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 민음사, 2021)
제임스 조이스(1882~1941)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이다. 소설, 시, 희곡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였으며 모더니즘 전위예술에 기여하였다.
이 소설은 제임스 조이스의 첫 단편소설로 1914년 그가 스물 세 살 되던 해 탈고되었다. 그가 유ㆍ소년기를 보낸 더블린의 사회적 환경과 분위기 등을 자연주의 기법으로 묘사하였다.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서 당시 더블린 사람들의 가난하고 고달픈 삶을 그려낸다. 유년기 이야기 3편, 청년기 4편, 성년기 4편, 정치, 예술, 종교를 아우르는 공공생활 4편 등 총 15편으로 이루어졌다.
시대적 배경은 20세기 초반(1890~1910), 당시 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수도는 런던이었다. 더블린은 런던이나 파리에 비해 작은 소도시에 불과했다. 작품 속 곳곳에 묘사된 표현을 보면 ‘꽉 막힌 작은 도시’또는 ‘비가 자주 내리는 흐릿하고 칙칙한 분위기’로 표현된다.
이런 환경에서 사는 더블린 사람들은 중산층이라고는 하나, 소시민으로서 초라하고 궁핍한 생활을 한다. 집안 분위기는 냉랭하고 음습할 수밖에 없다. 주말 밤이면 어김없이 벌어지는 돈 싸움이 진을 뺀다. 더블린의 거리는 쓸쓸한 갈색이다. 밝고 희망찬 모습은 어디에서고 찾아보기 어렵다. 황량하고 공허한 저택이나 음산한 창밖으로 폐업한 양조장이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묘사된다.
즉 1900년 전후의 더블린은 폐색이 짙은 작은 도시로서 생활 쓰레기들이 골목에 방치된 채, 꿉꿉하게 습기에 젖어 있는 답답한 공간이다. 더 이상 ‘쓰지 않은 부엌 뒷방’에 ‘낡아서 폐품이 되어버린 종이들’이 있는 곳이다. 집 뒤의 ‘어둡고 좁은 진흙 길’과 악취가 올라오는 ‘컴컴하고 냄새 고약한 마구간’이 있는 그런 마을이다.
비록 춥고, 냉랭한 날씨와 낡고 초라한 풍경으로 기억되지만, 작가에게는 애증어린 향수의 공간이다. 그래서 그의 많은 작품들이 고향 이미지를 배경으로 펼쳐지며 그곳으로부터 발원한다. 누구에게나 유년의 꿈이 깃든 고향은 소중하다. 어머니 품속 같다. 비록 낡고 초라할지라도 자애로운 사랑과 이늑한 그리움의 대상이다.
조이스가 그린 더블린은 회색빛 이미지다. 리피 강가의 습한 바람, 좁은 골목, 오래된 벽돌집들, 흐린 하늘 속에서 사람들은 고단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 속엔 어떤 우수와 체념, 그러나 동시에 따뜻한 인간적 정서가 배어 있다.
처음 펼쳐지는 작품은‘자매’이다. 나(소년)는 신부와 묘한 관계이다. 신부는 중풍에 걸려 수족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환자다.‘성직매매’와 ‘파문당하거나 침묵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말을 볼 때, 신부는 소년과 부도덕한 일로 파문을 당한 것 같은 분위기다. 분명한 실체보다 때로 실루엣이 신비롭고, 아름답듯이. 명확한 묘사 없이 모호하게 끝을 흐린다.
오래된 추억을 회상하다보면 기억이 흐릿할 수 있듯이 그런 사건 전개나 결말이 자연스럽다. ‘그노몬’(조각이 떨어져 나간 도형)처럼 일정 부분 감추어진 채로 전개된다. 그저 독자가 퍼즐 맞추듯 이리저리 조각을 맞추어 가며 이해해야 한다. 독자마다 상상력을 펼치게 하며 다양한 의미를 도출한다.
“아니, 딱 부러지게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뭔가 괴이한 구석이…… 뭔가 불가사의한 구석이 신부님한테는 있었다니까…… 무슨 소리냐 하면…….”
이렇게 내용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고, 모두 쉬쉬하며 비밀스레 뭔가를 숨긴다.
‘자매’라는 제목도 핵심 내용과 큰 관련이 없다. 스토리 전개상 주 인물도 아니고 역할 또한 미미하다. 주요 내용과 별로 상관이 없는 낱말을 제목으로 삼은 것도 하나의 장치로 보여진다. 독자로 하여금 내용과의 상관성을 유추하게 한다. 독자는 이런 작가의 무심하면서도 단순한 설정을 고민하면서 상상력을 펼친다.
이밖에도 ‘내용과 제목’이 알쏭달쏭한 작품들이 많다. 작가의 소설기법상 전략이거나, 특성이다. 스토리와의 상관관계를 굳이 따지고 들면 관련성을 찾을 수도 있겠으나 간유리처럼 모호하게 흐려 놓은 의도가 다의적인 의미를 원하는 계산이다.
