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민음사, 2017)

by 도도히


‘강물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


가즈오 이시구로(1954)는 일본계 영국의 작가. 일본 나가사키 출생으로, 다섯 살 때 영국으로 이주했다. 《남아있는 나날》(1989)로 부커상을 받고, 영화로 제작되어 화제가 되었다. 201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인간은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살게 된다. 크게는 학교와 전공을 선택하고, 직장과 거주지를 선택하게 된다. 심지어 연인을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기까지도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하루도 선택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다. 오늘 점심은 무얼 먹을까, 무슨 채널, 어떤 장르의 TV를 볼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선택 속에서 산다.


Robert Frost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 떠오른다. 화자는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선택한다. 그리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그리움을 묘사한다.

먼 훗날 어디선가 나는 한숨을 쉬며 말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인간은 모든 길을 다 가볼 수는 없으며, 어떤 길을 가더라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선택한 길을 가면서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일들을 경험하며 제각각 다양한 인간으로 성장해 간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흐른 뒤 회상해 보면 그때는 분명 옳았던 일들이 그렇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다. 때늦은 후회와 각성의 시간들을 갖기도 한다. 앞일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소용 없는 일이지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이 남기도 한다.


이야기는 전후 영국 귀족 가문 ‘달링턴 홀’에서 집사로 살면서, 평생 동안 모든 것을 바친 스티븐스의 회억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화자는 부친에 이어 2대 째 집사 일을 해 오고 있다.


세월이 흘러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주인이 바뀐다. 새 주인은 칠팔월 5주 동안 미국에 머무를 계획이라며, 스티븐스에게 이참에 여행을 하고, 바람을 쐬라고 권유한다. 화자는 때 마침 옛 동료 켄턴 양의 편지를 생각하며 그녀를 만날 겸 영국 서부지방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글은 엿새 동안 여행을 하면서 보고 듣게 되는 풍정과 지난 세월에 대한 회억을 기록한 글이다.

오랜만에 달링턴 홀을 벗어나 혼자만의 여행시간을 갖게 되면서 화자는 많은 생각에 잠긴다. 옛 주인을 섬기면서 일관되게 지향했던 ‘위대한 집사’와 그 ‘품위’에 대한 생각들, 훌륭한 집사로서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던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자기를 사랑했던 켄턴 양과의 추억들을 떠올린다. 스토리 전개가 처음부터 끝까지 술술 읽힐 정도로 매끄럽게 전개되어 가히 무봉의 문체라 일컬을 만했다.


집사의 품위와 가치

첫날 ‘위대한 집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위대한 집사에게는 범인에게 없는 ‘품위’가 있다. 그 모델로 부친을 떠올리며, 아버지는 ‘품위의 화신’이었다고 기억한다.


그가 말하는 ‘품위’란 돌발적인 긴박한 사태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다. 어떤 모욕적인 순간에도 절대로 화를 내거나 불쾌함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극도로 절제된 감각으로 ‘인격적 품위’와 ‘복종의 자세’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그는 그런 아버지를 누구보다도 존경했고 마음속으로 추앙했다.


전 주인 달링턴 경은 ‘본래 수줍음 많고 겸손한 천성을 가진 분’이라 생각한다. ‘진정으로 훌륭한 사람, 신사중의 신사, 그리고 내 경력의 절정기에 모실 수 있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단언한다.(p79)


“사실 나는 달링턴 경께 모든 걸 바쳤습니다. 내가 드려야 했던 최고의 것을 그분께 드렸지요. 그러고 나니 이제 나란 사람은 줄 것도 별로 남지 않았구나 싶답니다.”(p.298)


스티븐스는 평생동안 개인적인 시간을 갖지 못했다. 부친의 마지막 임종도 지키지 못할 정도로 집사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 심지어 자기를 사랑한 여인도 떠나보낸 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어떤 것에 혼신의 힘을 다해 산다는 것은 자기희생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일생은 수도원 성직자의 삶과 같았다.


그만큼 자기가 하는 일이 사회의 정의를 위해서, 국가의 정책을 실현하는 일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35년 동안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런데 한순간에 그 모든 일이 허사가 되었을 때 화자의 절망감은 형언하기 어려웠다. 가장 빛나는 시절을 모든 바쳐서 모신 달링턴 경의 모든 행적이 부정한 것으로 판명이 난 것이다. 그의 곁을 지키며 협력한 집사의 노력도 하루아침에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만다.


