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한강 지음, 문학동네, 2016/2024)

by 도도히

'모든 흰 것에 대한 단상'


『소년이 온다』를 출판한 후 2년 뒤에 나온 책이다. 장르가 뒤섞인 산문집이다.

시와 에세이가 어우러지고, 간혹 꽁트가 끼어 있어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흰' 것들에 집중해서 쓴 멋진 작품이다.

제목부터가 눈에 띠게 새롭고, 인상적이었다.


제목을 보면서 '흰'이 형용사인가, 아니면 제주도말 의문형인가?


어쨌든 ‘하얀’이 아닌 ‘흰’색의 의미를 생각하며 책을 펴든다.


책 표지에 작가의 말이 있다.

"어쩌면 아직도 나는 이 책과 연결되어 있다.

흔들리거나, 금이 가거나, 부서지려는 순간에 당신을,

내가 당신에게 주고 싶었던 흰 것들을 생각한다."


이 책은 1장_ 나, 2장_ 그녀, 3장_ 모든 흰, 이렇게 총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첫 페이지에 흰 것들에 대해 쓰겠다며 목록을 작성한다.

‘강보, 배내 옷, 소금, 눈, 얼음, 달, 쌀, 흰 새, 백지, 백발, 수의’ 등.

이런 단어를 열거하면서 작가는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림을 느끼며, 책을 꼭 완성하겠다고 다짐한다.

작가는 열네 살 때부터 편두통과 위경련을 앓아왔다.

그때마다 일상을 멈추고, 숨죽여 ‘나를 기다린다’고 말한다.


'나를 기다린다'는 말을 한참 생각했다. 작가에게 '나'란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독자인 나자신의 '나'는 무엇인지.


우선 작가에게 '나'란 '모든 흰' 것들로 기억되고, 약간의 흥분과 떨림이 있는 것들, 잊히지 않는 사연과 추억들'을 인지하는 그런 상태가 아닐까 상정해본다.


그녀는 일상을 회복한 후, 서슴없이 허공으로 한 발을 내딛는 순간에 위태로움을 느낀다고 진술한다.


허공에 발을 내딛는 행위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거나, '미지의 것에 도전' 하는 것을 의미할까나.

‘1장, 나’_ 작가가 느끼고 있는 처음 슬픔


작가에게 '첫 슬픔'으로 각인된 가족 이야기다.

스물세 살 엄마와 스물여섯의 아빠는 첫 아이와 둘째 아이잃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두 시간 남짓 머물다가 죽은 갓난 아기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의 생명과 죽음에 대한 깊은 물음을 작가에게 남겨 준 사연이다. 어렸을 적에 들은 그 이야기를, 작가는 스물 셋 엄마의 심정으로 느끼며, 수천번 곱씹으며 가슴에 담고 살아왔다.


생애 최초의 슬픔이라고 회고한다. 그래서일까. 작품 곳곳에 '삶과 죽음'에 대한 비슷한 생각이 스며있다.


'배내옷', 젊은 엄마의 '달떡’같은 아이'가 다 같은 맥락의 생각들이다. 첫 애를 잃은 엄마의 슬픔을 딸이 두고두고, 아니 평생 동안 가슴에 담고 살고 있다. 어릴 때 집에서 기르던 백구의 죽음과 함께.

‘안개’, ‘흰 도시’에 대한 생각은 다분히 시적으로 풀어낸다. 아름다운 이미지 속에 반전의 뜻이 숨어있다. '오리무중'이라는 말처럼 예측할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깃들어 있는 물상이다.


어둠 속에서 어떤 사물들은 희어 보인다. 어렴풋한 빛이 어둠 속으로 새어 들어올 때, 그것들은 ‘창백하게 빛을 발한다’고 느낀다.


어느 도시 유태인 게토에서 '여섯 살에 죽은 친 형'의 혼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남자의 실화를 이야기한다. 죽은 사람의 혼령과 살았다는 말이 섬뜩하면서도 가슴 아프다. '모습도 감촉도 없는 한 아이의 목소리'가 시시로 그에게 찾아왔다. 실화라지만 정말 그랬을까 싶다. 오싹해진다. 사람이 무언가에 빠져 간절해지면 환상, 환청이 나타나고 실성하게 되나보다. 얼마나 억울하게 죽었으면 죽은 이를 놓지 못하는 것일까.


작가의 다른 작품에 종종 나타나는 장면이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에서 인물들이 비현실적인 꿈이나, 환상,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는 장면이 연상된다.


