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사라마구, 해냄, 2008)
우리 속담을 보면 ‘눈’에 관한 것이 유난히 많다. ‘눈에 들다’, ‘눈을 감다’ 등등.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는 속담은 눈이야말로 우리 신체부분 중 가장 값진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우리 신체 부위 중 눈이 우리의 정신과 생명을 지칭할 정도로 중요하다는 말이다. 사람이나 동물은 다른 감각기관에 비해 시각 의존도가 커서, 눈을 잃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격력의 80% 이상을 상실한다. 일단 싸우려면 무엇이 보여야 하는데 눈이 보이지 않으면 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원인 불명의 전염병으로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이 벌이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이다. 맨 처음 실명한 사람은 자동차를 몰고 가던 남자였다. 다음은 그를 집에 데려다 주고 그의 자동차를 훔친 남자다. 이어서 그를 치료하던 안과 의사, 같은 병원 대기실에 있었던 검은 색 안경을 쓴 여자, 사팔뜨기 소년, 안대를 한 노인, 그 밖에 그들과 접촉이 있었던 사람들이 점점 시력을 잃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같은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격리된 삶을 살게 된다.
내용 전개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작가가 신의 입장에서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모든 인물들이 처한 환경과 인물의 속마음까지 훤히 꿰뚫어 보이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그럼에도 작품 구성상 사건의 인과관계가 불투명하고 전체적으로 응집력이 약해서 어떤 점에선가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데 설득력이 약하다고 느껴졌다. 작가의 특성인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도 거칠게 느껴지고 현실감이 떨어져 끝까지 읽어내는데 각별한 주의와 인내가 필요했다.
어느 날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실명이 된다든지, 또한 감염경로가 불명확하여 이해에 어려움이 따랐다. 한 공간에 잠시 머물기만 해도 감염되는 전염병이 누군가에게는 한 공간에서 함께 지내는 데도 멀쩡하다는 설정이나 결말부분에 가서는 다들 이유 없이 눈을 뜨게 된다는 설정 등이 좀 억지스러웠다.
또한 문장부호 없이 내려 갈기듯 써내려가는 그의 독특한 문체와 각 장마다 일련번호도 없고 문단 나누기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점도 순기능보다는 역효과를 낸다고 생각되었다. 따라서 읽는 중간에 호흡이 끊기고, 자주 짧게나마 휴지(休止)의 시간이 필요했다. 독자의 집중력과 긴장감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는 작가의 취지가 의아했고 읽는 내내 불편하였다.
이 작품은 20세기 말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 당시 유럽 상황은 지역이나 국가에 따라 다양한 위기 상황에 직면한다. 따라서 문학작품 속에 전후 불안한 시대 상황이나 저항정신이 나타났다.
또한 인간의 고독과 불안과 번민을 표방한 실존주의 문학이 나타난 시점이기도 하다. 작가는 포르투갈 독재정권에 맞서 공산당 활동을 하다가 고국에서 추방되어 망명생활을 한 이력이 있다. 이 작품은 1995년에 발표되었으며, 2004년에 ‘눈뜬 자들의 도시’를 씀으로써 한때 ‘눈이 멀었던’ 인물들이 ‘눈을 뜬 후’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지를 조명하며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눈먼 자들이 격리 수용된 정신병원에서의 일이다. 처음에 정부는 식량을 지급하며 집단생활에서 지켜야할 규율 등을 방송으로 지시를 했다. 그러나 수용인원이 늘어가면서 정부는 점점 통제력을 잃고 무정부상태가 되어간다.
방치된 환경 속에서 벼룩이 간을 내먹듯 총기를 소지한 깡패 집단이 생기고 그들이 자기들의 욕구충족을 위해 권력을 장악한다. 배급식량을 가지고 무력과 폭력을 휘두른다. 다만 정부는 눈먼 사람들이 자신들의 명령에 저항하거나 탈출을 못하도록 일정 구역을 벗어나면 총을 쏴서 죽이는 만행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이렇게 백색 실명인들을 정신병원에 격리 수용해 놓고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순찰 군인들은 감염될까 두려워 접근조차 꺼리고 그들의 요구사항은 묵살한 채 무조건 폭력으로 대처했다. 이러한 무지막지한 군인들이 위정자들의 민낯이었다. 죽기라도 바란다는 듯이 턱 없이 모자라는 음식을 던져두고 어떤 이유로든 죽으면 각 호실에서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였다. 시민들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무계획, 무관심, 무대책은 유명무실한 정부의 무책임성과 무능함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날이 갈수록 눈먼 사람들의 생활공간은 짐승들의 우리로 변해간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다 정신병원의 구조상 출입구를 찾기가 어려워 화장실까지 가기도 전에 사람들은 아무데나 용변을 싸놓는다. 또한 그 용변들을 밟고 짓이기게 되어 시설은 더없이 불결했다. 또한 제대로 씻거나 닦을 수가 없는 사람들은 더럽고 추하게 변해간다.