밑도 끝도 없는 인물의 출현과 불명확한 전개는 독자의 집중력을 유발하고 반복적인 독해로 유인하는 의도적인 계산이다. 그런 장치들이 함의하고 있는 뜻과 상징성을 추론함이 이 작품의 큰 매력 포인트다. 이런 특성은 전반적으로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한다.
두 소년의 모험과 일탈 행동이 평이하게 전개된다. 누구라도 소년시절에 한번쯤 꿈꾸어 봄직하다. 낯선 타지에서 갑자기 나타난 사나이를 만나, 소년들의 모험이 긴장과 서스펜스를 갖게 된다.
처음 사랑에 빠진 순진한 소년의 감성이 아름답게 묘사된다. 첫사랑 누나에게 줄 선물을 사러 야시장에 가지만 돈이 부족해서 살 수 없는 소년의 슴픔과 좌절을 그린다. 소년의 사랑은 안개 속의 물상처럼 신비스럽고 몽롱한 환상이 있다. 누나에게 줄 선물을 사기만 하면 사랑을 이룰 것 같은 첫사랑, 그 달콤 쌉싸름한 감성이 얼마나 간절한지 애틋하다.
“내 눈에는 종종 눈물이 그렁그렁했고(영문도 모르게), 때로는 무언가가 심장에서 솟구쳐 가슴 속으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앞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누나에게 말을 붙여 보게 되기나 할지 어떨지, 붙여본다 해도 내 이 착잡한 연정을 전할 수나 있을지 그저 득하기만 했다.”
가난과 고달픈 현실을 벗어나서 사랑을 얻고 새로운 삶을 향해 떠나고자 하나 주저앉게 되는 여인의 비애를 보여준다. 통시적으로 인간은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떠나고자 한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확실성과 용기부족으로 불발되는 경우가 흔하다. 에블린은 바로 이 시대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하는 일 없이 허세를 떨고 옳지 않은 방법으로 약자의 돈을 갈취하며 유랑하는 떠돌이의 삶을 그린다. 어느 시대, 어디에나 있는 건달, 사기꾼, 거렁뱅이 이야기다. 또는 이성에 눈이 멀어 송두리째 제 인생을 거는 무모한 이십대의 이야기도 있다.
대도시 런던에서 언론계 총아로 성공해 돌아온 친구를 보며 그동안 행복하게 살아온 평온한 더블린 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인물의 심리를 묘사한다. 누구나 자기보다 못한 친구가 더 잘되면 심기가 불편하다 못해 현실이 짜증스럽다. 이 인물도 자족하며 지내던 현실을 잊고 회의를 느끼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후회하며 다시 현실을 인지한다.
친구들로 인해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되는 인물을 통해서 친구나 동료 등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허물이 있을 수도 있고 또 모두가 허물이 있었다. 그러나 신부가 회중에게 요구하고 싶은 것은 딱 한 가지라고 했다. 하느님 앞에 솔직하고 당당하라는 것이었다.’라는 말을 한다.
마지막 편에서는 연례 무도회가 열린다. 친척과 친구, 지인들이 모이고 술과 음식과 가무가 열린다. 누군가의 노래를 들으며 사랑을 떠올리는 아내, 남편에게 목숨을 걸 정도로 사랑했던 남자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려준다. 과거를 돌이켜보며 사랑과 추억을 회상한다. 온 마을을 덮은 눈 풍경 속에서 생자와 망자의 관계와 의미에 대해 생각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이와 같이 작중 인물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부족하거나 모자란 인물이다. 소시민, 가정의 가장, 순수한 소녀, 지친 노동자 등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모질거나 잔악하지 않고 유순하고 솔직하다. 작가는 이들의 삶 속에서 조용한 감정의 떨림, 삶의 진정한 서정을 발견한다.
단조롭고 변화 없는 삶이지만, 그 안에는 사랑, 두려움, 기억, 후회 같은 감정이 미묘한 리듬으로 출렁거린다. 이들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가진다. 그래서 나쁜 짓을 하는 악한일지라도 용서하고 싶고 친근감이 간다.
그들의 이야기가 인간적으로 수용되고 ‘먼 곳’이나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우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감이 느껴지고 동병상련의 연민이 생긴다. 그들에게 처해진 환경이나 상황이 사실적이고 진솔하게 다가온다. 이런 효과의 저변에는 작가의 탁월한 테크닉과 작법이 지지대가 된다.
작가는 ‘더블린 사람들’을 탈고하는 동안, 많은 캐릭터를 묘사하면서, 진한 향수를 느꼈을 것이다. 고향과 고향 사람들, 나아가 유년시절에 대해, 한없는 그리움과 사랑을 느끼고 큰 자부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기에 더블린은 작가의 영원한 정신적 고향으로, 무한한 상상력과 작품의 산실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