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도 슬픔도 시간이 지나가면 희석되고 그리움이 된다. 재물, 승진, 사랑조차도 순리대로 흐른다. 몸도 나이에 따라 성장하고 숙성되어간다. 이렇듯 살아있는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대로 흐른다. 매사에 노력은 하되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
‘순리대로 산다’는 것은 ‘내 뜻대로 산다는 것’이 아니고 ‘자연의 순환처럼 물 흐르듯이 산다’는 것이다. 탐욕을 버리고 분수에 맞게, 넘치면 넘치는 대로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맞추면서 최선을 다하면서 산다는 것 얼마나 근사한가.
경기도 A시에서 근무하다 K시로 발령이 났다. 그러자 선배가 ‘참 좋은 곳으로 간다며 거기 가거들랑 오지점수가 있는 곳으로 가서 승진을 준비하라’고 하였다. 나도 막연하게는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 나는 삼십 대 중반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다. 남편은 인천 계산동에서 연수구 남동공단으로 출퇴근을 했다. 집에서 나와 남편의 직장이 어느 쪽도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근무지가 가까운 것이 가장 좋은 직장이다. 혹시 아이들이 아플 때는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을 돌보면서 퇴근 후에 병원이라도 쉽게 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K시에서 임기가 끝나고 오지점수가 있는 곳으로 발령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 때 우리 형편은 7살 2살의 아이들이 있어서 부모의 손길이 많이 필요할 때였다. 한 시라도 아이들을 손안에서 떼 놓을 수 없을 때 집에서 먼 거리로 발령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불상사도 각오해야만 할 때였다.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어떤 한 선배님의 말이 귀에 확 꽂혔다. 모든 일은' 순리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모두에게 적합한 길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했다. 그것은 아이들 가까이 와서 가족을 챙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가산점이 있는 오지로 가는 대신 남편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발령을 받아 연수구에 살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 앞에 어떤 난관이 닥쳐도 ‘순리대로 살리라’고 마음먹었다. ‘순리대로’ 뜻도 좋지만 발음도 좋고 느낌이 좋다. 가는 사람 막지 말고 오는 사람 맞아주고 바람 부는 대로 꺾이지 말고,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사는. 그래 무엇에 목숨 걸지 말고 욕심을 내려놓고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며 순리대로 살자. 그 후로 내 마음 속에는 어려운 순간이면 ‘순리대로’라는 구절이 기준이 되고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되었다.
가끔 그때 만약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오지인 그곳으로 이사를 갔다면 내가 승진도 하고 지금과는 다른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곳은 집에서 너무 멀었다. 그러다보면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남편의 회사도 너무 멀어서 두 집 살림을 해야 할 정도였다. 그것도 아이들이 어리다보니 병원 갈 일도 자주 있을 터라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여러모로 무리였다. 그래서 승진을 잠시 보류하고 남편 회사 가까이로 발령을 받아 왔던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게 운명이다. 인천으로 온 후로 IMF 사태가 터졌다. 한창 신흥 중소기업으로 무역이 늘어나던 회사가 하루 아침에 직격탄을 맞았다. 모두가 퇴직금을 받고 이직할 때 남편은 회사에 남았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는 게 남편의 자세였다. 그 순간엔 남편이 옳다고 생각했으나, 회사 간부였던 남편은 하루 아침에 회사의 부채를 떠안고 가정경제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내가 이쪽으로 오기 전에, 남편 회사가 조금만 더 빨리 망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나만이라도 승진을 하고 내 중심으로 가정을 꾸려나갔으련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길이 더 나았을지는 비교할 수가 없다. 가지 않은 길에 또 다른 복병이 숨어있을 수 있으므로.
회사가 망하기 전까지는 두 사람의 직장이 가까운 관계로 가정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남편이 회사 갈 때마다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 일도 맡았으며, 가사를 많이 도울 수 있었다. 온 가족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잘 나가던 회사가 하루 아침에 망할 줄 누가 알았으리요.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이다. 지금도 나의 생활 방침은 그렇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사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