니크(그리스, p187)에서 출생한다. 1939년 프랑스 국적의 드니즈와 결혼, 파리 주재 도미니카 영사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직업은 양재사, 주소는 로마(이탈리아) 부티크 옵스퀴르(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이며, 1940년에 행방불명된 것(p188)으로 추정된다.

그녀의 아내 쿠드뢰즈 드니즈 이베트는 1917년 파리 출생, ‘뮈트’라는 예명으로 의상모델을 하고, 1941년 네덜란드인 반 알렌과 양재점을 동업했다. 1943년 프랑스-스위스 국경을 월경하려다 행방불명 된다.(p186)

그 후의 행적을 보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화자는 흥신소(1947년 개업)에서 일하는 ‘니트’을 찾아가 자신의 과거 증인이나 흔적들을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니트와 알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기 롤랑’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게 된다. 니트는 잃어버린 과거는 잊고 현재와 미래만을 생각하라며 함께 일하자고 권한다. 그의 조언으로 니트와 8년 동안 흥신소 일을 한 것으로 보아 그의 나이는 대략 사십대 전 후반이라고 추정된다. 본래의 자기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화자가 의뢰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찾아주는 일을 한다는 구성부터가 재미있다.

또한 흥신소라는 소재는 연대별, 사회적, 역사적 사건과 인간의 정보 및 그 밖의 귀중한 자료들이 비치되어 있다. 화자가 기억을 되찾는 데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필요한 많은 단서를 제공해 주는 매개체가 된다.


기억을 잃음과 동시에 사라진 아내 드니즈의 행적을 쫓는다. 그녀가 모델 활동을 하던 때, 그녀의 사진작가였던 망수르, 장미셀이란 인물을 찾아간다. 그에 의하면 마지막으로 그가 본 드니즈는 ‘캉봉가의 지하식당에서 독일인과 함께 있는 모습’(p154)으로 밝혀진다. 그녀의 위층에 살던 알렉 스쿠피라는 장황하게 자신의 친구 얘기로 화제를 돌린다.


그 친구는 여러 편의 시와 두 편의 소설을 썼다는 얘기, 그의 몽마르드 생활이 길게 서술된다. 그의 길고 어수선한 이야기는 묘하게 매력이 있다. 친구를 죽인 살인자 곧 ‘푸른 기사’가 꼭 자신일 것 같은 냄새를 풍기면서 인간의 실존 문제를 의미심장하게 소개한다.


자기를 ‘푸른 기사’라고 소개하는 목소리와 분간할 수 없는 많은 소음 속에서 ‘파트너를 찾는다는 말’, ‘누구는 오늘 저녁 혼자라는 말’, ‘푸른 기사는 오늘 저녁에 시간이 있다’, ‘전화번호를 주세요라는 말’의 반복되는 혼선음은 당시 부박한 떠돌이 삶을 연상시킨다. 혼자 사는 인간의 지독한 외로움과 대화 상대를 기다리는 고독한 군상을 의미한다. 살해 당한 친구가 부럽다는 그에게 ‘떠돌이 삶이 얼마나 고통이며, 절망인지’ 를 깨닫게 한다.


그간 추적해온 정보를 통해서 ‘나’를 조합해보면, 내게는 중학교 동문인 프레디와 그의 연인 게이가 있다. 아내는 게이가 소개해 주었으며, 아내와 살았던 우정, 사랑, 삶의 궤적이 내가 잃어버린 기억의 핵심내용이다.

첫 문장에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p9)라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는데 소설을 다 읽고, 그 동안의 그의 행적을 요약하려니 저절로 그 문구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누구나 인간은 한정된 시간 속에서 일회적인 생을 살다간다. 청년의 한 때는 미지의 시간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으로 고민하고 방황하며 보낸다.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새로운 시간을 구축하기도 한다. 자녀를 낳아 기르며 철이 들어간다.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자신을 잊고 살다보면, 문득 인간은 기억 상실자처럼 수많은 낮과 밤을 잃어버린 허망함에 빠져들 수 있다.


그리고 그 막막함과 헛헛함을 채워줄 ‘무엇’을 찾게 되고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결국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귀결되며, 한없이 작아진 현실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그것이 나만의 인생이 아니라, 모래알처럼 많은 이 세상 모든 존재의 실체라고 생각하니,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 무한한 연민과 경외심이 생긴다.

제 이름조차 잃어버린 한 인간의 시간여행은 바로 나 자신의 과거를 되짚어보게 하는 여행이었다. 기쁘고 행복했던 순간과 함께, 고통과 절망의 시간들도, 지나고 보면 다 그리움의 꽃다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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