긴 세월동안 최고의 주인을 섬기면서 가치 있는 일을 도모한다고 믿었던 자부심과 긍지가 한순간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그는 자문한다. 그런 집사에게 정녕 무슨 품위가 있단 말인가고.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선 달링턴 경에 대한 언론보도가 사실을 무시한 엉터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것도 진실보다 더 깊을 수는 없다고 선을 긋는다.


“저명한 가문에 소속된 집사로서의 명예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그 시절에 누렸던 특권에 대해서 자랑스럽고 감사할 따름이라고 회상한다.” (p.161)


새 주인 패러데이는 그의 가치를 알아본다.

“스티븐스, 이 집은 유서 깊고 웅장한 진짜배기 영국 저택이오. 내가 돈을 지불한 것도 그 때문이지. 그리고 당신도 진짜인 척하는 얼간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통적인 영국식 진짜배기 집사요, 안 그렇소?”(p.159)


사랑도 세월 따라 변하고

사실 이번 여행의 결정적인 동기는 켄턴양의 편지 때문이다. 켄턴양은 ‘달링턴 홀’이 최고 전성기를 맞던 시기에 함께 일한 동료로서, 화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유일한 여인이다.


여행 중 만난 켄턴 양은 한 때 그녀가 화자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고백한다. 처음엔 화자를 약 올리려고 결혼했고, 이렇게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끔 집을 나가고 싶은 순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남편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하였다.


화자는 끝내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목석같은 사나이의 진심과 깊은 사랑을. 하지만 모든 것은 세월따라 변한다. 사랑도 예외가 아니다.


진정 품위 있는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절제할 줄 알며 자기가 선택한 삶에 책임을 진다. 서로 사랑했으나 각자 현재의 삶에 감사하기로 다짐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접고 지금 가진 것도 그 못지않다고 여기며 감사할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서로의 행복을 빌어 준다.


자기가 선택한 일에 최선을 다해 살았을 때 과연, 후회란 있을 수 없다. 어떤 가치나 생의 의미도 상대적인 개념이며, 영원하지 않다. 이미 일어난 것은 다 잘된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화자를 위로했다가도,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반론을 편다. “악은 사탄적인 광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인간에게서 비롯된다.”는 아이히만이 법정에서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무사유의 인간이 저지르는 악행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진다.


집사의 역할은 주인을 평가하고 판단해서 자기의 업무를 수행하는 위치가 아니다. 어쩌면 주인에게 맹종을 해야하는 노예와 같다. 주인의 역량에 따라 집사의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다.


이야기는 마지막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의 대화로 결말을 맺는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이 저녁은 쉬어야 할 좋은 시간이니, 이제 즐기며 그만 휴식을 취하며 즐기라고 말한다.


여생은 농담과 함께 즐기리라

그 말에 화자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더 재미있는 농담으로 자기의 업무를 즐기며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농담이 인간의 따뜻함을 느끼는 열쇠’가 될 수 있도록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해야겠다고. 그에게 태만이란 없다. 그리고 이제 뒤는 그만 돌아보고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나머지 여생을 잘 활용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인생은 정말 눈 깜빡 할 사이다. 화자의 삶도 뚝딱 한 순간이었다. 사랑도, 가족도 꾸릴 새 없이, 모든 것을 다해 모셨던 주인도 떠나고, 또 다른 주인을 섬기게 되었다. 사랑하던 여인도 떠나가고, 그렇게 잘 나가던 옛 시절이 주인의 흥망성쇠와 함께 흘러가고 껍데기만 남았다.


결론적으로 삶은 누구를 따라 살면 안 된다. 내 삶의 주체는 나여야 한다. 그래야 그 결말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고, 어떤 평가든 수긍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집사란 그림자와 같은 존재일 뿐, 실체가 없이 누군가의 옷으로 사는 껍데기와 같은 삶이다. 그래서 더욱 허무하고 스티븐스가 한없이 가엾게 느껴진다.

이제부터라도 그의 다짐처럼, 농담도 하고, 하루하루 즐기며 살기를 바란다. 천상병 시인의 싯구처럼, 인생을 소풍처럼 살기를 바란다. 그래도 인생은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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