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격에 길들여지지 말라.
‘안녕하세요? 축하합니다.’만 배운 앵무새는 초상이 나도 ‘안녕하세요? 축하합니다.’만 반복한다. 앵무새처럼 배운 것만 반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규격에 길들여지지 않는 사람, 늘 깨어서 생각하고 새롭게 나아가는 사람,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라'는 그분의 말씀이 지금도 귓전에 생생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시간으로 가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첫번째 사람이다.
대학 초년생이던 제자들에게 ‘내가 차를 살 테니 시간 좀 낼 수 있느냐’고 먼저 손을 내밀었던 선생님은, 대여섯 시간 동안 찻집에서‘삶과 사랑, 문학, 종교, 철학’ 등 동서고금 석학들의 사상과 철학에 대해 종횡무진 대화를 나누며 젊은이를 사랑하고 아껴주셨다. 정체성의 혼란으로 갈등하고 방황하던 젊은 날, 정신적 멘토가 되었던 선생님이다.
어찌어찌 동문을 통해서 전해들은 바로는 현재 선생님은 와병중이시며, 지금은 구순이 넘은 연세로 그 누구의 문병도 사절이라 하신다. 그분다운 꼿꼿한 성정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왜 사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실존과 본질, 유신론과 무신론 등 삶에 대한 많은 의혹으로 정신적 방황이 심하던 이십 대 초반, 학생들에게 깊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준 진정한 스승님이셨다. 올곧은 성품과 문학적 지성으로 학생들에게 늘 인기가 많았다.
그분의 강의는 늘 긴장과 흥분 속에 학생들의 시선을 끌었으며, 반전의 매력이 있었다. 어떤 작품도 그분의 해석을 거치면 새롭게 재탄생되었다. 작중 인물들을 인간적인 눈으로 이해하고 분석하여 깊은 감동이 따랐다. 그래서 강의시간이 인기를 끌었고, 기대감으로 들뜨게 하였다.
그분은 곧게 뻗은 사이프러스 나무를 연상시킨다. 또는 시골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무성한 정자나무 같았다. 반듯한 성정에 그늘이 깊고 그만큼 품이 넉넉하고 진실하셨기 때문이다.
70, 80년대 학생 운동이 빈번해지고 시위가 과격해지던 시절, 몇몇 교수들은 학생들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연행되기도 했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풀려났지만, 선생님은 어려운 시대에 ‘나만 편하게 있을 수 없다’며, ‘학생을 선동했냐’는 심문에 ‘그렇다’고 스스로 시인하고 경찰서에 구금, 해직되었다.
당시 민주화 운동의 주동자로 몰려 경찰서로 연행된 많은 학생들을 안타까워하시며, 선생님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후에 복직되었지만 그 당시 해직되고,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강의를 들을 수 없었던 학생들은 그때의 큰 피해자였다. 결국, 많은 학생들이 그분의 강의를 듣지 못한 채 졸업해야 했다. 하지만 그분을 아는 사람들은 선생님을 통해 겨울을 나는 법을 배웠다.
어떤 작품이나 교수님의 해석을 거치면, 가슴이 훈훈해지고, 새롭게 다가왔다. ‘천치냐, 천재냐’라는 작품이었던가, 그 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대해 강의하시면서, “그 아이는 자기 자식보다 더 안쓰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라고 하시던 모습이 바보처럼 순수하고 인간적으로 느껴졌었다.
우리는 매일 소설 속의 인물처럼, 어떤 갈등을 겪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문학은 개성적인 인간들이 이러한 삶의 잡다한 이야기들을 구수한 정감을 통해 헤쳐 나가는 이야기들을 다룬다.
불행한 현실을 웃음으로 극복하고, 삶과 사랑을 알기 위해선 문학이 적격이라고 생각한다. 나이 들수록 독서와 문학을 가까이 하면서 위로를 받고, 자긍심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 생각이 나고, 고맙게 생각한다.
"일정한 틀에 갇힌 인간, 규격에 길들여지는 사람이 되지 말라."던 음성, '따뜻한 심성과 순수함으로기억되는 옛 스승'의 눈빛이 떠오르는 밤이다.
냇가의 자갈 하나, 풀꽃 한 점도 소중이 여기고, 생명애를 설파하던 인간미를 추억하며, 어두운 밤을 지키는 어린 왕자를 향해, 안녕을 묻고 안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