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말로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올 때는 빈손으로 왔을지 모르나, 갈 때는 빈손이 아니다. 어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다가, 아름다운 추억들을 품고 떠나니 빈손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기적이고 선물이다.
어떤 부모에게나 자식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물이다. 처음 새 생명이 태어나 하루하루 커나가는 모습은 엄청난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싹이 트고 꽃이 피는 계절처럼 신비롭고 황홀한 순간의 연속이다. 아기천사들이 자라나는 모습이야말로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부모는 그들을 통해 생의 신비로움을 알게 되고, 아이들과 함께 철이 든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들을 생각하면, 살아갈 힘과 용기가 생긴다. 어떤 일도 두렵지 않고 못할 일이 없다. 부모를 또 다른 신이라고 하는 이유다.
남편은 가장으로서 성실하고 가정적인 편이다. 때로 소심하나, 다정다감하다. 그러나 가족의 생일이나 특별한 날에 선물이나 이벤트를 할 줄 모른다. 자라온 환경의 영향이기도 하다. 7남매나 되는 형제들과 넉넉지 않은 형편에 살다보니, 선물을 주거나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이해는 한다. 60~70년대는 어느 집이나 아이들은 많고, 형편은 어려웠다. 다들 비슷비슷했다. 그래서 딱히 선물이나 어떤 이벤트를 기대하지 않지만 가끔 섭섭할 때가 있다.
시간이 흐르고 그런 것에 면역이 생기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세상사람 모두가 환경이나 처지가 같을 수 없으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고 감사하자고. 마음 근육이 단단해진 거다. 대신 어떤 힘든 일을 해 냈을 때, 또는 축하나 위로받을 일이 생기면 스스로 알아서 자기에게 선물을 하기로 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 시간을 내고, 보상차원에서 나만을 위한 쇼핑을 한다. 그리고 제법 고가의 것일지라도, 오래 참았던 물건을 내지르기도 한다.
선물이나 이벤트에 약한 남편이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그가 해준 것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서 18K 체인에 진주알이 달린 목걸이나, 잘 애용하진 않지만 생일 선물이라며 사준 사파이어 반지가 있다. 스스로 액세서리에 까탈스런 성격이라, 맘에 차지 않아도 충분히 고맙게 생각하고 감사한다. 누구나 남이 사 준 것이 취향에 맞을 수는 없다.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서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생일이나 그 밖의 축일이면 물건보다 차라리 현금으로 받기를 원한다.
남편이 주는 선물과는 다르게 아들, 딸이 사준 것들은 느낌이 다르다. 무조건 기분이 좋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아무리 작고 변변찮아도 특별하게 여겨진다.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애지중지하며 특별한 날에 착용한다. 딸이 해외직구로 사준 핸드백이나, 스카프 등 내 취향이 아니지만 나의 애장품 중 앞 순위다.
특히 아들이 알바를 해서, 그 첫 월급으로 사준 손목시계는 더없이 큰 선물이다. 하필 아들은 대학졸업과 취업시즌이 코로나19와 겹쳐서, 쉽게 취직을 못하고 지냈다. 그 시계 선물에는 오랜 기간 맘고생을 했을 어두운 기억들이 있다. 눈부시게 푸른 시절, 한껏 움츠리고 위축되어 있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우울하고 아픈 기억이다. 어떤 선물이나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이 적당할까 고민하며 상대에 대한 깊은 배려와 정성을 담는다. 그러기에 선물은 특별히 소중하고 값지다.
누구나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좋고 행복해진다. 아름답게 빛나는 크리스마스 추리를 보는 것처럼 흥분된다. 순수하고 환한 웃음과 기쁨이 있다. 더구나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으면, 첫눈처럼 설레고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
선물은 받는 기쁨도 크지만 주는 것은 더 큰 행복을 느끼게 한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었을 때 더욱 그렇다. 특별한 기쁨이 있고, 행복은 배가 된다.
‘소중한 것은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그리고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는 어느 시인의 싯구가 생각난다. 그렇다. 진정 사랑이란, 소중한 것은 무엇이나 주고 싶고, 벌써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 다준 사랑만을 기억하는 것이다.
선물은 값을 매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함께 버텨낸 시간과 소중한 추억이 담긴 특별한 마스코트다. 사는 동안 기쁨과 위로가 되고, 삶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즉, 선물은 우리의 생을 지탱해 주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오늘 하루도 선물이다. 감사와 기쁨으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