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서웅 옮김, 민음사, 2005)
“나 한가로이 침상에나 누워 뒹군다면 당장 파멸해도 좋으리라!
자네의 감언이설에 속아
자기도취에 빠지거나 관능의 쾌락에 농락당한다면
그것은 내게 최후의 날이 될 것이다!
자, 내기를 하자!”
‘파우스트’는 16세기부터 유럽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의 인물이다. 1500년대 말부터 1700년대 초기까지 독일에서 이미 여러 번 파우스트를 소재로 한 민중본이 출간되었다. 이 파우스트 민중 본은 출판될 때마다 첨삭이 가미되고, 부풀려지면서 여러 작품유형으로 쓰여졌다.
영국에서도 크리스토퍼 말로가 같은 시기에 『파우스트 박사의 비극적 이야기』를 펴냈다. 이 작가는 독일 민중본의 내용을 따르면서도 신이 되고자 하는 초인적인 면모를 그려냈다.
소년시절의 괴테는 이러한 여러 가지 작품들을 접했을 것이다.
전설 속 인물 파우스트는 마술과 점성술로 살아가던 떠돌이였다. 신학과 의학에도 능한 인물로 이미 많은 시인이나 작가들에 의해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헌사, 무대에서의 서연(序演), 천상의 서곡과, 제1부_비극, 제2부_비극'으로 이루어져 있다. 괴테가 이 소설을 24살에 쓰기 시작하여, 한때 중단하였다가 82세에 완성하기까지 60여년의 세월이 걸린 작품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선과 악이 대립하며 공존한다. 또한 살아가면서 어떤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늘 긍정적인 쪽과 부정적인 쪽이 갈등을 빚기도 한다.
작품 속 파우스트 박사와 메피스토펠레스는 이런 인간의 두 가지 측면을 나타낸다. 파우스트는 선량하나 인식의 욕구가 강한 인간이다. 어느 날 지상에서의 삶에 권태를 느껴 죽으려는 순간, 메피스트펠레스를 만나 유혹에 빠져 내기를 하게 된다.
‘현세에서 기쁨을 느끼게 되면, 영혼을 악마에게 팔기로 한다.’는 내용이다.
파우스트는 이 세상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들이 많아지고, 가지면 가질수록 욕망 또한 커지며, 이생에서 인간은 만족이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이 작품은 비극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지만 파우스트의 영혼이 구원을 받고 천성으로 올라간다는 내용으로 볼 때 희비극이라고 볼 수 있다.
1부에서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트펠레스, 그레첸등이 주요 인물이나,
2부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들이 주를 이룬다.
신화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
천상에서 주님과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를 두고 대화를 한다.
주님은 파우스트가 지상에 살고 있는 동안 무슨 유혹에 빠지든 말리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자 악마가 파우스트는 곧 유혹에 빠질 것이라며 승리를 장담한다. 그리고 내기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제1부에서 철학, 법학, 의학, 신학까지 철저히 공부를 했다는 파우스트가 자부심도 자신감도 없이 괴로워한다. 마법에 빠져 정령들을 부르며 슬픔을 토로한다. 부적을 들여다보며 초인적인 힘을 얻고 신의 경지에 이르고자 한다.
그러는 중에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나게 된다.
그는 “그저 놀기만 하기엔 너무 늙었고, 소망 없이 살기엔 너무 젊은 나이.”라고 말하면서 염세적인 생각과 절망감에 빠져 인생을 역겹게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돌파구는 오직 죽음이 바람직하다고 부르짖는다.
이십 대 초반, 혼돈에 빠져 우울했던 시기가 있었다. 형편은 어렵고, 해야 할 일은 많고, 올라서야 할 계단은 높았다.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오랜 허기에 진이 빠져 있었다. 의욕은 넘쳤으나 에너지는 달렸고, 자존감이 높아서 치욕스런 시간이었다.
그런 목숨들이 자기를 떠나 더 연약한 목숨들을 돕고 있었다. 신은 없었으나 신이 있어야만 했다. 모든 것이 불공평했으므로 공정한 신이 살아서, 현실을 중재할 필요가 있었다.
알면 알수록 멀어지는 인지의 영역은 까마득한 어둠에 묻혀 있을 뿐 태동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신이 있다고 했으나, 어쩌면 신은 인간이 만들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혼란과 미궁의 영역은 생각보다 어둡고 깊었다. 파우스트의 절망이 공감이 가고 이해가 가는 까닭이다.
메피스트펠레스의 유혹에 빠져 한판 삶을 질탕하게 탐닉해 봄직도 하다.
파우스트는 마녀가 주는 약물을 먹고 젊음을 얻는다. 그리고 그레트헨 이라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소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레트헨은 악마의 꾀임에 빠져, 어머니를 죽이고, 파우스트는 그녀의 오빠를 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레트헨은 감옥살이를 한다. 파우스트가 그녀를 구하러 가지만, 그녀는 감옥에서 나오지 않고 죗값을 받고 죽는다. 마지막에 파우스트의 영혼을 천사들이 구원한다. 결국 메피스토펠레스는 내기에서 지게 된다.