배설물 외에도 아무데나 버려진 쓰레기 더미와 넝마로 인해 그곳은 생지옥을 방불케 한다. 이처럼 작가는 무정부 상태의 인간사회의 추악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를 기탄없이 고발한다.
어떤 사회나 공동체가 지켜야할 규율은 있어야한다. 부분적인 희생이 따르고 불편함이 있을지라도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함께 연대하고 노력해야한다. 먼저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며 질서를 지키는 것은 남을 위한 것이기에 앞서 결국은 자기를 살리는 길이 된다.
검은 안경 낀 여자는 자기의 앞가림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제가 먹을 밥을 나누어 사팔뜨기 소년을 살리고 친엄마처럼 돌보아 준다. 현실 속에서는 창녀였을지라도 그녀 안에는 마치 성녀와 같은 사랑이 있었다.
또한 매사에 협조적인 검은 안대 노인의 역할도 눈에 띠었다. 이렇게 한 집단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사랑과 희생과 헌신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한편 작가는 선량한 사람들을 이용해 제 욕구를 충족시키고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파렴치한 인간들은 가차 없이 응징한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자동차 도둑은 검은 안경을 쓴 여인을 성폭행하려다 구둣발에 차여, 심한 상처를 입고 죽을 고생하다가 끝내 총에 맞아 죽는다. 또한 총기를 소지한 채 배급된 식량을 장악하고 제멋대로 사람들을 부리고 폭행을 서슴지 않았던 깡패두목도 가위에 찔려 죽게 한다.
또한 작가는 눈을 떴으되 보아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를 지적한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 먼 사람들이라는 거죠.”(p461)
결말부분에서 의사부인이 남편과 나누는 대화부분이다.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한다는 의사부인의 말에 방점을 찍어본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현대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다 잃었다는 것이다. 평생을 두고 축적해온 부와 가치와 명예 등 추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상실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 쓸모가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보이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현대인들이 눈을 떴으나 보지 못하는 요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개인의 행복과 편의를 위해 타인의 자유와 행복을 짓밟는 무리들, 공동체의 안녕과 사회질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양심도 없이 윤리․도덕성을 상실한 사람들,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로 타인의 권리와 생명을 짓밟는 파렴치한 무리들의 폭력과 잔인성이 떠오른다.
현대인은 첨단 산업기술의 발달로 넘치는 풍요와 편의성을 누리게 되었다. 물론 빈부 격차와 불평등 현상이 날로 심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IT산업과 네트워크의 발달로 개인의 신분이 노출되고 타인의 권익을 탈취하려는 사기와 기만술이 교묘해지고 있다.
게다가 속도전으로 치달아가는 경쟁사회에서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스마트 폰의 중독 및 기계의 노예화로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되고 인간소외 현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현대인은 대다수가 자기만의 고독한 성에 갇혀 지내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한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작가는 작품 속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유일하게 ‘눈뜬 자’인 의사부인을 통하여 인간의 희망을 말한다.
절망적인 세계에서 의사의 아내는 신적인 역할을 한다. 감염과 죽음을 무릅쓰고 자기희생과 봉사정신을 펼친다. 또한 구성원 모두가 의사부인에게 협조하여 질서유지에 힘을 보탠다.
현대 사회의 구원은 개인에게 있지 않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혼자 살길을 찾고 독식하려해선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함께 연대해서 사랑을 베풀어야 큰 힘이 나오고 함께 공존할 수 있다. 인간의 가슴 속 깊이 숨어있는 사랑만이 인간이 살 길이요, 희망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폭력과 권위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대변하는 동시에, 무능하고 부패한 체제와 무책임한 위정자들을 고발한다. 그리고 그런 암울한 현실과 사회체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에 대한 질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