1부의 끝부분에 두 장의 흑백 사진이 연달아 실려있다. 어둠을 배경으로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희뿌연 것들이 솔솔 꿈틀거리며 피어오르는 이미지다.


‘2장, 그녀’_누구에게나 호의적이지 않은 삶


'그녀' 는 누구를 상정하고 쓴 것일까.


‘성에, 서리’ 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시작한다. 한 겨울 유리창에 하얗게 내려 앉는 성에, 강이나 개울의 살얼음 같은 무늬를 언급한다.


작가는 박태원의 딸 이름을 떠올렸으나, 독자는 정지용 시인을 생각한다. 어둔 밤 유리창이 흐리다. 그 위로 일곱 살에 죽은 아들이 새처럼 파닥거리며 떠오른다는.


"아무도 밟지 않은 첫서리는 고운 소금 같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러나 생계에 내몰린 사람들은 더 이상 어떤 감흥이 일지 않는다. 첫서리나, 첫눈이 내리면 먼저 생계가 걱정일터, 그저 무심하다.


"엉망으로 넘어졌다가 얼어서 곱은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서던 사람이

씨팔 그 끔찍하게 고독한 집구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게 뭔가, 대체 이게 뭔가 생각할 때

더럽게도 하얗게 내리는 눈."(P55)

그저 막막할 뿐이다.(씨팔!)


그녀의 문장은 시적이면서도, 서사적이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잊지않는다. 그들의 시선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주한다. 하얀 눈발이 춥고, 외롭고, 무심하다. 간신히 버티며 살아가는 서민들의 한숨이 새어 나온다. 억울한 영혼을 상기시키는 깊은 어둠이 담겨있다.

소시민들에게 삶은 긍정의 힘만으론 살아가기 어렵다. 스스로 강한 의지를 키우며 견뎌야 한다. 그들에게 크리스마스나 하얗게 흩날리는 눈발은 어떤 감흥이 생길리 없다. 다만 어깨가 시리고 한기가 스밀 뿐이다. 작가는 그런 생각을 하며 하얗게 흩날리는 눈발을, 눈송이를 무심하게 감지한다.

"삶은 누구에게도 호의적이지 않다.

이마를, 눈썹을, 뺨을 물큰하게 적시는 진눈깨비.

모든 것은 지나간다."(P59)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은 기분도 추적추적 차갑게 젖는다. 어떻게 해봐도 기분이 보송보송 가볍게 밝아지지 않는다. 그럴 때 내뱉는 넋두리다. ‘모든 것이 지나가리라’, 무력한 서민들의 주문이다.


너와 나, 우린 모두 그런 존재다. 하지만 작가는 결코 체념하거나 물러서지 않는다. 그 속에서 처절한 아름다움과 살아야만 하는 희망을 본다.


"삶이란 대체 무엇인가. 차갑고 적대적이면서도, 연약하고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이라고 독백한다.


작가는 허름한 일상을 아름다운 눈보라 속에서 미화하고 힘을 얻는다. 외롭지만 따뜻하고 앞이 안보이나 꿈을 갖고 살아간다. 이런 사람살이가 시이며 훌륭한 한 편의 작품인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으면 ‘한 줌 하얀 재’로 남는다. 아니면 '먼지로 흩어져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흰 것들, 희끄무레 한 것들 속에 떠도는 바람처럼.

그 밖에도 흰 것들은 많다. 소금, 달, 레이스 커튼, 입김, 흰 새들, 은하수, 흰 뼈, 백발, 구름, 백야, 빛의 섬... 들을 담담하게 사유한다.


이것들을 정직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성실한 작가의 시선이 흐르는 강물처럼 유유히 계속된다. 꾸밈없이 담백하고 담담하게 펼쳐진다.


작가의 글들은 낭송을 하면서 읽어가면 또 다른 느낌이 난다. 작품이 짧고 운율이 살아 있어서다. 독자도 별 기대나 욕심 없이 책장을 넘기며 멈추지 않고 그와 함께 흐른다.


그러다 보면, 한 알의 겨자씨가 태동할 것이다. 언젠가 큰 나무가 되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아름다울 것이다.


갑자기 첫서리가 내린 날이다. 작가는 다시 '스물셋 엄마'의 슬픈 기억을 떠올린다. 작가에게 '흰 것'은 연약하고 여린 생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2장의 타이틀 ‘그녀’는 칠삭둥이로 태어나 하루도 살지 못하고 죽은 아기를 지칭하는 의미로 파악된다. '눈이 열렸다가 곧 흐려지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간 흐린 숨'이 언제나 거기에 있다.