마지막 장면이다. 파우스트가 외친다. “오, 머물러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외치는 순간 파우스트는 쓰러지게 된다. 이 순간을 기다려온 메피스토펠레스가 그의 영혼을 가져가려 할 때, 그레트 헨의 사랑이 하늘의 은총을 받아 파우스트의 영혼을 구해낸다. 파우스트 영혼은 천사들에 둘러싸여 승천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작품은 문학사적으로 고전주의, 낭만주의 시대를 관통하며 형성된 작품이다. 괴테의 나이 스물네 살(1773년)에 쓰기 시작하여, 82세(1831년)에 완성한 것으로 볼 때, 60여년에 걸쳐 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괴테의 전 생애가 축적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제1부는 중세를 배경으로 파우스트가 마법을 이용하여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제2부는 근대를 배경으로 신화 속 인물들을 등장시켜 인류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한다.
실제로 1부의 내용 전개상 풍부한 상상력과 재미있는 구성으로 흥미롭게 펼쳐진다. 많은 문학 비평가들이 2부의 내용보다, 1부의 내용과 분위기를 좋아하고, 대표작으로 인정하는 이유다. 따라서 문학사적 상징성과 의의가 더 심오하고 넓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로 대표되는 인간의 선과 악의 대립과 갈등을 상징, 비유하고 있다. 삶에 권태를 느껴, 쾌락을 추구하지만, 삶은 헛되고 무의미하다. 그러나, 악마의 유혹에 빠져 쾌락적인 삶을 인정하게 된 파우스트는 영혼이 파멸하게 될 위기에 처하나, 천사들의 도움으로 구원에 이른다.
순간의 타락으로 선한 인간이 죄를 지을지라도 그 영혼은 구원을 받고,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된다. 악마는 결코 선한 영혼을 파멸시킬 수 없다는 종교적,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일종의 권선징악적 가치를 함의한다고 볼 수 있다.
고통과 결핍으로 넘어지고 좌절하는 인생길에서 인간은 수시로 길을 잃고 방황한다. 허무함, 상실감, 외로움으로 불면의 밤을 뒤척인다. 200년 전에 나온 이 책은 이런 인간 존재의 문제를 파고든다. 고통과 불안에 떨며 길을 찾는 인간에게 악마는 수시로 유혹한다. 이생에서의 욕망과 쾌락적인 삶을 추구하라고.
하지만 인간은 불안과 혼란 속에서도 사랑과 의무감으로 충실하게 선한 삶을 추구한다. 그리고 자기실현을 이루며 구원에 이른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파우스트가 현대인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다.
조성모의 ‘가시나무’ 노랫말이 떠오른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에는 파우스트도 있고 악마도 있으며 그레트 헨, 헬레나 등 온갖 인물유형들이 깃들어 있다. 수많은 나는 다양한 삶을 살고 싶어하며 끊임없이 존재의 의미를 묻고, 행복과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오늘 울다가도 내일은 웃을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젊음의 한때는 쫓기듯이 직장에, 가사에 매여 산다. 나이들어 자식들이 떠나고 퇴직을 하면 빈집 증후군에 시달린다. 온 몸에 기운 빠지고, 의욕이 떨어지며 외로움에 갇힌다. 누구에게나 인생곡선은 비슷하다. 퇴직 후 자유로워져 인생을 즐기고자 하나 그럴만한 여건이 안 된다. 신체적, 물질적으로 여유가 없다. 아직 갈 길은 먼 데 동력이 떨어지고 의욕이 없다.
그동안 많은 경험을 하고, 다양한 책을 읽었다 하나, 확실한 신념도 없고, 매사에 명쾌하지 못하다. 가진 것도 변변치 못하다. 때로 허망감, 상실감, 고독감이 엄습해 온다. 또 다른 파우스트가 된다.
그럴 때 내 안의 깊은 어둠 속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유혹의 말로 속삭인다. “한번 떠나볼래? 모든 것을 밀쳐두고 너만의 세계로 가보는 거야” 그러나 그런들 결과는 역시 뻔하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역시 삶은 허망하고 고독한 것이다. 저 혼자 가는 길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메피스토펠레스를 이기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 가장 소중하고, 필수적인 것을 선순위에 두고 무소의 뿔처럼 흔들림 없이 가는 거다. 그리고 손을 흔든다. 메피스토펠레스여 안녕!
파우스트는 역시 뛰어난 고전이요, 세계 명작임에 손색이 없다. 촘촘히 재탕 삼탕 하면 할수록, 내 안에 숨겨진 또 다른 나와 마주하게 되고, 많은 이야깃거리가 쏟아진다. 매일 뭐라도 끄적이며, 내 안에 숨겨있는 또 다른 나를 찾아간다. 파우스트씨 안녕! 모두 안녕!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8.28. ~ 1832.3.22.) 프랑크푸르트 출생. 8세에 시를 짓고, 13세에 첫 시집을 낸다.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로 개업하지만 문학에 더 관심이 많았다.
친구의 약혼녀 샤를로테 부프에게 첫눈에 반하고 짝사랑하게 된다. 이것을 소재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을 쓴다. 이 소설로 20대 중반에 유명 작가가 된다. 소설 속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까지 일어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괴테는 60대부터 1832년(83세)로 사망할 때까지 20여 년간 창작생활이 절정에 달한다. 이 시기에 『파우스트』를 비롯하여, 자서전, 기행문 등 수많은 작품이 발표된다.