즉, '그녀' 란, 하루도 살지 못하고 죽은 아기, 즉 '작가의 죽은 언니'를 지칭한다.

‘3장, 모든 흰’_ 죽음을 연상시키는 '흰' 것들


'모든 흰'은 첫 아이를 잃고, 이듬해 두 번째로 사내 아기를 조산한 이야기와

삼년 후 작가가 태어난 지점을 찾아서 글을 써 내려 간다.

"네가 죽어 내가 살게 되고, 네가 살았다면 내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당신의 눈" 이란 말을 꺼내며, 앞서 간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 본다.

바로 "죽은 언니, 오빠의 숨이 나에게로 왔다"고 느끼는 것이다. 작가는 하나의 생각이 꽂히면, 끈질기게 그것을 놓지않고 붙들고 끝장을 낸다.


그점이 한 편의 작품 속에서 장점과 단점이 된다. 독자를 그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반면에 지루하게 만든다.

‘소복, 연기’의 단어들은 동생이 결혼할 때 돌아가신 부모님께 해드린 소복과 그 옷을 태우면서 피어오르던 연기에 대한 이야기다.


독자에게 '소복, 연기'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사랑하는 어머니 장례식 날이다.


간만에 어머니 장례식 풍경을 떠올려 본다. 가슴 한 켠에 웅크려 있던 먹먹한 생각이었다. 아버지 산소 옆에 어머니를 묻고 육남매가 앉아서 뒷담을 하던 시간, 큰 누이가 입고 있던 소복을 벗어서 불길에 던진다. 잦아지던 불길이 다시 솟구치며 하얀 연기가 피어 올랐다.

다소 놀란 눈으로 지켜보던 동생들에게, "너희들도 벗어서 불속에 던져라. 이제 다 끝났다." 했다.


동생들은 엉거주춤 입고 있던 옷들을 벗어서 불 속에 집어 던졌다. 적어도 한 사나흘은 더 입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지만, 장녀의 한 마디는 힘이 있었다.


하얀 소복과 함께 어머니의 삶은 영원히 소멸되는 듯한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중환자 실에 계셨던 어머니를 더 이상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홀가분함이 더 컸다.

장녀는 이성적이고 현실적이었다. 이제 고인은 잊고 앞으로의 삶을 살자는 의지였으리라.


누구보다 장녀로서 그동안 어머니를 보살피느라 고생이 많았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고인을 추모할 모든 것들이 다 사라졌다. 아직 불씨가 남은 재를 뒤집으며 남은 불씨를 남김없이 껐다.


더 이상 아무도 울지 않았고 슬픈 기색도 없었다. 다만 며칠 동안 후줄근히 지쳐서 쉼이 필요 했을 뿐이다.


이것이 평생 희생과 헌신으로 키워 낸 어머니를 보내는 마지막 인사였다.


부모의 사랑에 비해, 부모에 대한 자식들의 마음은 백분의 일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부모와 자식 관계다.


작가어 기억을 따라 가다보니, 이런저런 지난 날들이 떠오른다. 작가의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가슴을 촉촉하게 적신다. 그녀는 타인의 작은 상처마저도 무심히 지나치지 않는다. 조그만 목소리로 다가와, 사람의 온기를 전해준다. 사람 사는 세상이 어떠해야 하는지 느끼게 한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소중하게 대접받는 느낌이 들고 자존감이 생긴다.


‘모든 흰’_배춧속 가장 깊고 환한 곳에 있는 어린 잎사귀, 낮달의 서늘함, 빙하, 자작나무 숲에서 만나는 영혼들, 겨울 정적 속, 먼지 분말 들을 열거하며 죽어가는 자들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으로 맺는다.

독자마다 ‘흰’ 것들에 대한 또 다른 의미들이 있을 것이다. 흰 것들은 연약하지만 고귀하다. 정의롭고 따뜻하다. 그런 온기와 착한 성정을 가지고 세상을 건너가야 하리라.


어떤 면에선 여리고 선한 것들이 힘이 세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감동이 있다.

세상은 강하고 힘센 자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하고 순수하고, 여린 것들의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기준이 그들이 살아가도록 맞춰져야 할 것만 같았다.


작가의 글 속에서 그런 흰 숨을 느끼고 그 숨을 들이 마신다. 솔직하고 정직한 이야기, 쉽게 읽히지만 생각이 많아지는 글, 작지만 깊은 강물처럼 가까이 다가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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